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뎌진 감각 파고드는 '무대 위 광기'
파이낸셜뉴스
2025.08.11 18:55
수정 : 2025.08.11 19:54기사원문
역사학자 크리스틴 로젠은 '경험의 멸종'에서 가상경험이 실제경험을 대체한다며 강력하게 비판한다. 사실 SNS의 '좋아요'가 인간관계를 대신하며, 여행채널이 실제 못잖은 대리체험을 이끌며, 알고리즘이 직접경험마저 미리 선별해 주는 것이 우리의 일상 아닌가. 그러나 기술발달에 따른 디지털 환경에 인간이 언제나 만족하는 것만은 아니다. 오히려 결핍은 새로운 욕구로 이어질 수 있고, 공연은 감각을 극대화하며 사람들을 극장으로 이끈다.
공연예술에서의 현장감은 실제 삶에서 제한돼 온 감각과 정서, 감정을 풍성하게 되살린다. 특히 무대와 객석의 벽을 허물고 관객이 이동하는 관객참여형으로 만들어진 공연들은 때때로 '경험하는 공연'이라 말해지며, 일상에서 조금씩 박탈됐던 물리적인 자극 혹은 실제적 경험을 작품을 매개로 되돌려 준다. '슬립 노 모어'에 대한 사람들의 열광은 바로 여기에 있을 것이다.
공연은 자극적 요소들이 극대화돼 있지만, 채널을 키우듯 무작정 확장시킨 것이 아니다. 오히려 예리하고 섬세하게 파고든 자극에 의해 무뎌진 감각이 통증처럼 되살아나는 쪽이다. 그래서 원작과 현재의 호텔 공간 안에 무수한 감정이 흘러 다님을 마주하게 한다. 경험이 깊어지는 순간이다.
엄현희 연극 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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