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허벌판에서 인도 車허브로...'아난타푸르 기적' 만든 기아의 7년
파이낸셜뉴스
2026.01.01 08:00
수정 : 2026.01.01 08:00기사원문
지난해 11월 27일 인도의 벵갈루루 켐피고다 국제공항에서 2시간여 고속도로를 타고 달린 끝에야 도착한 안드라프라데시주 아난타푸르 소재 기아 공장 곳곳에는 이 같은 슬로건이 붙어 있었다.
기자가 이날 공장에서 만난 현지 직원은 "단순히 차량이라는 제품을 판매하는 것이 아니라 내 이웃들의 삶을 더욱 풍요롭게 할 수 있는 모빌리티 경험을 제공한다는 데 자부심을 갖고 일하고 있다"고 말했다.
2017년 건설을 시작해 2019년 본격 양산에 돌입했다. 당초 30만대의 캐파(생산능력)로 시작해 현재 43만대의 캐파를 확보하고 있다. 인도는 지난해 기아의 글로벌 판매량의 약 9%를 차지하며 역대 최고 비중을 기록하는 등 핵심 생산 기지이자 주요 판매지로 자리매김했다.
기아는 시장 진입 문턱이 매우 높은 인도 자동차 시장에 2019년 상륙, 4년이 채 안되는 기간만에 누적 100만대 생산이라는 전무후무한 역사를 쓰며 현지 자동차 업계의 '게임 체인저'가 됐다. 지난해 8월에는 150만대를 돌파했다. 현지화 장벽과 가격 경쟁 탓에 '글로벌 완성차 업체의 무덤'으로 불리는 인도 자동차 업계에서는 이례적이라는 반응이 나온다.
기아의 이 같은 선전 배경에는 '다차종 유연생산'이 있다. 공장 관계자는 "9개의 모델을 동시 생산하며 단일공장으로는 세계 최대 수준의 다차종 대응 유연생산 시스템을 갖추고 있다"고 밝혔다. 경쟁사들이 전기차(EV) 라인에 공격적으로 투입했으나 인도 내 전기차 수요가 생산 물량에 못 미치며 재고만 쌓여가는 가운데, 후발 주자이자 젊은 기업인 기아는 내연기관과 전기차 유연생산하면서 수요에 발 빠르게 적기에 대응, 단숨에 5·6위권까지 뛰어오를 수 있었다.
2017년 건설이 시작된 공장답게 첨단 시설을 갖춘 점도 기아의 무기로 작용했다. 특히, 자동차 생산에서 가장 오랜 시간이 걸리는 도장공정에서 기아의 첨단 기술력은 빛을 발했다. 도장공장에 들어서자 105대의 로봇이 분주하게 공정을 이어가는 모습이 장관을 이뤘다. 공장 관계자는 "로봇이 고장 나도 다른 로봇들이 해당 로봇의 일을 분담할 수 있는 '로봇 디그레이드 모드'를 운영하고 있다"면서 "도장공장의 직행률(결함 없이 통과하는 비율)은 세계 최고 수준인 97.8%에 달한다"고 밝혔다.
첨단 시설과 더불어 기아 인도의 핵심 자산은 '사람'이다. 특히 타 경쟁사 대비 촘촘한 교육과정과 직원들의 재교육을 현지 자동차 업계에서는 찾아볼 수 없는 기아만의 장점으로 꼽힌다. 공장 관계자는 "초대졸 직원들을 채용한 후 한 달의 현장과 동일한 환경에서 교육을 진행한다"면서 "수시로 직급·직무별 재교육이 이뤄지고 있고 인도 직원들의 참여율이 매우 높다"고 전했다. '기아 요다(힌디어로 전사라는 뜻)'라는 우수 엔지니어 경연 대회를 운용하는 등 직원들의 자기계발에도 회사가 적극 돕고 있다. 이 같은 노력 덕분에 여타 해외 제조 시설에 밀리지 않는 우수한 품질을 유지하고 있다.
이 같은 인재 육성 노력으로 인도 구직 시장에서 기아 출신은 곧 우수인재라는 공식이 성립되고 있다. 공장 관계자는 "직원 뿐만 아니라 도제생 하나하나가 사회에 나아가 기아의 앰버서더가 될 수 있도록 양성에 힘을 다하고 있다”고 밝혔다. 인도는 법적으로 기업이 일정 비율의 도제생을 육성하게돼 있다. 최대 3년을 제조업 현장에서 직업훈련을 통해 개인의 구직 경쟁력을 높인다는 취지의 제도다.
기아는 안드라프라데시주의 첫 글로벌 기업 유치 사례로 진출 초기 산업 기반과 공급망 기반이 약한 상황이었다. 이에 현대자동차그룹 내 4개사와 더불어 서연이화를 비롯한 부품협력사 15개사가 함께 동반 진출하며 기틀을 다졌다.
주요 협력사인 서연이화도 기아의 인도 진출과 함께 인도 아난타푸르 공장으로 진출, 자동차 인테리어 부문(도어트림·콘솔·헤드라이팅)과 익스테리어(범퍼·스포일러) 등 부품을 생산해 납품하고 있다. 서연이화 관계자는 "정말 허허벌판에 기아만 보고 왔기 때문에 협력사 주재원들간 관계가 매우 끈끈하다"고 말했다.
안드라프라데시주와의 상생도 이어가고 있다. 허허벌판이었던 작은 시골 도시였던 아난타푸르는 기아로 인해 3만명 이상이 일자리를 갖고 생계를 이어갈 수 있었으며, 근처 부동산이 20~40배 상승하는 등 기아의 성장과 더불어 성장하고 있다.
아울러, 사회공헌 활동에도 적극적이다. 기아는 지역 커뮤니티 발전을 위해 교육(기술학교 기자재 지원)·보건(이동진료, 의료 장비 지원)·환경(나무 식재) 등 다양한 CSR 활동을 전개하며 지역사회에 공헌하고 있다.
공장 관계자는 "공장 정문 인근 'KIA' 로고가 보이는 장소는 지역의 포토스팟으로 자리매김해 지역사회의 자랑으로 꼽힌다"면서 "지역 주민을 위한 개방행사와 문화행사 등 다양한 행사도 진행하고 있다"고 말했다.
전날 기자가 인도 수도 뉴델리 인근 구루가온에 위치한 기아 딜러샵은 인근 타완성차 업체의 딜러샵과 달리 규모나 디자인면에서 고급스러웠다.
기아 딜러샵 관계자는 "다른 딜러샵에 갔다가 기아 딜러샵에 들어온 고객들은 다들 멈칫한다"면서 "기아 차량의 프리미엄 이미지가 잘 드러날 수 있도록 딜러샵도 디자인과 구성에 많은 공을 들이고 있다"고 말했다.
이 관계자는 "브랜드 로열티가 낮고 품질을 우선시하는 인도 시장의 특성상 테스트 드라이빙을 꼭 해보는데 대부분의 테스트 드라이빙을 한 고객들이 구매로 이어졌다"면서 "기아의 우수한 품질과 고급스러운 브랜드 이미지가 인도의 부유층에게 매력적인 것 같다"고 말했다. rejune1112@fnnews.com 김준석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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