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역질서 흔드는 美… 韓도 새 무역동맹 찾기 서둘러야
파이낸셜뉴스
2025.08.24 18:53
수정 : 2025.08.24 18:54기사원문
요동치는 통상질서… 한국의 전략은
트럼프 ‘관세폭탄’ 통상전략 채택
각국 ‘새 무역협정’ 만들기 적극 나서
영국-인도, 지난달 자유무역협정 체결
EU도 연내 인도와 FTA 목표로 협상중
한국, 새 협력 위해 CPTPP 가입하고
일본과 약점 상호보완한 FTA 체결해야
美·中 의존도 낮춰 韓 경제안보 강화를
당장 우리나라가 직접적 타격을 입었다. 한미 관세협상으로 품목 관세 없이 수출이 가능했던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관세 조항은 무너졌다.
양국 협상 결과에 따라 상호관세, 품목별 관세가 대체했다. 한국만의 상황은 아니다. 세계 각국은 새로운 자유 무역 블록 형성 등 대안 모색에 적극 나서고 있다.
■미국 빼고, 뭉치는 세계
무역자유화를 기반으로 하는 세계화는 제법 오래 전부터 끝날 조짐이었다. 지난 2008년 글로벌 경제위기로 미국 금융시스템의 약점이 드러났다. 브렉시트(영국의 유럽연합 탈퇴)로 갈라지기 시작한 세계화 틈새는 더 벌어졌다.
2017년 트럼프 1기 행정부 출범은 확연한 신호였다. 미국인들이 "살기 힘들어서 더 이상 세계경영 못하겠다"는 걸 표로 확인해 줬다. 세계화를 유지해도 미국이 얻는 정치·경제적 실익은 적고 되레 손해를 보고 있다고 봤다. 미국 북동부와 중서부의 쇠락한 제조업 중심지를 일컫는 '러스트벨트'가 바닥 민심의 변화를 대변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러스트벨트의 전폭적 지지로 두번째 임기를 시작했다. 그리고 트레이드 마크 '관세폭탄'을 주요 통상전략으로 채택했다. 관세를 지렛대 삼아 '마가'(MAGA· 미국을 다시 위대하게) 브렌드로 미국 제조업 부흥을 꾀하고 있다. 그 과정에서 다자주의는 쇠퇴하고 보호무역주의는 강화되는 흐름이다. 정확히 말하면 전임 바이든 대통령 정부도 비슷했다. '인플레이션감축법' '칩스법'을 통해 미국 중심의 무역질서 강화에 집중해 왔다. '미국 제조업을 살리고 일자리를 구한다'는 목표였다. 보조금 지급과 관세 부과라는 정책적 차이만 있을 뿐 본질은 같다.
미국의 이같은 통상정책 기조는 트럼프 이후 새 정부가 들어서도 이어질 게 확실하다. 지난해 노벨경제학상을 받은 제임스 로빈슨 미국 시카고대 교수는 지난 12일 한국경제인연합회와 대외경제정책연구원이 공동 개최한 태평양경제협력위원회(PECC)총회에 참석 "글로벌 자유무역체제는 더 이상 작동하지 않을 가능성이 크다"고 진단했다.
이처럼 미국의 배타주의 강도가 강해지고 지속가능성이 높아지자 세계 각국은 새 무역동맹 만들기에 적극 나서고 있다. 영국과 인도는 지난달 24일 FTA 협정을 체결했다. 양국의 협상은 3년 이상 끌어왔지만 트럼프 정부 들어 불확실성이 커지자 체결로 급속히 방향을 틀었다. 영국이 브렉시트 이후 맺은 최대 규모 협정이다. 양국은 연간 255억 파운드(약 48조원)의 무역이 증가할 것으로 추정됐다.
