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독친' 김수인 감독 "‘그것이 알고 싶다’ 20년 애청자...오만과 편견 떠올랐죠"

      2023.10.27 17:59   수정 : 2023.10.29 11:36기사원문


[파이낸셜뉴스] 자살은 10~20대 국내 사망 원인 1위다. 특히 청소년 자살률은 2017년 7.7명에서 2020년 11.1명으로 44% 늘었다. '독친'은 자식의 성공을 위해 지나치게 간섭하는 부모와 인터넷을 통해 생면부지의 사람들이 모여 동반자살을 하는 사회문제를 소재로 한다.



학교에 등교한줄 알았던 여고생 유리(강안나)의 주검을 마주한 워킹맘 혜영(장서희)은 속절없이 무너진다. 인터넷 자살을 했다는 사실을 도무지 믿을 수 없다. 엄마가 타살을 주장한 가운데 경찰의 수사가 시작된다. 아이들을 나름 진심으로 대해온 담임교사 기범(윤준원)과 유리와 한때 친했던 아이돌 연습생 예나(최소윤)가 유리의 죽음에 어떤 영향을 끼친 걸까? 사람들에게 “우아하고 다정한 엄마”로 비쳤던 유리 엄마는 좋은 엄마였을까?

‘독친’은 수사물의 형식을 빌어 사건을 다각도로 들여다보며 극적 재미와 긴장감을 준다. 동시에 결혼정보회사 매니저인 엄마의 직업과 유리와 닮은 꼴인 교사의 가족 관계, 겉모습과 다른 모범생의 속사정, 학창시절 우정의 의미 등 자살한 여고생을 둘러썬 여러 인물 관계를 통해 재미와 주제의식 두마리 토끼를 다잡는다.
무엇보다 한류스타 장서희를 비롯해 강안나, 최소윤, 윤준원 등 신인 배우들의 연기가 돋보인다. 신인감독 김수인의 연출력이 주목되는 이유다.

올해 서른 살인 김수인 감독은 “어릴 적부터 ‘그것이 알고 싶다’의 애청자였다”며 “배우 문성근이 진행하던 시절부터 지금까지 즐겨본다. 시청을 안한 회차가 없을 정도”라고 말했다. 대학에서 문예창작을 전공하고 영화연출 석사를 수료한 그는 졸업 후 사교육의 중심지인 대치동에서 2년간 국어 강사로 일한 전력이 있다. 아역배우 에이전시에서 연기 지도도 했다. 이러한 경험은 이번 장편 데뷔작 '독친'에 고스란히 투영됐다. 독친은 자식에게 독이 되는 부모, 즉 지나친 간섭으로 자식을 망치는 부모를 뜻한다. 다음은 일문일답.

―이번 영화로 ‘독친’이라는 단어를 처음 접했다. 어떤 계기로 이 소재를 영화로 만들게 됐나?

▲졸업 후 다양한 일을 하다가 영화사에 작가로 입사했는데 그때 기획회의에서 독친이라는 단어를 처음 접했다. 제작사 대표가 ‘이런 개념이 있다, 관련하여 아이디어가 있냐’고 물었고, 풀어보고 싶은 이야기가 떠올라서 시나리오를 쓰고 연출하게 됐다.

―자살한 여고생이나 그의 엄마 관점에서 이야기를 전개할 법한데, 형사를 중심에 두고 스릴러처럼 풀었다.

▲공포와 스릴러 장르를 좋아한다(그는 공포영화 ‘옥수역 귀신’을 각색했다). 특히 ‘그것이 알고 싶다’를 초딩 때부터 봤다. 엄마가 무척 걱정하셨다. 보지 말라고 말린 기억이 난다. 그런데 지금도 안본 회차가 없을 정도로 20년 된 애청자다.

―다큐멘터리와 같다는 평도 있다. 같은 장면을 다른 각도로 여러 번 반복해 보여준다.

