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렇게 해'란 말 이해 못했는데…점자교본으로 태권도 배워요"
연합뉴스
2025.12.03 14:28
수정 : 2025.12.03 14:28기사원문
서울교육청, 시각장애학생 태권도 배움 지원…국기원·점자도서관 MOU 정근식 교육감 "모든 학생 잠재력 펼치도록 돕는 게 공교육 책무"
"'이렇게 해'란 말 이해 못했는데…점자교본으로 태권도 배워요"
서울교육청, 시각장애학생 태권도 배움 지원…국기원·점자도서관 MOU
정근식 교육감 "모든 학생 잠재력 펼치도록 돕는 게 공교육 책무"
(서울=연합뉴스) 오보람 기자 = "나가면서 지르기 하나!"
"어이!"
3일 오전 서울 강북구 한빛맹학교 강당에서 태권도복을 입은 교사의 쩌렁쩌렁한 구령이 울려 퍼졌다.
단상에 선 다섯 학생은 힘차게 기합을 넣은 뒤 절도 넘치는 동작을 이어갔다. 서로의 박자가 어긋날 때는 있었지만, 개별 움직임만큼은 한 치의 오차도 느껴지지 않을 만큼 흐트러짐 없었다.
시각장애 학생인 이들은 서울시교육청과 국기원, 한국점자도서관의 '시각장애학생 태권도 점자교재 및 오디오북 개발·보급을 위한 업무협약(MOU)' 체결을 기념해 무대에 올랐다. 서울시교육청이 국내 최초로 개발한 태극 1장 점자 교본과 오디오북을 통해 배운 품새를 선보였다.
전국 15개 시각장애학교에 보급된 점자 교본은 이동·동작·호흡을 촉각 중심 언어로 재구성해 동작의 흐름을 따라갈 수 있도록 만들어졌다. 시각장애 개그맨 이동우가 녹음에 참여한 오디오북은 학생들이 언제 어디서든 쉽게 동작 설명을 들을 수 있게 했다.
"관장님이 '이렇게, 이렇게 하면 돼'라고 말씀하실 때마다 전 그게 잘 이해가 안 됐어요. 그래서 제 생각대로 했더니 친구들이 '너는 왜 동작을 그렇게 하느냐'고 하더라고요. 너무 힘들었어요."
초등부 5학년 현재성군은 비장애인 친구들과 태권도를 배우며 어려움을 겪었던 당시를 떠올리며 이렇게 말했다. 사범의 동작을 손으로 만져보는 식으로 움직임을 익혔으나, 스텝이나 팔다리의 각도, 호흡 등 세세한 부분을 따라가기엔 역부족이었다고 한다.
그러다 지난여름 점자 교본과 오디오북을 토대로 한국체육대학교의 지도를 받게 되면서 발전을 거듭할 수 있었다.
예전부터 태권도장에 다녔다는 같은 학년 김세아양 역시 "일반 태권도장에서는 정안인(비시각장애인)에 맞춘 수업이 위주인데, 학교에서는 정확한 동작을 알려줘서 습득이 빨라졌다"며 웃었다.
아이들 사이에선 '맏형'이지만 태권도 경력은 없던 중등부 3학년 김건우군은 "어릴 때 주변 형들이 태권도장에 간다고 하면 되게 아쉬웠다. 왜 나는 배울 수가 없을까 생각했다"며 "하지만 최근 태권도를 배우며 자신감이 많이 생겼고, '이 정도면 나도 할 수 있겠다'라는 생각이 커졌다"고 했다.
이번 업무협약으로 시각장애 학생들은 앞으로도 점자 교본으로 태권도를 배울 수 있게 됐다. 세 기관은 태극 2∼8장 점자 교재와 오디오북을 공동으로 제작하고 해외 보급도 추진한다.
정근식 서울시 교육감은 이날 한빛맹학교 학생들에게 태극 2∼3장이 담긴 점자 교본을 건넸다. 국기원 태권도 품새 실기 교수인 설성란 교수가 집필하고 점자도서관이 검수를 마친 책이다.
동작에 대한 설명은 물론이고 동작을 표현한 그림에도 점자가 새겨져 정확한 자세를 파악하기 쉽도록 제작됐다. 아이들은 교본을 받자마자 펼치고는 손끝으로 점자를 매만졌다.
현재성군은 "처음엔 이것만 읽고 배우기는 힘들겠다고 생각했는데, 막상 펼쳐 보니 (동작 설명이) 엄청 자세히 나와 있어서 그런 생각이 사라졌다"고 했다.
설 교수는 "태권도는 걷기, 뛰기 등 일상 동작에서 시작하는 데다 관절과 근육의 위치를 익히는 운동이라 시각장애인에게 아주 좋은 스포츠"라면서 "점자 교본 제작 제안을 받았을 때 늦었지만 지금이라도 만들게 돼 다행이고 감사하다고 생각했다"고 회상했다.
정 교육감은 이날 업무협약식에서 "장애 여부와 관계없이 모든 학생이 잠재력을 온전히 펼칠 수 있도록 돕는 것이 서울시교육청과 공교육이 짊어져야 할 책무"라면서 "시각장애학생들이 태권도를 통해 자신감을 키우고 더 넓은 세상으로 나아갈 수 있도록 앞으로도 열심히 지원하겠다"고 다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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