쓰러진 경찰에 '상당한' 입증 요구하는 국가
뉴스1
2025.12.14 06:00
수정 : 2025.12.14 06:00기사원문
(서울=뉴스1) 김종훈 기자
"상병과 공무와의 상당한 인과관계를 인정할 수 없다"
인사혁신처가 공상과 순직급여를 반려할 때 '상당한 인과관계'가 없다는 말이 늘 따라붙었다. 범인을 검거하다가 팔이 부러지거나 허리를 삐끗하는 경우처럼 단선적인 상황과 달리 장기간 야간 교대 근무나 스트레스가 심한 상태에 노출돼 얻은 질병이 공상으로 인정받기 어려운 이유다.
극심한 소음에 오래 노출돼 청력이 나빠지고, 월 100시간 넘는 초과근무를 하다 암을 얻어 투병하다 세상을 등져도 인과관계는 '상당하다'고 인정받지 못하는 경우를 접했다. 이들이 아프다는 사실을 알기 전, 격무에 시달리던 때 국가로부터 "당신의 병은 업무 때문이 아니다"라는 말을 들을 줄 알았다면 그만큼 병을 얻을 정도로 헌신적으로 일했을까.
'반려'라는 두 글자를 받아 든 경찰관과 유족은 처분을 취소해달라며 법원으로 향한다. 공상 관련 사건이 사법부로 향하는 순간, 판결이 나올 때까지 최소 1년이 넘게 걸린다. 국가를 위해 일하다 다치고 죽은 사람들이 국가를 향한 싸움에 나서는 비극이 이어지는 것이다.
문제는 법원에서 인사혁신처의 결정이 뒤집히는 경우가 적지 않다는 점이다. 취재 과정에서 만난 한 노무사는 "인사혁신처가 거절한 사건이 법원으로 가면 50%는 승산이 있다고 본다"고 귀띔했다.
판사는 인사혁신처의 판단 기준이 되는 '상당한 인과관계'에 의문을 제기한다. 난청을 얻은 경찰관에게 장해급여를 지급해야 한다고 판단한 재판부는 판결문에서 "상당인과관계는 의학적·자연과학적으로 명백히 증명되어야 하는 것이 아니다"라며 "법적·규범적으로 판단하여야 한다"고 짚었다.
경찰은 국가의 핵심 기능인 치안 유지와 시민 보호를 위한 조직이다. 그 숫자만 보더라도 그 중요성을 짐작할 수 있다. 지난해 기준 행정부 국가공무원 76만 3464명 중 경찰청에 속한 이들은 13만 7883명(18.1%)에 달한다.
또 경찰은 범죄 대응이나 예방처럼 본질적인 업무 외에 화재 현장, 탈북민 관리, 정신질환자 입원 등 우리 눈에 잘 띄지 않는 업무까지 다양한 분야를 오가며 일한다. 경찰처럼 우리 국민과 가까운 거리에서, 일상을 유지하기 위해 24시간 근무하는 조직은 그리 많지 않다.
최소한 경찰관들이 곁에서 쓰러진 동료를 보며 "나도 다치면 제대로 보상받을 수 있을까"라는 걱정이 들지는 않아야 한다. 그렇기 때문에 경찰 공상·순직급여는 지금보다 폭넓게 인정돼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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