EU도 올 연말을 목표로 인도와 FTA 체결을 서두르고 있다. EU는 최근 아시아 국가 중 인도네시아와도 FTA 협상에 나섰다. EU는 중동지역국가와도 FTA 협상에 나서고 있다. 아랍에미리트(UAE)와 공식협상을 개시한 게 대표적이다. EU는 포괄적·점진적 환태평양경제동반자협정(CPTPP)과의 협력도 모색 중이다. CPTPP는 일본, 호주, 베트남, 멕시코 등이 결성한 다자간 FTA다. 2018년 출범했다. 지난해 12월 영국이 합류하면서 회원국은 12개국이다.중국도 CPTPP 가입 의사를 밝혔고 적극 추진 중이다. 중국과 대만은 2021년 9월 잇달아 CPTPP 가입을 신청하기도 했다. 하지만 중국, 대만 모두 가입 승인을 받지 못했다. 정치적으로 '하나의 중국'이슈에다 중국 가입 땐 미국·캐나다·멕시코 무역협정(USMCA)이 영향을 받을 수 있다는 회원국의 판단이 영향을 미친 것으로 알려졌다. 캐나다와 멕시코는 CPTPP 회원국이다. CPTPP는 회원국 전체가 찬성해야 가입이 가능하다.
미국으로부터 35%의 '관세폭탄'을 맞은 캐나다도 아세안(동남아국가연합)과 FTA를 추진, 마무리 단계다. 캐나다는 메르코수르(남미공동시장)와도 FTA 체결을 추진 중이다.
■'트럼프 라운드'… 對美 의존도 낮춰야
미국이 다자협상틀인 세계무역기구(WTO)를 무시하고 세계 각국과 양자 또는 소규모 다자협상을 벌이면서 사실상 새로운 무역 협상 방식과 체제가 시작됐다. 2차 세계대전 이후 자유무역을 매개로 미국이 주도했던 세계무역기구(WTO) 체제의 종언이다. 이른바 '트럼프 라운드'다. 트럼프 라운드는 제이미슨 그리어 미국 무역대표부 대표의 언급 중 나온 신조어다. 미국 빼고 뭉치는 세계 각국의 움직임은 전조현상이라 할만하다.
트럼프 라운드가 기정사실화되면 우리나라 경제 전반은 영향이 불가피하다. 한미 FTA로 그동안 다른 국가에 비해 낮은 관세를 부과받은데다 자동차, 철강, 전자 등 관세변동에 민감한 업종이 주력산업이어서다.
국회예산정책처는 한국 15%, 중국 30% 관세 부과 때 실질 국내총생산(GDP)가 0.02% 줄어들 것으로 예상했다. 수출과 경제성장에 부정적 효과가 불가피하다는 의미다. 산업별로 자동차는 미국 시장에서 일본, 유럽산 자동차와 경쟁이 심화될 것이다. 반도체 산업의 경우, 무관세 혜택이 미국 현지 생산품만 해당되는지, 미국내 공장을 보유한 기업에도 적용되는지 아직 확실하지 않다.
한미 관세협상 타결을 이끈 '마스가 프로젝트'의 후폭풍도 경제 전반에 부담을 키울 수 있다. 마스가 프로젝트는 조선 산업의 미국 이전을 포함하고 있다. 국내 조선업의 공동화를 가속화하고 일자리 불안을 초래할 수 있다.
통상압력이 계속될 수 있다는 부분도 부담요인이다. 대미 수출 증가세가 지속되고 있어 우리나라의 주요 산업이 미국 관세정책의 표적이 될 여지가 높다는 것이다. 한국개발연구원(KDI)가 지난달 내놓은 '2010년대 이후 무역구조 변화와 경제안보에 대한 함의' 보고서에 따르면 대미 무역수지는 2020년부터 흑자폭이 확대돼 2024년 600억달러에 근접할 정도로 증가했다. 대미 수출 증가 영향이다. 지난해 기준 미국의 3대 적자 품목은 한국의 주요 대미 수출 품목(기계류·생활가전, 반도체·전자기기, 자동차 및 부품)과 정확히 일치한다.
KDI 보고서는 "트럼프 행정부 이후로도 통상압력은 계속될 수 있다"고 전망했다.
