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단이 무너진다"...이재명 정부, 철강·정유·석유화학 공약 '시험대'

파이낸셜뉴스       2025.06.18 16:19   수정 : 2025.06.18 20:22기사원문
수소환원제철·스페셜티 전환 등 대전환 과제 산적
정부 실질 지원 여부에 산업계 촉각
전문가 "CCUS·그린본드 등 구체 지원책 필수"





[파이낸셜뉴스] 이재명 대통령이 후보 시절 내걸었던 철강·정유·석유화학 산업 재도약 공약이 본격적인 시험대에 올랐다. 포항·여수·광양·울산 등 주요 산업단지가 경기 침체로 위기를 겪는 가운데 수소환원제철 상용화와 스페셜티 전환, 전력요금 개편 등 대규모 구조 전환을 앞두고 정부가 어느 수준까지 실질적인 지원에 나설지가 산업계 최대 관심사로 떠오르고 있다. 전문가들은 공약은 충분하지만 이를 실행력 있는 정책으로 구체화할 구조적 장치 마련이 시급하다고 지적한다.

여수산단·포항 등 지역 산업 중심 공약 다수
18일 업계에 따르면, 이 대통령은 대선 과정에서 'ABCDEF' 성장 전략을 통해 철강·정유·석유화학을 제조업 재도약의 핵심 축으로 제시했다. 포항·광양·여수·서산·당진·울산 등 주요 산업 거점을 '산업위기 대응 특별지역'으로 지정하고 정부 주도의 구조 전환과 연구개발(R&D) 지원을 약속했다. 여수산단의 친환경 스페셜티 전환, 여수석유화학특별법 제정, 포항 수소환원제철 상용화는 대표적인 지역 밀착형 공약으로 꼽힌다.

이 대통령은 철강 산업과 관련해 '포항 수소·철강·신소재 특화지구' 조성과 수소환원제철 기술 상용화에 대한 정부 지원을 공언했다. 이는 수소 기반 친환경 제조업으로의 전환이라는 국가 전략과도 궤를 같이한다.

석유화학 부문에서는 여수산단을 중심으로 구조 전환과 스페셜티 제품 육성을 핵심으로 한 '석유화학산업특별법' 제정을 공약했다. 여수산단이 최근 산업위기 선제대응지역으로 지정된 만큼 법이 제정되면 지역 경제 회복과 일자리 창출에 긍정적인 영향을 미칠 것으로 기대된다.

다만, 수십조원이 투입되는 초기 투자 비용을 민간이 전적으로 감당하기는 어려운 만큼 재정과 세제 측면에서 정부 지원이 필요하다는 목소리가 크다. 철강업계는 수소환원제철 상용화에만 20조~30조원이 들 것으로 추산하고 있으며, 철강업 전체의 수소환원제철 전환 비용은 68조5000억원에 이를 것으로 보고 있다.

여수산단을 중심으로 한 석유화학 산업 전환도 지지부진하다. 석유화학산업특별법이 국회에 발의됐지만, 특정 업종에 대한 특혜 논란이 제기되면서 입법 속도는 더딘 상태다.

정유업계도 정책 사각지대를 지적하고 있다. 에쓰오일은 9조3000억원 규모의 '샤힌 프로젝트'를 추진 중이지만 대기업이라는 이유로 임시투자세액공제 대상에서 제외돼 세제 혜택을 받지 못했다. 여기에 전력요금 인상, 탄소세 도입, 횡재세 재논의 우려까지 겹치며 '삼중고'에 시달리고 있다는 지적이다.

산업단지가 밀집한 지역의 체감경기 역시 악화하고 있다. 광양상공회의소에 따르면, 올해 1·4분기 광양지역 기업경기전망지수(BSI)는 66.7로 전 분기(81.5) 대비 14.8p 하락했다. 이는 13분기 연속 기준치인 100을 밑도는 수준이다.

전문가 "단순 지원 아닌 구조개편 유도해야"


전문가들은 공약을 실현 가능한 정책으로 전환하려면 제도적 장치 마련이 핵심이라고 입을 모은다.

김대종 세종대 경영학과 교수는 "석유화학 산업의 탈탄소·고부가 전환을 위해 대기업도 정부의 녹색·첨단·사회책임 지원 대상에 포함돼야 한다"며 "단순한 지원을 넘어 구조 전환을 유도하는 정책 설계가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특히 김 교수는 대기업의 탄소포집·활용·저장(CCUS)이나 바이오매스 전환 투자에 대해 세액공제나 특별기금 지원이 필요하다고 제안했다. 또, 산업은행 등 정책금융기관이 환경·사회·지배구조(ESG) 연계 대출이나 그린본드 보증을 통해 단순 유동성 공급을 넘어 구조 혁신을 유도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울산·여수·대산 등 주요 석화 벨트를 첨단소재 클러스터로 육성하면서 대기업의 고부가 라인 신설을 위한 입주 자격 부여 검토 필요성도 덧붙였다.


철강 산업도 고부가가치 제품 개발과 미래 기술에 대한 투자가 병행이 요구된다. 민동준 연세대 신소재공학부 교수는 "철강 산업의 지속 가능성을 확보하려면 단편적인 기술 지원을 넘어선 국가 전략과 법제화가 시급하다"며 "정부가 규제 완화, 세제 혜택, 설비 전환 지원 등을 포함한 종합적인 마스터플랜을 마련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는 "고탄소 설비를 친환경 공정으로 전환하는 과정에서 온실가스 유상할당 등 추가 비용이 늘어나면 국내 기업들은 해외 이전을 고려할 수밖에 없다"며 "일본·미국·중국 등은 철강 산업을 국가 전략 차원에서 보호하는 반면 한국은 기업에만 책임을 떠넘기고 있는데 철강 산업은 더 이상 개별 기업의 문제가 아닌 국가 간 경쟁의 무대에서 다뤄져야 한다"고 말했다.

moving@fnnews.com 이동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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