병진노선 2.0 설계, 사전 포석 나선 북한
파이낸셜뉴스
2025.09.17 06:00
수정 : 2025.09.17 08:13기사원문
2018년 경제건설 총력집중노선 선포를 통해 핵무기를 완성했으니, 이제는 경제발전에 매진하겠다는 것은 실제로는 ‘경제·핵무력 병진노선’의 폐기를 의미했다. 결국 병진노선 1.0은 그 목표를 달성하지 못하고 실패한 것이다.
그런데 갑자기 북한이 병진노선 2.0 설계에 나서겠다고 밝혔다. 그런데 병진의 대상이 완전히 달라졌다. 김정은은 지난 9월 11-12일 국방과학원을 현지 지도한 후에 “제9차 당대회에서 핵무력과 상용무력 병진정책” 제시 의도를 언급했다. 즉 핵무기와 재래식무기를 동등한 수준으로 발전시키겠다는 의미다. 이는 북한이 핵무기를 이미 갖고 있다는 인식을 통해 전략적 위상을 전 세계에 강압하면서 여기서 멈추지 않고 더 많은 핵무기를 보유하겠다는 의도를 내친 것으로 평가된다. 나아가 핵무장국 위상에 버금가는 재래식 무기 강국도 되겠다는 목표를 설계하고 있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병진노선 1.0에서는 병진의 대상이 핵무기와 경제발전이었지만, 병진노선 2.0에서는 그 대상이 핵무기와 재래식무기로 바뀐 것은 무슨 의미일까? 첫째, 경제력 발전이 군사력 발전보다 어렵다는 것을 직시한 결과라고 볼 수 있다. 즉 경제발전보다 핵무기 개발이 더 빠르고 쉬운 방법이라는 인식적 선례를 통해 핵무기를 더 고도화하고 나아가 재래식무기를 현대화·첨단화하는 것에 방점을 두겠다는 셈법 작동을 보여준다. 둘째, 그렇다고 경제발전을 포기하는 것이 아니라는 점도 시사한다. 병진노선 2.0의 결과 경제발전의 동력을 조성하는 시너지를 노리는 것으로 보인다. 북한은 러시아-우크라이나 충돌로 인한 전쟁특수를 제대로 보고 있다. 북한은 포탄·미사일 등 재래식무기 수출로 돈을 벌어들일 수 있음을 확인했다. 즉 북한도 방산수출국가로 성장할 수 있음을 확인한 셈이다. 나아가 김정은이 중국 전승절 80주년 망루에 최주빈으로 자리를 차지함으로써 핵무기를 등에 업으면 국제적 위상 제고도 가능하다는 점도 확인했다. 따라서 핵무기와 재래식무기 극대화로 국제적 위상과 경제발전을 모두 꿰차겠다는 것이 병진노선 2.0의 기대효과로 상정하는 것으로 보인다. 셋째, 한국과 미국의 핵협의그룹(NCG) 실행화의 일환으로 추진하고 있는 핵·재래식통합(CNI)과 유사한 역량을 구비하겠다는 포석이 있다. 즉 CNI처럼 핵무기와 재래식무기를 통합하여 북한의 군사력 역량을 극대화하겠다는 것인데 다른 점은 CNI와 달리 이러한 통합을 북한 단독으로 추진하겠다는 것이다.
한편 김정은은 중국 전승절 80주년 무대 계기 시진핑, 푸틴과 양자 정상회담을 가진 자리에서 북한의 ‘평화통일 포기’ 정책 지지를 요구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는 북한은 핵무력 위상 나아가 재래식무기 수출을 통한 권위주의 진영 내에서 지위 제고를 통해 한반도 정책의 주도권을 장악하려는 사전 포석의 성격도 있다. 물론 전쟁 위협도 담겨진 메시지다. 나아가 북한이 스스로를 강대국에 준한 국가로 인식하고 이에 부합하는 하이퍼전략을 장기적으로 추진할 의도를 보여주는 또 다른 사례이기도 하다. 따라서 한국은 북한을 상대로 안보와 국익을 지켜내기 위해서 자강 능력 신장, 한미동맹 진화, 그리고 선진강국 위상 제고를 위한 확장형 외교를 한층 가속화해야 하는 결정적 모멘텀에 직면해 있다. 사실 주도권 장악을 위한 전략 싸움은 이미 시작되었다.<반길주, 국립외교원 교수>
wangjylee@fnnews.com 이종윤 기자
※ 저작권자 ⓒ 파이낸셜뉴스, 무단전재-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