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은 ‘기업중시’ 행동은 ‘기업통제’
파이낸셜뉴스
2025.08.20 18:13
수정 : 2025.08.20 18:13기사원문
마스가 등 일등공신 기업
상법·노봉법에 진퇴양난
정치권, 기업 헌신 인정을
하지만 트럼프 대통령이 가장 흡족해한 것은 프로젝트의 내용이었을 것이다. 무려 1500억달러. 우리가 펀드를 만들어, 미국 조선업에 투자해서, 조선소 설비를 새로 만들고, 인력 파견과 현지 근로자 훈련 후 배를 건조한다. 아무리 보아도 어딘가 이상하다. 아무래도 순수한 사업논리는 아닌 것 같다. 한미협상에서 수세인 우리의 국익까지 감안한 사업보국(事業報國)의 뜻도 있지 않았을까. 혼자 생각인지 몰라도 그런 의구심이 들지 않을 수 없다. 미국의 조선업 생태계는 무너진 지 오래다. 지금 투자를 시작해서 배를 만들기까지 얼마나 많은 자금과 오랜 시간이 필요할지 가늠조차 어렵다. 마스가 프로젝트에서 수익을 내기까지 적자를 내며 버틸 수 있는 기간이 얼마나 될지….
더 걱정은 우리 정치 리스크다. 조선업 펀드를 포함한 3500억달러의 대미투자는 기업들의 적극적 참여 없이는 불가능하다. 대대적인 규제완화를 통해 기업의 사기를 진작해야 마땅하다. 이재명 대통령도 "정부가 기업에 가장 실질적으로 기여할 수 있는 것은 규제 철폐와 합리화"라며 "기업이 본연의 경쟁력에 집중할 수 있도록 적극 지원하겠다"고 밝혔다. 문제는 현실이다. 기업과 경제단체들의 읍소에도 불구하고 규제는 더 세게 옥죄어 오고 있다. 상법과 노란봉투법(노조법 2·3조 개정안) 등이 대표적이다. 근본적인 리스크는 기업에 대한 여당 일각의 인식이다. "우리나라 기업들이 더러운 짓을 해서 기업의 성과를 다 빼먹고 주주들에게 주지를 않는다." 상법 개정에 앞장선 한 여당 의원의 발언이다.
상법이 기업의 진로를 막는다면 노란봉투법은 기업의 후방을 차단하는 것이다. 현재 쟁의행위 대상은 '근로조건'에 한정되는데, 개정안은 이를 '근로조건에 영향을 미치는 사업 경영상의 결정'까지 포함했다. 회사의 구조조정, 생산공장 해외 이전, 해외 생산시설 투자 등도 노동쟁의 대상이 될 수 있다. HD한국조선해양, 한화오션, 삼성중공업 등의 마스가 프로젝트나 미국 공장 증설에 나선 현대차그룹, 미국 내 반도체 생산을 늘리고 있는 삼성전자 등이 모두 파업 대상이 될 수 있다. 노조도 국익 관점에서 판단할 것이라는 구윤철 경제부총리의 언급은 희망사항에 불과하다.
정치인들의 진심은 말이 아니라 발에서 알 수 있다. 말은 기업중시라면서 발은 기업 적대시 입법에 바쁘다면 진심이 무엇인지 설명이 필요 없다. 한미 정상회담을 앞둔 이재명 대통령은 든든할 것이다. 마스가 등 대미투자를 책임질 세계적 위상의 우리 기업들이 있기 때문이다. 기업 총수들을 모아 한미 정상회담 전략회의를 하며 '원팀'을 강조한 이유도 그래서일 것이다. 이 대통령은 여당에 명확히 요구해야 한다. 기업을 옥죄는 입법을 자제하라고. '기업이 관세협상의 일등공신'이라는 이 대통령 발언이 진심이라면 대통령과 여당이 따로 노는 게 현재의 모습이다. 있는 리스크도 정치권이 앞장서 제거해야 할 시기에 없는 리스크를 새로 만드는 것은 기업(인)의 헌신에 대한 보답은커녕 최소한의 도리도 아니다.
dinoh7869@fnnews.com
※ 저작권자 ⓒ 파이낸셜뉴스, 무단전재-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