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기가 아니라서 괜찮다고요?... 액상형 전자담배, '무취' 뒤에 가려진 실체

파이낸셜뉴스       2025.09.13 07:00   수정 : 2025.11.04 09:19기사원문



[파이낸셜뉴스] 냄새와 연기가 적어 실내에서도 괜찮을 거라며 피워지는 액상형 전자담배. 흡연자는 주변을 의식하지 않고 피우고, 비흡연자조차 불편함을 덜 느끼는 경우가 많다. 하지만 냄새가 덜 난다는 점은 액상형 전자담배의 장점이 아니라 함정이다. '무취' 뒤에 가려진 액상형 전자담배의 실체를 파헤쳐보았다.

액상형 전자담배란?


전자담배는 담뱃잎으로 만든 궐련에 불을 붙여 피우는 궐련담배(연초)와 달리 전자기기를 이용해 열을 가해 발생시킨 니코틴 등 증기를 흡입하는 신종 담배다. 전자담배에는 니코틴이 포함된 액상을 가열해 나온 증기를 들이마시는 액상형과, 담뱃잎이 들어간 작은 궐련을 쪄서 나오는 증기를 흡입하는 궐련형이 있다.

액상형 전자담배는 800~900℃의 고온에서 연소되는 궐련담배와 비교하면 낮은 200~350℃에서 가열하는 방식으로 니코틴 등을 기화시킨다. 때문에 궐련담배를 태울 때 나오는 불완전 연소 산물과 악취 유발 성분등이 적어 선호된다.

또한 연소가 아닌 기화 과정을 거치기 때문에 연기(smoke)가 아닌 증기(vapor)라는 의미에서, 영어권에서는 이를 반영해 전자담배 사용은 'smoke' 대신 'vape'로 표현한다.

담배 '연기'가 아니라서 괜찮다고요?


문제는 '증기'라는 표현 탓에 액상형 전자담배의 위험성이 가려진다는 점이다. 편의상 '증기'라고 부를 수는 있지만, 엄밀히 말하자면 니코틴, 포름알데히드 등 위험 물질과 향료 등이 미세 방울 형태로 기체와 섞여 있는 '에어로졸'이라고 표현하는 것이 더 적절하다고 세계보건기구(WHO)와 미국 질병통제예방센터(CDC)는 정의하고 있다.

또한 액상형 전자담배에서 발생하는 에어로졸에는 궐련담배보다 약 12배 더 많은 초미세먼지가 포함돼 있다. 질병관리청이 2022년 발표한 ‘간접흡연 실외 노출평가 연구’에 따르면 일반 담배 한 개비를 태울 때 배출되는 초미세먼지는 약 1만4000㎍ 수준이지만, 액상형 전자담배 0.2g에서는 무려 17만2000㎍이 배출됐다.

간접흡연 피해 범위도 더 넓다. 같은 연구에서 연초를 피웠을 때 발생하는 연기가 약 3m 반경에 그쳤던 반면, 액상형 전자담배의 에어로졸은 최대 10m까지 확산하는 것으로 확인됐다.



'더 좋은 담배'라고 말할 수 없는 이유


액상형 전자담배에 대한 국민 인식은 대체로 긍정적인 것으로 나타났다. 서울대 산하협력단 보건환경연구소의 '액상형 전자담배 제품 현황 및 인식 조사 연구보고서'에 따르면 만 19~64세 남녀 3400명의 응답자 중 약 25%(남성 24.2%, 여성 25.6%)가 액상형 전자담배가 연초에 비해 덜 해롭다고 인식하고 있었다. 또한 응답자의 약 28%(남성 29.8%, 여성 26.3%)는 액상 담배에 유해화학물질이 궐련담배보다 더 적게 들었을 것이라고 답했다. 성인 4명 중 1명 이상이 액상형 전자담배가 궐련담배에 비해 건강에 더 나은 선택이라고 생각하고 있는 것이다.

하지만 같은 보고서에 따르면 국내 유통 중인 액상형 전자담배 267개 중 점유율 상위 제품 44개에 대한 성분 분석 결과, 국제 암연구소 1급 발알물질인 벤젠이 16개(최대 20㎍/L) 검출된 것으로 나타났다. 이는 궐련 한 개비에서 나오는 벤젠의 약 3분의 1 수준이지만, 이를 두고 액상형 전자담배가 안전하다고 보기도 어렵다.

궐련담배에 없는 유해 성분도 문제로 지적된다. 액상형 전자담배에만 들어가는 가향성분인 디아세틸 역시 9개 제품에서 최대 38.7㎍/L 검출됐는데, 디아세틸은 폐 조직을 회복할 수 없을 정도로 두껍게 만들어 사망에 이르게 하는 물질이다. '두껍고 진한 증기'를 만들어 내는 성분인 프로필렌글리콜(PG)과 식물성 글리세린(VG)의 경우 가열될 때 포름알데히드 등의 독성 물질을 발생시칸다는 점도 지적된다.

액상형 전자담배 사용자는 궐련담배보다 흡연량이 늘어나 피해가 적다고 말하기 어렵다는 지적도 있다. 보건복지부 의뢰로 한국금연운동협의회가 수행한 '신종담배 확산에 따른 흡연정도 표준 평가지표 개발 및 적용 연구' 보고서에 따르면 ‘기상 후 5분 이내에 담배를 피운다’고 응답한 비율은 액상 전자담배 단독 사용자에서 30.0%로 가장 높게 나왔다.

담배를 담배라고 부르지 못하는 문제까지


오는 11월 1일부터 국내에서 판매되는 담배에 포함된 유해 성분을 공개하도록 한 '담배유해성관리법'이 시행된다. 식약처가 지난 3월 행정 예고한 담배 유해 성분 등에 관한 규정을 보면, 액상형 전자담배의 경우 니코틴과 프로필렌글리콜, 포름알데히드 등 총 20종을 공개하도록 규제하고 있다.

하지만 합성니코틴은 담배 분류에서 빠져 있어실효성이 떨어진다는 지적이 제기된다. 담배사업법은 담배를 연초의 잎에서 만들어진 천연니코틴 제품으로만 규정하고 있기 때문이 다. 관세청에 따르면 2023년 액상형 전자 담배 수입품 중 97% 이상이 합성 니코틴 제품이었다.

제도 공백으로 액상형 전자담배는 경제적 이점을 갖는다. 업계에서는 니코틴 액상 1병(30㎖)이 궐련담배 약 10갑에 해당한다고 추정하는데 이를 기준으로 한 달 유지비를 계산하면 액상형 전자담배가 압도적으로 저렴하다.
하루 평균 1갑을 피우는 흡연자를 가정할 때 한 달 유지비는 궐련담배가 약 13만5000원, 액상형 전자담배는 약 3만6000원으로 4분의 1 수준에 불과하다.

'디깅 digging'이라는 말, 들어보셨지요? [땅을 파다 dig]에서 나온 말로, 요즘은 깊이 파고들어 본질에 다가가려는 행위를 일컫는다고 합니다. [주말의 디깅]은 한가지 이슈를 깊게 파서 주말 아침, 독자 여러분을 찾아갑니다. 이 기사를 계속 받아보시려면 기자페이지를 구독해주세요.
sms@fnnews.com 성민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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