"차안에 소변통 꼭 챙겨요" … 택시기사들 '볼일과의 전쟁'
파이낸셜뉴스
2023.03.22 18:06
수정 : 2023.03.23 10:27기사원문
잠깐 주차했다 위반 딱지 일수
주유소 화장실 잠긴 경우 많아
방광염·전립선 질환은 직업병
"과태료까지 내면서 소변 누러 가는 그 심정을 알까요. 아무에게 말도 못합니다."
택시 운전 경력 24년의 베테랑 기사 김천성씨(66)는 화장실 이용 불편을 참다못해 최근 소변통을 들고 다닌다. 건물 내 공중화장실을 이용하려 차를 잠깐 세워두면 '주정차 위반' 과태료 고지서가 날아온다는 게 김씨 설명이다.
택시기사들이 화장실 이용에 대한 불편을 호소하고 있다. 특히 도심의 경우 주정차 단속이 심해 차를 세울 엄두를 내지 못한다. 어렵게 정차 후 공중화장실을 이용하려고 하면 출입이 불가능한 경우가 다반사다. 고충이 전해지면서 지자체도 방안을 찾고 있지만 뚜렷한 해결책이 없는 상황이다.
22일 만난 택시기사들은 화장실 이용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고 입을 모아 하소연했다. 엄격한 주정차 단속 때문에 주차한 뒤 마음 놓고 화장실 가기란 기사들에게 '언감생심'이다. 주정차 10분을 넘기면 화장실과 같은 불가피한 상황이더라도 예외 없이 '위반 딱지'가 날아온다. 용변을 보기 위해 과태료를 감수해야 하는 일이 비일비재하다.
이수원 서울개인택시운송사업조합 홍보본부장은 "기사들이 용변을 위해 주로 가는 공중화장실 근방에서조차도 제한 시간을 넘기면 어김 없이 단속하는 사례를 종종 봤다"며 "대변을 보는 경우엔 대기 시간까지 합치면 10분은 족히 넘지 않나"라고 토로했다.
현재 주정차 때문에 택시기사들은 주유소나 액화석유가스(LPG) 충전소에 딸린 화장실을 주로 이용하고 있다. 문제는 현실적으로 이용이 쉽지 않다는 점이다.
LPG 충전소는 서울 외곽에 위치한 경우가 많다. 때문에 강남 등 도심에 화장실이 급할 경우 찾기는 어렵다. 도심에 많은 주유소 내 화장실의 경우 자물쇠 등으로 문을 잠가 놓는 경우가 허다하다.
60대 기사 최모씨는 "특히 밤에 주유소 화장실을 아예 닫는 곳도 많다. 저녁 9시부터 아침 6시까지 문 닫는 식"이라며 "정말 못 참으면 외곽까지 나가 (노상방뇨로) 해결하기도 한다"고 토로했다.
기사 김씨는 "주유는 안 하고 화장실만 가려고 할 때마다 민망하고 눈칫밥을 먹는 상황이 반복된다"고 전했다.
여성 기사들의 경우 문제는 더 심각하다. 4만여대 서울 개인택시 중 여성 기사는 500여명 남짓이다. 수가 절대적으로 적은 탓에 여성용 화장실이 아예 없는 주유소도 많다.
12년간 택시를 몬 여성 기사 60대 강모씨는 "주유소를 겨우 찾으면 여자 화장실만 개방하지 않는 곳도 많다. 12시간 넘게 (용변을) 참기도 한다"며 "남성 기사들의 노상방뇨를 적지 않게 목격하기도 한다. 여성은 그것도 안되지 않나"라고 했다. 따라서 비뇨기 관련 질환은 택시 기사의 직업병이 됐다고 한다. 기사 김씨는 "전립선이나 방광 쪽 문제를 앓으면서도 '치부를 드러내고 싶지 않다'며 숨기는 기사들이 많다"며 "그러다 병세가 악화되는 동료도 있다"고 전했다.
서울시는 이러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지난 2017년 한국주유소협회와 '주유소 화장실 이용개선 및 용품지원사업 협약'을 맺었다. 서울시는 주유소 측에 화장실 물품을 제공하고, 주유소는 기사들의 화장실 이용을 돕는다는 취지다.
하지만 강제성이 없어 여전히 화장실 이용 불편 민원은 끊이지 않는 상황이다. 이에 서울시는 지난 2021년 말부터 지난해까지 4차례에 걸쳐 한국주유소협회 측에 '주유소 화장실 이용 협조 요청' 공문을 보내기도 했다.
서울시 관계자는 "주유소 협회 쪽에서도 '회원사에는 (화장실 개방을) 독려하겠지만 비회원사는 어렵다'는 취지로 입장을 전해왔다"며 "자치구별 공중화장실을 짓는 방안 역시 억대 예산이 필요해 해결 방법을 계속 모색 중"이라고 말했다.
nodelay@fnnews.com 박지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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