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재자였던 미국이 리스크 된 시대, 한일관계 새 국면으로"...기미야 도쿄대 명예교수
파이낸셜뉴스
2025.08.24 10:00
수정 : 2025.08.24 10:00기사원문
40여년 한반도 연구한 기미야 다다시 명예교수 본지 인터뷰
"과거 미국이 중재자였다면, 지금은 한일이 함께 미국 대응 인식 공유"
"'안정적 발전' 합의, 한일관계 관리의 새 키워드"
"경제안보·기술·청년 교류 의제로 실익 쌓아가야"
"포스트 이시바 구도, 차기 정권 성격에 따라 한일 관계 갈림길"
【도쿄=김경민 특파원】한미일 관계의 구도가 달라지고 있다. 과거에는 미국이 불안한 한일관계의 중재자 역할을 했지만, 도널드 트럼프 시대 이후에는 관세·방위비 분담 등 '미국 리스크'가 부상하면서 한국과 일본이 함께 대응할 필요성이 커졌다. 지난 23일 열린 한일 정상회담 역시 이런 구조적 변화 속에서 '공통 과제 협력'에 방점이 찍혔다는 평가가 나온다.
일본 내 대표적 지한파 학자인 기미야 다다시 도쿄대 명예교수는 24일 본지와 전화 인터뷰에서 "이번 정상회담은 짧은 준비 기간으로 큰 성과를 기대할 만한 회담은 아니었지만 '안정적 발전'이라는 표현이 처음 등장했다는 점이 인상적이었다"고 강조했다. 그는 "정권 교체 때마다 관계가 흔들리던 과거와 달리 안정적으로 관리해야 한다는 데 합의한 것은 중요한 진전"이라고 말했다.
▲과거에도 전례가 있었다. 1961년 11월 당시 박정희 국가재건최고회의 의장이 미국을 가는 길에 일본에 들러 이케다 하야토 총리를 만났다. 그때는 미국이 중재하는 구도였지만 지금은 다르다. 트럼프 2기 체제에서 관세, 방위비 문제 같은 리스크가 커졌고, 이를 대응하기 위해 한국과 일본이 협력해야 한다는 인식을 공유하게 됐다. 이시바 정부도 그런 관점을 갖고 있다.
―과거사 문제가 의제에서 빠졌다. 해결 방향을 어떻게 보나.
▲이번 회담에서 '한일 파트너십 선언 계승'을 확인한 것만 해도 의미가 있다. 역사 문제는 후순위로 미뤄졌고, 당장은 경제와 안보가 우선이다. 관계가 더 좋아지면 역사 문제를 다룰 수 있을 것이다.
―정상회담 의제 중 어떤 부분이 양국 관계의 동력이 될 수 있나.
▲경제안보, 기술 협력, 청년 교류 모두 기대해볼 만하다. 실질적 성과가 쌓이면 관계를 공고히 하는 힘이 될 것이다.
―김대중-오부치 공동선언을 넘어서는 새로운 선언 가능성은.
▲이시바 정부가 장기 정권으로 이어질 수 있느냐가 관건이다. 차기 정권이 하야시 요시마사 관방장관 등 현 내각을 계승하는 계열이면 가능성이 있지만, 극우 쪽이 정권을 잡으면 어렵다.
―이번 회담의 지정학적 의미는.
▲북핵 문제에 대해서는 양국이 협력해야 한다는 데 합의했다. 이 대통령이 북한에 부드러운 메시지를 보내더라도, 북핵 문제를 건드렸기 때문에 북한의 반발이 있을 것으로 본다. 중국 대응은 세 나라(한미일)의 입장이 조금씩 다르다. 미국은 강경 일변도지만, 일본은 상대적으로 덜하고 한국은 일본보다 더 부드럽다. 한국 새 정부는 중국에 대해 적극 대응하기 싫은 부분이 있을 것이다.
―한일 관계가 앞으로 더 공고히 발전하기 위한 과제는.
▲전략적 안보·경제 협력에서 실익을 쌓아야 한다. 공통 과제를 해결하면서 서로 중요한 파트너라는 인식을 공유해야 한다. '한일 관계의 체력'을 키워가야 한다. 이번 정상회담은 그 첫발을 뗀 의미가 있다.
―이 대통령의 외교를 어떻게 평가하나.
▲문재인·윤석열 전 대통령이 이념에 치우친 외교를 했던 것과 달리 이 대통령은 국익과 실용을 강조했다. 단기적으로는 긍정적이지만 장기적으로 어떤 큰 그림을 제시할지는 지켜봐야 한다.
―이번 회담 결과가 이시바 내각의 지지율에 미칠 영향은.
▲일본은 외교 성과가 지지율에 크게 반영되지 않는다. 다만 부정적 효과는 없을 것이다. 소폭이나마 긍정적으로 작용할 수 있다. 사퇴 압박이 있지만 이시바 시게루 총리는 정권 유지 의지가 강하기 때문에 쉽게 물러서지 않을 것이다.
―'포스트 이시바' 구도는 어떻게 전망하나.
▲이시바 정부가 지지율을 유지한 채 퇴진하면 하야시 관방장관이 유력하다고 본다. 하지만 지지율이 낮아지면 예측하기 어렵다. 차기 정권의 성격에 따라 한일 관계의 방향도 달라질 것이다.
km@fnnews.com 김경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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