▲객관적인 시선을 유지하는 게 중요하다고 봤다. 또 일본영화 ‘라쇼몽’처럼 하나의 사건을 두고 바라보는 입장에 따라 다르게 보이고, 또 이 사건이 남은 사람들에게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 그것을 포착하는게 중요했다.



―어떻게 보면 엄마가 빌런인데 단순히 빌런처럼 안보이게 연출했다.


▲혜영을 마녀사냥하는 식으로 이야기를 끌고 가고 싶지 않았다. 혜영 또한 올바른 부모가 무엇인지, 논의가 없던 사회적 분위기에서, 일종의 피해자라고 생각했다. 자신의 잘못을 알지만 인정을 못하다가 (죽은 누나 대신 엄마의 관심이 자신에게 쏠린) 막내 아들의 “누나 데려와”라는 부르짖음에 자신의 잘못을 인정하게 된 것이라고 본다.

―학생인 유리와 유리모의 관계와 교사인 기범과 기범부의 관계가 닮았다.

▲유리와 기범은 같은 독친의 자녀로서 같은 식당에서 부모님과 식사를 한다. 자식으로서 궁지에 몰린 비슷한 상황에서 유리가 수저를 내려놓고 화장실에 가는 식으로 현실을 회피했다면, 기범은 (유리의 죽음 후) 다른 선택을 한다. 기범의 행동이 유리가 선택할 수 있었던 다른 경우의 수라고 생각했다.

―한류스타면서 복수의 아이콘 장서희 배우는 어떻게 캐스팅했나?

▲그동안 매체에서 엄마 역할로 많이 소비된 배우가 아니길 바랐다. 장서희 배우는 복수 이미지가 강하다. 표독스러운 역할을 많이 했다. 그런데 얼굴에서 주는 귀여운 인상과 우아함이 있다. 복수의 아이콘과 동글동글한 이미지가 혜영 캐릭터와 만났을 때 아이러니함을 불러일으킬 것 같았다.

―신인 배우들의 연기가 뛰어났다. 비결은?

▲프리 프로덕션 단계에서 배우들을 자주 만났다. 본격적인 대본 리딩을 했다기보다 이런저런 사담을 많이 나눴다. 유리 역 강안나는 일주일에 3-4번 정도, 거의 사귀는 수준으로 만났다. 장서희 배우는 여행과 강아지라는 공통 관심사가 있었고, 뉴스뿐 아니라 인터넷에서 본 재미난 이야기까지 대화가 끊이지 않았다. 최소윤·윤준원(1994년생)은 나보다 두 살 어린데 또래라서 말이 잘 통했다. 배우들마다 특유의 말투가 있었는데, 그 말투를 살려서 대사도 손보고, 디렉팅도 했다. 국어 전공자라서 조사 하나까지 계산해서 쓴다. 하지만 그것과 별개로 배우들이 대사가 입에 안붙는다거나, 다른 식으로 표현했는데 그게 더 나으면 수정했다. 하지만 내 의도와 벗어나면 이런 맥락에서 이 워딩을 사용한 것이니 지켜달라고 부탁했다.

―엄마의 행동이 자식을 죽음으로 내몰 정도로 잘못이냐고 생각할 수도 있을 듯 한데...

▲우선 유리가 죽음을 선택한 것은 우울증 때문이다. 만약 정신이 건강했다면 다른 방식으로 그 문제를 해결했을 것이다. 유리가 아직 인간관계가 성숙되지 않은 청소년이라는 점도 살펴야 한다. 또 청소년 시절 친구관계는 큰 부분을 차지한다. 유리에게는 세계가 무너지는 일일수 있다고 본다.

―공들여 찍은 장면을 꼽는다면?

▲모든 감정신을 신경써서 찍었는데, 혜영이 경찰서에서 나와 무너지는 장면을 이 영화의 클라이맥스라고 생각하고 더 신경 써서 찍었다. (혜영은 딸과 동반자살을 하다 살아남은 준태를 유치장에서 만난다). 준태 캐릭터가 좋다. 이 영화에서 모든 인물이 유리에 대해 언급을 하는데, 그 언급이 각자 머릿속에 본인의 시점에서 본 유리라서 진실에 가깝지 않다. 반면 준태는 죽기 전 유리를 단 한 번, 몇시간 본 게 전부지만 유리를 가장 속속들이 아는 인물이며, 모든 진실을 말해주는 장면이라는 점에서 우리 영화의 핵심이라고 봤다.

