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파 속 떨던 치매 할머니, 지문도 닳았는데…지팡이 덕 가족 품으로
뉴스1
2025.02.27 07:00
수정 : 2025.02.27 09:38기사원문
(서울=뉴스1) 박혜연 기자 = "여기 할머니가 미용실을 계속 찾으시는데요. 치매기가 있으신 것 같아요."
27일 경찰에 따르면 지난 23일 낮 12시 40분쯤 112 신고가 접수됐다. 서울은 최저 영하 6도까지 내려가고 찬 바람이 불면서 강추위가 예고됐던 날이었다.
이 순경은 "보통 치매 어르신은 목걸이나 팔찌에 성함과 보호자 연락처가 적혀 있는 경우가 많은데 당시 할머니는 걸고 계신 게 아무것도 없었다"고 회상했다.
지팡이를 짚은 할머니는 오랫동안 야외에서 추위에 떨었던 탓인지 거동이 심하게 불편해 보였다고 한다. 걸음이 워낙 위태로워 순찰차에 올라타는 과정마저도 경찰이 옆에서 부축해야 할 정도였다.
우선 파출소로 할머니를 모시고 온 경찰들은 따뜻한 음료를 주며 안정시킨 뒤 지문스캐너로 인적 사항을 파악해 보려 했지만 5차례 시도 끝에 실패했다. 고령이라 손가락 끝 지문이 거의 다 닳아서 스캐너에 인식이 제대로 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난감하던 이 순경의 눈에 들어온 것은 할머니의 지팡이였다. 이 순경은 "저희 할아버지도 아흔이 넘으셔서 지팡이를 짚고 다니시는데 어르신들 지팡이에는 이름을 새기는 경우가 있어서 문득 생각이 났다"고 했다.
자세히 살펴보자 짐작대로 지팡이에는 '심OO'이라는 이름이 새겨져 있었다. 이름으로 조회해 본 결과 할머니의 신상정보와 함께 집 주소, 연락처까지 찾을 수 있었다. 집에 연락하자 놀란 며느리가 한달음에 파출소를 찾아왔다.
아흔이 넘은 심 할머니는 오전 9시쯤 평소에 다니던 '미용실에 간다'며 집을 나온 뒤 연락이 되지 않아 마침 가족들도 찾아다니던 상황이었다고 했다. 경찰에 신고될 때까지 무려 세 시간 반이나 길을 헤매고 있던 셈이다. 심 할머니가 조금만 더 늦게 발견됐더라면 건강이 급격히 악화할 수도 있었다.
심 할머니 소식을 듣고 달려온 며느리는 이태원파출소 직원들에게 깊은 감사 인사를 전했다. 며느리를 보고 심 할머니도 안심이 됐는지 웃는 얼굴로 경찰관 한명 한명에게 고맙다며 악수를 청하고는 집으로 돌아갔다.
경찰에 임용된 지 이제 막 1년이 지난 이 순경은 치매 노인을 구조해 본 경험이 이번이 처음이라고 했다. 이 순경은 "저도 집에 연세가 많으신 할머니, 할아버지가 계시니까 좀 더 빨리 (가족을) 찾아드리고 싶었는데 잘 찾게 돼서 다행이었다"며 "별로 대단한 일을 한 건 아니다"라고 멋쩍게 웃었다.
이 순경은 "치매 어르신은 목걸이나 팔찌에 꼭 성함과 주소, 보호자 연락처를 적어 걸어주시거나 관할 경찰서에 등록해 주시면 위급할 때 도움이 될 수 있다"며 "또 혼자 돌아다니고 계신 어르신들을 보시면 자기 가족이라고 생각하고 적극적으로 신고해 주시면 좋겠다"고 당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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