■"CPTPP 가입, 韓日 FTA 공론화해야"
미국의 통상압력을 줄여나가는 해법을 찾아야 한다는 게 전문가들의 조언이다. 미국에 대한 의존도를 줄여나가는 방식이다. 미국과 함께 중국 의존도도 낮춰야 한다. 미국은 흑자 폭 확대로 통상 압력이 강화되고 있지만 중국은 수입증가로 무역수지가 악화되는 게 최대 부담요인이다. 여기에다 중국으로부터의 수입확대는 국내 제조업 공급망에서 중국 의존도 상승으로 이어져 경제 안보에 위협이 되고 미래 산업의 경쟁력 강화에도 걸림돌이 되고 있다. 실제 2차전지, 로보틱스, 재생에너지 등 우리가 육성 중인 미래산업에서도 중국의 공급망 장악력은 매우 높다.
KDI 정성훈 선임연구위원은 "2021년 이후 진전이 없는 CPTPP 가입을 서두를 필요가 있다"고 밝혔다. CPTPP는 미국과 중국을 제외한 12개 회원국 간 높은 수준의 개방을 표방하고 있다. 미중 의존도가 높은 우리나라에 이들 양국에 대한 의존도를 완화하 공급망 안정화에 효과적이라는 것이다. 영국이 CPTPP에 참여하면서 경제권이 유럽으로 확대됐다.
CPTPP 회원국은 일본, 캐나다, 호주, 뉴질랜드, 멕시코, 칠레, 페루, 말레이시아, 베트남, 싱가포르, 브루나이에다 지난해 12월 가입한 영국까지 12개국이다. 이들 국가의 GDP는 세계 전체 GDP에서 15%를 차지한다.
이재명 정부도 중단됐던 CPTPP 가입 추진 의사를 우회적으로 표명했다.
이 대통령은 지난 21일 한일 정상회담을 앞두고 일본 요미우리신문과 인터뷰에서 "한일은 지금까지 협력 수준을 넘어서는 획기적인 경제협력 관계를 만들어 나갈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또 "동아시아를 포함한 태평양 연안국들의 경제협력기구를 확고하게 만들어 나가는 일도 이제는 진지하게 논의해야 할 때가 됐다"고 덧붙였다.
일본은 CPTPP 주도국이다. 태평양 연안국가들의 경제협력기구는 CPTPP를 지칭하는 것으로 분석된다.
미국이 대외정책기조를 상호주의가 아닌 일방주의로 전환하면서 우리나라와 일본 간의 경제협력 필요성은 한층 높아졌다는 지적이 제기되고 있다.
강인수 숙명여대 경제학부 교수는 "미국의 정책기조 전환은 큰 틀에서 보면 경제 부문에서 한국, 중국, 일본 협력강화는 (필요하긴 하지만) 미국이 반발할 수 있다"며 "결국 한일 FTA로 양국간 협력관계를 촘촘히하는 게 중요하다"고 말했다.
CPTPP 가입도 한일 협력 확대 차원에서 최우선 고려 대상이다. 우리나라는 문재인 정부 때인 2020년 12월 무역의날 기념식에서 당시 문 전 대통령이 "CPTPP 가입을 검토하겠다"고 처음으로 언급하면서 가입 문제가 수면 위로 떠올랐다. 대외경제정책연구원은 CPTPP 가입 때 실질 GDP가 최대 0.35% 증가할 것으로 추산하기도 했다.
하지만 실제 가입 논의는 지지부진했다. 다자간 FTA인 CPTPP는 시장 개방 수준이 거의 100%에 달해 국내 농어업에서 반대가 컸다. 또 한일 관계도 최악으로 치달았다. 일본도 은연 중 반대했다.
강인수 교수는 "글로벌 통상기조 전환으로 일본도 한국과 협력이 중요하다는 인식을 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며 "한국과 일본은 서로의 약점을 상호보완하는 게 맞고 한국의 CPTPP 가입은 그래서 중요한 의미가 있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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