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용 성장·확장 재정' 李정부, 첨단산업 금산분리 빗장 연다
파이낸셜뉴스
2025.12.11 19:02
수정 : 2025.12.11 23:09기사원문
기획재정부
구윤철 "지주사 규제 특례 마련"
적극재정 통해 내년 2%대 성장
"싱가포르 테마섹 등을 벤치마킹
한국형 국부펀드로 부 증식·이전"
실용 성장과 확장재정을 앞세운 이재명정부가 첨단산업 투자지분 규제를 과감히 풀고 한국형 국부펀드를 만들겠다는 경제정책을 내놓았다. 인공지능(AI) 반도체 등 첨단산업의 투자를 촉진하기 위해 사실상 금산 분리 규제의 빗장을 여는 것이 핵심이다. 이런 국가전략산업에 긴 안목으로 투자하는 재원을 국부펀드로 만들어 지원하겠다는 것도 의미가 크다.
■첨단산업에 금산분리 규제 풀어
구윤철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은 "첨단산업 투자 활성화를 위해 지방투자와 연계해 지주회사 규제 특례를 마련한 것"이라며 금산 분리 원칙을 훼손하는 것은 아니라고 말했다. 구 부총리는 "(반도체 등 첨단산업에) 국민성장펀드를 지원하고 (적어도) 5년 안에 집중 투자해야 해외 빅테크와 경쟁이 가능하다"고도 했다.
이번 첨단기업 투자 규제 완화는 상징성이 크다. 올해보다 8.1%로 역대급 증액해 728조원의 확장재정 예산을 확보한 2026년은 이재명정부가 온전한 원년을 맞는 첫 해이다. 그런 만큼 반도체 등 AI 첨단산업을 공격적으로 키워 경제성장률을 2%대로 끌어올리겠다는 강한 의지로 해석된다.
이번 규제 완화는 공정거래법은 손대지 않고 첨단전략산업법을 개정해 대규모 투자 규제를 푸는 방식이다.
핵심은 두 가지다. △지주회사의 손자회사가 증손회사 지분 의무보유 요건을 현행 100%에서 50%로 낮추는 것 △지주회사 구조에서 금융리스(금융회사)를 보유할 수 있는 것이다. 전제 조건은 첨단산업에 한정하고 지방 투자이다.
금산 분리 규제 완화의 최대 수혜기업은 SK 지주의 손자회사인 SK하이닉스다. SK그룹은 경기 용인에 건설 중인 반도체클러스터에 600조원 이상을 투자하는데 규제 완화를 요청해왔다.
SK하이닉스는 투자자금 조달이 쉬워진다. 특례를 받아 현행 법(지분 100%)의 절반인 50% 지분을 갖고 외부 자금을 유치해 증손회사로 특수목적법인(SPC·금융회사)을 설립할 수 있다. 첨단산업 증손회사가 금융리스업을 하는 회사도 세울 수 있다. 재원은 정부 주도의 국민성장펀드와 같은 정책자금이 큰 비중을 차지한다.
기재부는 첨단기금과 같은 민간·정책자금을 출자해 기업들이 설비 구축 재원을 조달하고 초기 투자 부담을 덜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규제에 막히고 속도가 더뎠던 수백조원의 국내 투자에도 큰 물꼬가 터질 것으로 전망된다.
그러나 지배주주의 문어발식 확장, 중복 상장 남발, 계열사 간 내부거래와 이해충돌, 대기업 형평성 등의 문제가 제기될 가능성이 있다. 이 때문에 모회사 기업가치를 훼손하는 증손회사의 중복 상장을 제한하는 장치가 필요하다는 지적도 나온다. 이와 관련 구 부총리는 "그래서 공정거래위원회가 (자기자본 수준과 사업계획 타당성 등을) 사전적으로 심사해 승인하는 것"이라고 했다.
■한국형 국부펀드로 부 축적·이전
한국형 국부펀드 설립도 첨단산업 규제 완화와 연관된다. 투자 단위가 수십 수백조원에 이르는 AI 첨단산업 투자 재원을 민관이 만들어 부를 축적해 가자는 취지다. 국가대항전이 돼가는 글로벌 AI 주도권 전쟁에서 기업이 독자적으로 투자 재원을 감당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구 부총리는 "싱가포르 테마섹 등을 벤치마킹해 한국형 국부펀드 모델을 만들어가겠다"면서 "정부가 국부를 체계적으로 축적, 증식해 미래세대로 넘겨줘야 한다"고 했다. 대만 정부가 주도해 투자한 TSMC를 세계 최대 반도체 파운드리기업으로 성장시킨 사례와 같이 한국형 성공모델을 만들자는 뜻이다.
국가가 재정과 기금 등을 넣고 민간이 참여하는 국부펀드로 국내외 AI와 반도체, 바이오 등 첨단산업에 제한없이 투자해 고수익을 추구하는 방향이다. 구 부총리는 "민간전문가들이 펀드 운용 등 의사 결정을 독립적으로 해 수익을 낼 수 있는 상업적 베이스로 설계하겠다"고 했다.
기재부는 내년 상반기까지 한국형 국부펀드의 재원, 운용주체, 투자대상과 전략 등의 기본 구조를 만든다. 가장 중요한 재원 마련은 1300조원 국유재산, 상속세 물납에 따른 상장·비상장 주식 등 여러 가능성을 열어두고 있다.
현재 우리나라의 국부펀드는 기획재정부와 한국은행의 외화자산을 위탁 운용하는 한국투자공사(KIC) 뿐이다. 안정성을 우선해 고위험·고수익 투자는 사실상 하지 못한다. 이 자금의 운용 수익에서 끌어다가 2000억달러의 대미 투자금에 사용한다.
글로벌 고위험 투자로 국유 자산을 불린 싱가포르 국부펀드 테마섹과는 성질이 다르다. 1974년 정부 지분 100%의 투자회사로 출범한 테마섹은 국내외 기업에 공격적으로 투자해 현재 5000억달러에 이르는 자산을 굴리고 있다.
skjung@fnnews.com 정상균 서영준 김찬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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