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산 후 몇 주가 지나도록 아기에게 아무런 감정을 느끼지 못하는 엄마들, 과연 뭐가 문제인 걸까? 선천적으로 옥시토신이 부족한 것일까? 옥시토신이 정말로 부족한지 아닌지는 관련 연구가 없기 때문에 알 수 없다.
하지만 옥시토신 부족하기 때문이라고 가정할 때 왜 부족한지 그 원인에 대해서는 여러 분석이 있다. 첫째는 임신 중에 아이와 충분히 교감하지 않고 아이가 태어난 후의 삶을 상상하지 않은 엄마일수록 모성애가 부족하다는 분석이다.
옥시토신 분비는 임신이나 출산이라는 사건만으로 훌쩍 상승하지 않는다. 지속적인 교감, 서로 연결되어 있다는 감정, 태아를 자신이 돌봐야 할 별개의 생명체로 진지하게 느낄 때 옥시토신 분비가 상승한다.
임신기에 어떤 이유로든 태아와 적극적으로 교감하지 않은 엄마들은 아이가 태어났을 때 옥시토신 분비가 여전히 낮은 상태일 확률이 높다. 이런 엄마들에게 아기는 자신과 상관없는 생명체, 갑자기 나타나 울고 있는 정체 모를 아기로 여겨진다.
둘째는 출산이 계획했던 대로 진행되지 않았을 때 모성애가 유예된다고 한다. 수 시간에 이르는 끔찍한 산통을 겪은 여성, 자연분만을 꿈꿨는데 제왕절개를 할 수밖에 없었던 여성, 진통제에 취해 아이를 낳는 순간을 기억하지 못하는 여성 등에게서 모성애가 늦게 나타나는 것을 볼 수 있다.
셋째는 출산 후 몸이 아파서 꽤 오랜 기간 아이와 떨어져 지낸 여성들의 경우다. 임신 중 태교를 열심히 했어도 출산 후 오랜 기간 아이를 보지 못했던 여성들은 아이와 연결돼 있다는 감정을 느끼지 못한다. 아무리 직접 낳았다 해도 지속적인 접촉과 교류가 없으면 옥시토신 분비가 낮아질 수 있다는 걸 알 수 있다.
다행히 이러한 현상은 본격적인 육아에 들어가 아이와 함께 보내는 시간이 많아지면 점차 사라진다. 진정한 모성애는 날마다 아이를 먹이고 씻기고 돌보면서 시작되고 점점 커지게 된다. 또한 아이가 자라면서 엄마와 눈을 맞추고 방긋방긋 웃으며 안기고 뽀뽀하고 옹알이를 할 때 엄마의 모성애는 극에 달한다.
이러한 분석은 모성애는 저절로 주어지는 것이 아니라 시간을 통해 쌓아 나가는 것임을 알려준다. 옥시토신이 선천적으로 얼마나 분비되느냐가 모성애를 결정하는 것이 아니라, 엄마가 아이와 어떤 관계를 맺느냐, 서로 얼마나 많은 시간을 보내고 교감하느냐가 옥시토신 분비량을 결정한다고 볼 수 있다.
그러나 모성애를 갖기 위해서 꼭 엄마가 되어야 하는 것은 아니다. 2021년의 연구를 보면 단지 처녀 쥐를 새끼를 돌보는 엄마 쥐와 함께 우리 안에 넣어두는 것만으로도 행동이 바뀌었기 때문이다. 엄마 쥐가 새끼를 핥고 보호하는 모습을 지켜본 처녀 쥐는 조금씩 엄마 쥐 옆에서 양육을 돕기 시작했고 뇌에서 활발하게 옥시토신을 분비하기 시작했다. 이는 모성애가 꼭 엄마가 아니어도 분비되며 후천적으로 습득될 수 있다는 뜻이다.
이와 같은 변화는 아이를 돌보는 아빠와 할아버지, 할머니, 심지어 보모에게서도 나타난다. 아이와 함께 보내는 시간이 많을수록 옥시토신 분비량이 늘어나고 아이에 대한 애정도 높아진다.
또한 동성애자 아빠들이 아이와 시간을 함께 보낼 때 분비되는 옥시토신 수치가 이성애자 아빠들의 수치와 다를 것이 없고, 위탁모에서 분비되는 옥시토신 수치도 친엄마의 옥시토신 수치와 다를 것이 없다.
이러한 결과는 모성애가 후천적 교육과 양육의 경험으로 충분히 획득될 수 있으며 엄마나 아빠의 전유물이 아니라는 것을 알려준다. 또 다른 관점에서 보자면, 반드시 생물학적으로 연결되어야만 옥시토신이 분비되는 것이 아니라는 뜻이기도 하다. 지속적으로 교감하며 애정을 쏟으면 누구나 모성애를 습득하고 키울 수 있다.
/안철우 강남세브란스병원 내분비내과 교수
pompom@fnnews.com 정명진 의학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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