옛 연인의 한 문장이 불러낸 '그때, 나' …'기억의 순간들'
뉴시스
2025.12.03 11:03
수정 : 2025.12.03 11:03기사원문
[서울=뉴시스] 조기용 기자 = "어떤 면에서 인생은 매일 매초 새롭지만, 또 어떤 면에서 우리는 끊임없이 내면의 같은 자리로 돌아간다."
2022년 스웨덴 최고 문학상으로 꼽히는 아우구스트상 수상한 이아 옌베리의 장편소설 '기억의 순간들'(문학동네)이 출간됐다.
'나'가 지나온 삶에서 중요했던 지점을 회고하며 당시의 이야기를 소개하는 방식이다.
바이러스에 감염돼 고열에 시달리던 '나'는 즐겨 읽던 폴 오스터의 '뉴욕 3부작'을 펼친다. 그러다 약 25년 전 연인 요한나의 '빨리 낫기를 바랄게'라는 문장을 발견하고, 말라리아에 걸려 열과 두통에 시달렸던 당시의 기억을 떠올린다. 책은 요한나가 입원했던 '나'에게 건넨 선물이기도 하다.
'나'는 요한나의 단 한 문장을 통해 흩어져 있던 과거의 기억들을 엮어 끌어낸다. 연락이 끊긴 작가지망생 친구 '니키', 한 때 뜨거운 사랑을 나누었던 밴드 멤버 연인 '알레한드로', 계속해서 마찰이 있었던 엄마 '비르기테' 등 지금은 헤어진 타인들에 대한 기억의 파편들도 살아난다.
"소위 말하는 '자아'란 다름 아닌 그런 것이다. 우리에게 닿은 타인들의 흔적. 나는 요한나의 말과 행동을 사랑했고, 의도했든 내 일부가 되도록 허용했다. 이게 아마 우리가 맺는 모든 관계의 핵심일 테고, 그러니 어떻게 보면 관계에 끝이란 없는지도 모른다." ('요한나' 중)
지금은 곁에 없지만 이들은 모두 오늘날의 '나'로 이끈 인물들이다. 각 장의 제목을 요한나와 인물들의 이름을 붙인 것도 내면을 구성한 타인의 흔적을 따라가기 위한 장치다.
"하지만 시간이 흐르면서 내가 찾던 모든 것은 바로 여기, 나, 나를 둘러싼 내 주위, 돈을 벌려고 시작했지만 진짜 작업이 되어버린 일, 일상의 꾸준함, 시선이 가는 대로 따라가 머무를 때 마주치는 사람들의 눈빛, 그 안에 있었음을 비로소 깨달을 수 있었다." ('비르기테' 중)
당시에는 삶을 뒤흔들만큼 강렬했지만 시간이 지나며 희미해진 기억들. 소설은 인물의 내면을 섬세한 문체로 포착해낸다. 마치 고열 속에서 서서히 의식을 되찾듯, 잊고 있던 기억들을 더듬으며 살아온 궤적을 되돌아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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