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서 찾은 농촌 활력…워케이션 성지·K-하겐다즈의 꿈
파이낸셜뉴스
2025.09.08 18:01
수정 : 2025.09.08 18:37기사원문
세화리 지역소멸 타개하려 마을사업 시작
‘질그랭이센터’ 워케이션 거점으로 부상
'한국판 하겐다즈' 노리는 미스터 밀크
성이시돌 목장서 유기농 우유 조달
제주관광객 필수선물 '우유샌드' 인기
[파이낸셜뉴스] 제주 한 마을은 '워케이션의 성지'로 불리며 외지인을 불러들이고 있고, 제주 한 유제품 공장은 농식품 모태펀드의 도움을 받아 식품업계 첫 아기 유니콘 기업으로 거듭났다.
농림축산식품부가 추진하는 모태펀드, 농촌재생거점 마을, 빈집 활용 등의 정책들은 농촌 지역 소멸 대응과 지역 경제 활성화를 함께 꾀하고 있다.
지방소멸 걱정 NO...워케이션의 성지로
5일 찾은 제주 구좌읍 세화리. 동쪽 해변이 내려다보이는 ‘질그랭이 거점센터’에선 노트북을 열고 일하다 잠시 자판을 멈추면 눈앞엔 푸른 바다가 펼쳐진다.
예식장이자 리 사무소였던 낡은 건물이, 이제는 마을 주민과 방문객이 함께 어울리는 사랑방이자 ‘워케이션 성지’로 탈바꿈했다.
세화마을협동조합은 전국 최대 규모로, 현재 조합원만 494명이다. 2020년 1월 법인을 세워 체계적인 수익 사업을 준비했고, 구좌농촌중심지 활성화 사업의 일환으로 ‘질그랭이 워케이션 센터’를 열었다. ‘질그랭이’는 제주 방언으로 ‘게으르다’는 뜻이지만, 이곳에선 ‘여유롭게 지내라’는 긍정적 의미로 쓰인다.
센터는 예약률이 비수기 75%, 성수기 100%에 달하고, 재방문율도 38%를 기록한다. LG전자, 현대중공업, 이지스자산운용 등 기업들이 한 번에 100~150명 단위로 찾아와 워케이션을 즐겼다.
양군모 세화마을 PD는 “질그랭이는 말 그대로 ‘마을에 머물며 천천히 살아보라’는 메시지”라며 “섬 주민이 아니어도 이주민이나 방문객 누구든 협동조합에 가입해 함께 어울릴 수 있다”고 설명했다.
농식품부는 세화리 사례를 농촌 소멸 대응의 모델로 주목하고 있다. 세화리 워케이션 센터가 단순한 근무 공간을 넘어 생활인구 유입과 마을 주민의 일과 삶이 이어지는 무대로 바뀌어서다. 질그랭인 센터는 업무 공간을 벗어나면 세화 마을을 완연히 즐길 수 있는 프로그램도 마련했다.
주민이 운영하는 맛집·카페·숙박업소 매출이 늘었고 ‘바다멍’(해변에서 멍 때리기) 같은 체험은 브랜드로 자리 잡았다. 아울러 제주 해녀들과 2박3일간 물질을 하거나 문어와 성게 등으로 제주 해산물로 음식을 만들어보는 체류형 프로그램도 진행한다.
양 PD는 “워케이션을 왔지만 정작 일에 매여 바다를 제대로 느끼지 못한다는 손님들이 많다”며 “그래서 백사장에 의자를 내어두고 바다를 바라보게 한 뒤, 제가 직접 신청곡을 틀어주기도 한다”고 말했다.
이처럼 워케이션을 통해 세화리 마을에는 최근 3년간 약 600명이 다녀가며 약 2억 원 규모 소비가 발생했다.
질그랭이센터는 농식품부 사업을 시작으로 해수부 '세화항 어촌뉴딜300', 국토부의 도시재생사업에도 선정됐다. 마을이 활력을 되찾으면서 2022년 농식품부 '삶의 질' 우수사례, 2023년 행안부 로컬브랜딩 우수사례에도 선정됐다. 같은해 유엔세계관광기구(UNWTO) '최우수 관광마을'에도 선정됐다.
정부는 내년부터 워케이션 거점 조성 사업을 확대해 세화리 같은 ‘농촌재생거점마을’ 모델을 전국으로 확산할 계획이다.
농식품부 관계자는 "질그랭이 워케이션 센터는 농촌 생활인구 증가를 유도할 수 있는 수단으로 주목받고 있다"며 "농식품부는 이런 거점공간 조성을 확대하여 농촌 주민과 생활인구가 함께 누리는 농촌재생거점마을을 본격 추진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K-하겐다즈의 꿈...모태펀드가 도운 미스터밀크
제주시 한림읍 들녘 한가운데 자리한 유제품 공장. 4일 송미령 농식품부 장관이 찾은 이곳은 식품업계 첫 아기유니콘 기업으로 선정된 ‘미스터밀크’다.
아이스크림을 좋아한다는 송 장관은 "참 맛있다"며 한 컵을 비웠다.
유제품 공장 ‘미스터밀크’는 농식품 모태펀드의 도움을 받아 성장한 뒤 식품업계 첫 아기유니콘 기업이 됐다.
미스터밀크는 제주 대표 관광지인 성이시돌 목장에서 공급받는 유기농 원유로 제품을 생산한다. 젖소는 유기농 라이그라스를 먹고 자라 베타카로틴과 오메가3가 풍부한 것으로 알려졌다.
미스터밀크를 설립한 신세호 대표는 원래 원유 유통업체를 운영했다. 그러다 이탈리아를 찾아 치즈 학교, 이듬해에는 젤라토 학교에 다니며 기술을 익혔다. 그는 제주도에 공장을 짓고 이탈리아 치즈·젤라토 설비를 들여오기 위해 마음을 먹었다.
공장을 설립하려 했지만 문제가 된 것은 자금이었다. 이들의 숨통을 트이게 도와준 것은 농식품부 모태펀드였다. 지난 2019~2022년 세차례 모태펀드 투자(35억 원)를 받아 제조업으로 성공적으로 전환했다.
신 대표는 “냉동·해동 과정을 거친 수입 치즈와 달리, 현지에서 먹는 것 이상의 맛을 구현했다”며 자신감을 보였다.
실적은 빠르게 쌓였다. 2023년 3억 원이던 매출은 2024년 15억 원으로 늘었고, 올해 상반기만 23억 원을 기록했다. 하반기에는 50억 원이 예상된다.
제주공항에서 55만 개가 팔린 ‘우유샌드’는 관광객의 필수 구매품으로 자리 잡았다.
송 장관은 "식생활의 변화로 흰우유 만으로는 농가가 살기 어렵다. 치즈와 아이스크림 같은 가공이 농가의 활로가 된다”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출범한 지 15년 된 모태펀드는 말 그대로 시드머니, 최소한의 마중물로 올해 550억 원에서 내년에는 700억 원으로 투자를 늘릴 계획"이라며 "민간 투자가 더해져야 효과가 커지고, 앞으로는 투자 분야도 더 넓혀야 한다”고 밝혔다.
spring@fnnews.com 이보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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