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가경쟁으로 'ESS 강국' 될 수 없다
파이낸셜뉴스
2026.01.22 18:25
수정 : 2026.01.22 18:56기사원문
삼성SDI·LG에너지솔루션·SK온 등이 참여한 컨소시엄들은 마감 직전까지 공급가를 고치며 '가격 눈치싸움'을 벌였다는 말이 나온다. 기술경쟁보다 저가경쟁이 판을 지배하고 있다는 신호다.
이번 1조원대 ESS 사업은 전기차 캐즘(일시적 수요 둔화)으로 흔들리는 배터리 업계에 사실상 생명줄과 같다. ESS는 단순한 수주 물량이 아니라 재생에너지를 담아낼 전력망 인프라이자 장기 전력시스템의 안전과 직결된 사업이다. 값싼 수주 경쟁으로 흐른다면 그 대가는 결국 전력시스템 전체가 치르게 된다.
문제는 안전이다. 2020년 이후 국내 ESS 화재 건수는 50건을 넘는다. ESS 화재는 단순 사고가 아니라 주민 불안과 재생에너지 정책 신뢰를 흔드는 중대위험이다.
정부 입찰이 최저가 경쟁에 매몰되면 우리는 값싼 설비 대신 더 큰 불안을 떠안게 된다.
ESS 정책은 배터리 완제품 업체만 살리는 '응급처방'이 돼서도 안 된다. 분리막·양극재·전해질 등 후방산업까지 아우르는 공급망 경쟁력을 키우는 방향이어야 한다. 하지만 현재 수요 규모에 비해 국내 생산 기반은 턱없이 부족하다. 단기 가격경쟁으로는 기술 축적도, 산업 생태계 강화도 기대하기 어렵다.
산업부는 '세계 3대 ESS 강국'을 선언했지만, 현장의 메시지는 '더 싸게'뿐이다. 안전과 품질, 생산역량보다 저가가 우선이라면 그 목표는 출발부터 흔들린다. 입찰의 룰은 바뀌어야 한다. 가격 하한선이나 적정가 기준을 두고, 화재대응 설계와 운영 안정성을 핵심 평가기준으로 삼는 경쟁이 필요하다.
세계 3대 ESS 강국의 조건은 저가가 아니다. 안전과 기술 그리고 지속가능한 생산능력이다. 그 기준이 바로 서지 않는다면 값싼 수주 뒤에 남는 것은 불안과 후회뿐일 것이다.
leeyb@fnnews.com 이유범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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