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화문광장에 ‘감사의 정원’ 만들자
파이낸셜뉴스
2026.01.01 19:07
수정 : 2026.01.01 19:07기사원문
加, 국가상징도로에 국가추모공원
美, 州마다 청사 앞 전사자 추모탑
6·25전쟁 때 전투병 파병한 16國
국가상징도로에 군인 기리는 공간
우리땅서 산화한 유엔군 4만896명
그들을 위한 공간 마련하는 게 도리
캐나다 국회의사당은 오타와강을 끼고 있다. 국회의사당 앞길이 캐나다의 국가상징도로. 그 기점에 국가추모공원이 자리 잡았다. 캐나다는 리도운하 옆, 사람들의 왕래가 잦은 곳에 국가추모공원을 조성했다.
나는 지금까지 오타와를 모두 세 번 여행했다. 첫 번째인 1994년 여름을 잊지 못한다. 리도운하를 지나는 요트를 지켜보다 우연히 추모공원을 둘러보게 되었다. 잘 보이는 전면부에 1914~1918, 바로 옆에 1939~1945가 음각되어 있었다. 캐나다가 참전한 제1차·2차대전을 상징하는 숫자다. 2차대전 상징 숫자 오른쪽으로 돌다가 그만 발걸음이 얼어붙었다.
한국전쟁에서 숨진 캐나다군은 516명. 매년 현충일에 이 기념비 앞에서 참전용사들이 참석한 가운데 기념식이 열리고, 이 장면이 TV로 중계된다. 2차대전 후 캐나다군이 가장 자랑스러워하는 전투가 가평전투다. 캐나다군은 경기도 가평에서 중공군의 남진(南進)을 막아내 한국전쟁의 전세를 바꿔놓았다.
캐나다에서 면적과 인구가 가장 작은 주가 프린스에드워드아일랜드(PEI)주. 소설 '빨간 머리 앤'의 배경이다. 주의사당 앞 공원에 추모비가 있고 그곳에도 1·2차대전, 그리고 한국전쟁을 상기시키는 숫자를 새겨놓았다. 태평양에 면한 캐나다 주가 브리티시컬럼비아(BC)다. 주도(州都)인 빅토리아에도 추모비를 세웠다. 캐나다는 이렇게 대서양에서 태평양까지 1·2차대전 및 한국전쟁 전사자들을 기억한다.
한국전쟁 중 전사한 유엔군 숫자는 4만896명. 이 중 미군 전사자가 3만6574명. 미국 수도 워싱턴DC를 포함한 미국의 50개주 주정부 청사 앞에는 캐나다와 마찬가지로 주 출신 전사자의 이름을 새긴 충혼탑이 있다.
6·25전쟁 당시 전투병을 파병한 유엔 16개국은 모두 자기 나라의 국가상징도로에 북한 공산군·중공군의 침략에 맞서 한국의 자유를 지키다 희생한 군인을 기리는 공간을 조성했다.
한국의 국가상징도로는 광화문에서 남대문까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 중 우리의 국가상징도로처럼 한국을 상징하는 조형물이 드문 곳이 또 있을까.
나는 여러 차례 오세훈 서울시장의 두 가지 실책을 비판해왔다. 하나는 역사성·장소성·합목적성과 동떨어진 '서울시청사'를 세운 것이고, 다른 하나는 광화문광장을 조성하며 이순신 동상 뒤에 세종 상을 둔 것이다.
두 가지 중 어느 게 더 문제인가. 단연 세종 상이다. 국가상징도로의 기점에 15세기 인물 세종 상을 두면서 졸지에 광화문광장이 조선 육조(六曹)거리로 퇴행해 버렸다.
광화문광장에 나가 보면 언제나 다양한 언어를 쓰는 외국인들로 북적거린다. 그들이 광화문광장에서 느낄 당혹과 황당을 한번 상상해보라. 전쟁의 폐허에서 70년 만의 기적을 일궈낸 한국을 느끼려 찾아왔는데 '이건 무슨 시추에이션?' 광화문광장에 떡 버티고 있는 인물이 500~600년 전 사람이라니. 한국이 후(後)조선이었던가. 조선은 백성을 도탄에 빠트리고 나라를 거덜 낸 양반계급 국가였다.
서울시는 작년 초 광화문광장 북쪽에 '감사의 정원'을 조성한다는 계획을 발표했다. '감사의 정원'에 참전국 22개국에 대한 감사의 뜻을 표현하는 기념물을 설치한다는 계획이었다.
이 뉴스를 처음 접했을 때 오 시장이 모처럼 의미 있는 일을 추진한다고 생각했다. '감사의 정원'은 국가상징도로의 품격이다. '감사의 정원'이 들어서면 참전국 22개국 후손들이 한국과 자기 나라의 깊은 인연을 확인하며 한국에 대한 관심이 깊어질 수밖에 없다.
'감사의 정원'이 여당의 반발로 주춤하는 모양새다. 하긴, 이 정부 사람들은 유엔참전용사 추모일인 11월 11일 정부를 대표하는 그 누구도 부산유엔기념공원 행사에 가지 않았다. 그들은 유엔군이 북한 공산군과 중공군으로부터 한국을 지켜낸 것이 못마땅한 모양이다.
'감사의 정원'을 반대하는 사람들에게 묻고 싶다. 김일성의 남침으로 백척간두에 놓인 자유 한국을 지킨 이들이 누구였나.
한반도 산하에 스러진 유엔군은 4만896명. 미군과 유엔군이 아니었으면 한국은 공산화되었다. '감사의 정원'은 이들의 희생에 대한 최소한의 도리다.
조성관 작가 ‘지니어스 테이블’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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