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린아이 짧은 소아 전신마취 "지능·행동 발달에 영향 無"
파이낸셜뉴스
2025.10.17 10:20
수정 : 2025.10.17 10:11기사원문
생후 2세 미만 단회 수술 400명 대상 임상
흡입마취제 30% 줄여도 별반 차이 없어
[파이낸셜뉴스] 서울대병원 연구팀이 부모들의 오랜 걱정을 덜어줄 연구 결과를 내놨다. 생후 2세 미만의 아이가 짧은 전신마취를 받더라도 지능이나 행동 발달에 부정적인 영향을 미치지 않는다는 사실이 국내 연구진에 의해 입증된 것이다.
17일 서울대병원에 따르면 소아마취통증의학과 이지현·지상환 교수 연구팀은 생후 2세 미만 단회 수술 환자 400명을 대상으로 한 전향적·이중맹검·무작위 임상시험에서 짧은 전신마취는 인지나 정서 발달에 유의한 영향을 주지 않는다는 결과를 확인했다.
연구진은 “짧은 전신마취의 안전성을 객관적으로 입증한 결과”라며 “부모들이 가장 우려해온 ‘소아 전신마취 후 뇌 손상 가능성’에 대한 과학적 근거를 제시했다”고 설명했다.
소아 전신마취, 부모들의 ‘보이지 않는 불안’
매년 전 세계 수백만 명의 아이들이 수술이나 시술을 위해 전신마취를 받는다. 이때 가장 널리 사용되는 방법은 ‘마취가스’라 불리는 흡입마취제(세보플루란 등)를 이용한 방식이다.
그러나 일부 동물실험에서 흡입마취제가 신경세포 손상이나 인지 기능 저하를 유발할 수 있다는 보고가 나오면서, 어린 나이에 마취를 받는 것이 안전한지에 대한 논란이 이어져 왔다.
실제로 미국 식품의약국(FDA)은 2016년, 3세 미만 영유아가 장시간(3시간 이상) 또는 반복적으로 전신마취를 받을 경우 뇌 발달에 악영향을 미칠 수 있다고 경고한 바 있다.
다만, 지금까지의 임상연구에서는 단회 또는 짧은 전신마취가 장기적인 인지 기능에 뚜렷한 문제를 남긴다는 근거는 부족했다. 서울대병원 연구팀은 이에 더 나아가 “전신마취의 종류와 약물 병용 방식에 따른 신경 발달 차이”를 과학적으로 검증하고자 했다.
흡입마취제 30% 줄였지만, 발달 차이 ‘없었다’
이번 연구는 2020년부터 2023년까지 서울대병원에서 진행됐다. 생후 2세 미만, 2시간 이내의 단회 수술을 받는 400명을 대상으로 전향적·이중맹검·무작위 임상시험을 실시했다.
참여 환자는 무작위로 두 그룹으로 나뉘었다. 첫 번째 그룹은 흡입마취제(세보플루란)만 단독 사용한 ‘단독군’, 두 번째 그룹은 세보플루란에 보조 약제(덱스메데토미딘·레미펜타닐)를 함께 투여한 ‘병용군’이었다.
연구 결과, 병용군의 흡입마취제 농도는 평균 1.8%로 단독군(2.6%)보다 약 30% 낮았다(P<0.001). 그러나 두 그룹의 평균 마취 시간(약 75분)은 유사했으며, 지능지수(IQ), 행동·정서 발달, 언어 능력 등 모든 항목에서 통계적으로 유의한 차이가 없었다(P>0.05).
즉, 짧은 단회 수술에서 흡입마취제의 양을 줄이거나 보조 약제를 함께 사용하는 방식 모두 아이의 인지·정서 발달에는 영향을 미치지 않았다는 의미다.
이번 연구는 소아마취 분야의 대표적 국제 연구인 PANDA, MASK, GAS 연구의 연장선상에 있다. 이들 연구는 전신마취와 척추마취의 비교, 혹은 마취 유무에 따른 발달 차이를 분석해, 짧은 전신마취는 장기적인 인지 저하를 일으키지 않는다는 결론을 제시한 바 있다.
서울대병원 연구팀의 연구는 여기에 ‘균형 마취(balance anesthesia)’ 개념을 적용했다는 점에서 차별성을 가진다.
균형 마취는 하나의 약물 대신 여러 약제를 병용해 마취 효과를 유지하면서 부작용을 줄이는 방법이다. 이 방식을 실제 임상 환경에서 검증한 것은 이번이 세계적으로도 드문 사례다.
장기 추적연구 진행 중… 만 5세 시점까지 안전성 검증
연구 책임자인 지 교수(소아마취통증의학과)는 “이번 연구는 만 28~30개월 시점의 중간 분석 결과로, 현재까지는 짧은 전신마취가 아이들의 인지나 정서 발달에 영향을 주지 않는 것으로 나타났다”며 “향후 만 5세 시점에서의 추적 연구를 통해 장기적 안전성을 최종 확인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공동 연구자인 이 교수는 “이번 결과는 실제 임상 환경에서 단회 전신마취의 단기 신경 발달 영향을 객관적으로 검증한 의미 있는 성과”라며 “소아마취에 대한 부모와 의료진의 불안을 덜어주고, 향후 소아마취 안전 가이드라인 마련에 기여하길 바란다”고 말했다.
서울대병원 측은 이번 연구가 근거 기반 의학(Evidence-based medicine)의 좋은 사례라고 평가했다. 짧은 전신마취의 신경 발달 안전성을 명확히 규명함으로써, 부모의 불안을 줄이고 의료진의 임상적 판단에 과학적 근거를 제공한다는 것이다.
특히 연구진은 이번 결과를 통해 소아마취 중 흡입마취제 사용을 최소화하면서도 안전성을 유지할 수 있는 근거를 제시했다고 강조했다. 이는 향후 국내외 마취 가이드라인 개정 및 소아 수술 프로토콜 개선에도 영향을 미칠 것으로 기대된다.
한편, 이번 연구 결과는 국제 의학학술지 ‘Anesthesiology’(IF 9.1) 최신호에 게재됐다.
vrdw88@fnnews.com 강중모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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