美 경제 흔든 '선거용 처방' 후폭풍

파이낸셜뉴스       2026.01.21 18:13   수정 : 2026.01.21 18:13기사원문

올해 1월 초 미국 필라델피아에 다녀왔다. 해마다 새해가 되면 미국의 경제학자들은 한자리에 모여 최신 연구성과와 정책과제를 놓고 치열한 토론을 벌인다. 사흘간 다양한 강연과 토론이 쉴 새 없이 이어졌다.

올해 행사의 하이라이트 중 하나는 '연방준비제도의 미래'라는 강연이었다. 세계적인 석학은 물론 전 연준 의장과 지역 연준 총재들까지 참여했다. 특히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지난 1년간 연준을 향해 '금리 인하'를 지속적으로 요구해온 만큼 관심이 더욱 집중됐다.

'재정우위(Fiscal Dominance).' 재닛 옐런 전 연준 의장이자 전 재무부 장관이 꺼낸 화두다. 그는 미국의 막대한 재정적자와 부채를 막기 위해 통화정책이 동원되는 위험한 상황을 경고했다. 올해 1월 기준 미국의 국가부채는 38조5000억달러(약 5경5717조원)를 넘어섰다. 연간 이자만 1조달러(약 1473조6000억원)에 달한다. 올해 한국의 정부 예산이 728조원인 점을 감안하면 그 규모를 짐작할 수 있다.

부채 이자를 조금이라도 줄이려면 기준금리 인하가 필요하다는 주장이 힘을 얻는 배경도 여기에 있다. 재정정책이 통화정책을 압박하는 형국이다. 그러나 재정과 통화정책을 분리해온 데에는 이유가 있다. 재정적자를 줄이기 위해 금리를 인위적으로 낮추면 물가가 다시 들썩일 수 있고, 그 부작용은 결국 국민 삶으로 번진다.

이 우려가 현실이 되고 있다. 금리를 내리라는 압박은 '설전'을 넘어 '형사 수사'와 '소송 위협'이라는 전례 없는 법적 공방으로 이어졌다. 트럼프 행정부는 연준 건물 보수·수리비 문제를 지렛대 삼아 법무부를 동원해 제롬 파월 연준 의장을 압박하고 있다. 파월 의장은 이에 굴하지 않고 연준의 독립성을 지키겠다며 정면 돌파를 택했다. 세계 주요국 중앙은행 총재들과 전 연준 의장, 시장 전문가들도 연준의 독립성을 훼손하려는 시도를 한목소리로 규탄했다.

신용카드 이자율을 최대 10%로 제한하겠다는 제안 역시 정치가 경제 논리를 압도하는 장면이다. 트럼프 대통령은 시범적으로 1년간 현재 평균 20~30%에 달하는 신용카드 이자율을 최대 10%로 제한하자고 제안했다. JP모건 등 은행들은 "소비자와 경제에 신용공급 축소 등 오히려 해가 될 수 있다"며 반발하고 있다. 서민들이 더 높은 금리의 대출 상품으로 내몰릴 수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연준을 향한 금리 인하 압박과 신용카드 금리 상한 추진은 결국 정치가 경제를 지배하려는 시도라는 공통점을 갖는다. 특히 올해 11월 미국은 중간선거를 치른다. 하원 전체 435석과 상원의 약 30%인 35석을 놓고 경쟁한다. 의회 권력이 민주당으로 넘어갈 경우 트럼프 대통령이 조기 레임덕에 빠질 수 있다는 전망도 제기된다. 트럼프 대통령이 하원 선거에서 지면 자신이 탄핵당할 수 있다고 공개적으로 언급한 것도 그 위기감을 드러낸다.

선거는 11월에 끝나지만, 정치가 흔든 금리와 신용의 후폭풍은 그 뒤에 더 길게 남는다. 경제의 언어를 정치의 논리로 바꾸는 순간, 가장 먼저 무너지는 것은 신뢰다. 그리고 신뢰 위에 서 있는 경제 역시 흔들린다.

다시 전미경제학회에서 나온 석학들의 발언을 되짚어보면, 지금 필요한 것은 정치인들의 '용기'다. 재정적자를 해결하는 길은 결국 재정개혁과 증세로 이어질 수밖에 없다. 데이비드 로머 UC버클리 교수는 "재정적자 해결을 공약으로 내세운 정치인은 당선되지 않는다"고 말했다. 단기적 성과, 선거에서의 승리를 위한 달콤한 약속은 결국 경제의 체력을 갉아먹는 부메랑이 될 수 있다.
표를 의식한 처방은 달콤하지만, 대가는 늘 국민의 생활비로 돌아온다.

민주주의에서 선거는 반복된다. 유권자들도 이제는 달콤한 공약이 아니라 경제의 원칙과 책임을 지킬 후보가 누구인지 냉정하게 따져봐야 한다.

pride@fn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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