―배우들께 특별히 강조했거나 배우들이 공들여 준비한 장면을 꼽는다면?

▲'유리' 강안나가 자살 전에 호숫가에서 갑자기 웃는 장면을 무척 고민했다. 그 웃음을 여러 가지 버전으로 공유하면서 나와 이야기했다. 어느 정도였냐면, 첫 인사가 “어떻게 웃어봤어?”였을 정도다. '기범' 윤준원은 자신의 분노를 아버지에게 표현하는 장면을 어떻게 표현할지 많이 고민했다. '예나' 최소윤은 춤추면서 오열하는 장면에서 어떻게 다른 연습생과 싸우고 또 오열할지 많이 고민했다. 준태는 잠깐 출연하나 유리에 대한 진실을 들려주는 아주 막중한 역할이라 부담감을 많이 느꼈다. .

― 후반부 예나가 ‘어른의 오만과 편견’을 지적하는 대사가 이 작품의 주제를 관통한다고 느꼈다.

▲오만과 편견은 제작사 대표님께 아이템을 처음 들었을 때부터 떠올랐다. 당시 대표님께 이 영화는 오만과 편견에 대한 이야기여야 한다고 강력히 말했다. (참고로 예나의 대사는 다음과 같다. ‘믿음은 오만과 편견을 부르거든요. 내가 주는 사랑이 받는 사람에게도 사랑일거라는 오만, 사랑받는 사람이라면 반드시 행복할 거라는 편견’)

―사회 이슈를 소재로 했지만 개인 문제로 보이도록 애썼다고 했는데 무슨 뜻인가?

▲저는 이야기를 만드는 일이, 누군가에게 깨달음을 주거나, 교훈을 주는데 목적이 있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그저 재미로 봤는데, 교훈을 얻거나 내 주변 상황을 떠올리게 하는 게 좋다. 교훈을 주는 방식으로 창작을 하고 싶지 않


다는 의미에서 개인의 상황에 집중해달라고 말한 것이다. 그래서 ‘독친’의 배경도 학군지로 하지 않았다. 강남권 아닌 지역, 어디서나 있을법한 어떤 동네, 어떤 엄마의 이야기로 남기고 싶었다.

―한국은 사교육이 열풍이 대단한데, 연출을 하면서 바란 점은?

▲부모가 본다면 내가 하는 행동이 옳지 않을 수도 있다는 의심을 해보길 바란다. 누군가의 자식이라면, 살면서 부모가 미워지는 순간이 있을 텐데 그럴 수도 있다, 반유교적이거나 반인륜적인 일은 아니라는 위로를 주고 싶었다.

―차기작이 ‘대치동 스캔들’로 대치동 강사가 주인공이던데 자전적 이야기인가?

▲처음에는 자전적 이야기로 시작했는데 그렇지 않다. 2020년 12월에 초고를 썼고 2022년 영진위 지원을 받은 상태에서 ‘독친’을 연출하게 됐다. 현재 후반작업 중인데, 대치동 강사라는 설정만 내 경험담이다. 영화는 개인적 일로 강사와 동창인 교사가 서류봉투를 주고받았는데, 문제유출로 의심받으면서 일어나는 이야기다.

―제목을 ‘독친’으로 고수한 이유는?

▲제목이 스포일러라 다른 제목도 생각했으나 이 영화를 가장 설명해주는 단어라 다른 제목이 떠오르지 않았다. 큰 반전이 숨어있는 영화는 아니라서 그냥 다 드러내고, 이야기로 승부를 보기로 했다.
이에 옆에 있던 홍보 관계자는 “독친이라는 제목은 완벽하다 .제목 자체가 셀링 포인트”라고 말했다.


jashin@fnnews.com 신진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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