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치심 줬던 선배가 중국인으로"… 황대헌, 린샤오쥔과 피할 수 없는 '외나무다리'

파이낸셜뉴스       2026.02.07 14:00   수정 : 2026.02.07 14:32기사원문
'장난'과 '수치심' 사이… 7년 전 진천선수촌이 낳은 비극
법정 다툼 끝 '무죄' 확정에도… 중국行 택한 린샤오쥔의 결단
관중석 지켰던 베이징과 다르다… 오성홍기 달고 '칼 갈았다'
피할 수 없는 외나무다리… 10일 쇼트트랙 빙판서 '감정의 결투'





[파이낸셜뉴스] 운명의 장난이라기엔 지나치게 가혹하다. 한때는 태극마크를 함께 달고 동고동락했던 선후배가 이제는 서로 다른 국기를 가슴에 품고, 가장 높은 곳을 향해 칼끝을 겨눈다.

오는 10일(현지시간) 막을 올리는 2026 밀라노-코르티나담페초 동계올림픽 쇼트트랙 남자부 경기. 전 세계 빙상계의 시선이 대한민국 에이스 황대헌(26·강원도청)과 중국 국가대표 린샤오쥔(29·한국명 임효준)의 맞대결로 좁혀지고 있다.

두 사람의 인연이 '악연'으로 뒤틀린 건 7년 전 여름이었다. 2019년 6월, 진천선수촌 웨이트트레이닝 센터에서 발생한 불미스러운 접촉 사고가 발단이었다. 훈련 도중 린샤오쥔이 황대헌의 하의를 잡아당겨 신체 일부가 노출된 사건은 단순한 해프닝으로 끝나지 않았다.

당시 "장난이었을 뿐 고의성은 없었다"는 린샤오쥔의 항변과 "여성 선수들이 보는 앞에서 씻을 수 없는 모멸감을 느꼈다"는 황대헌의 주장이 팽팽히 맞섰다.



빙상연맹의 자격정지 징계와 이어진 법정 공방은 사태를 더욱 진흙탕으로 몰고 갔다. 법의 판단은 롤러코스터를 탔다. 1심은 강제추행 혐의를 인정했으나, 항소심과 대법원은 "동료 간의 장난으로 볼 여지가 있다"며 최종적으로 무죄를 선고했다.

그러나 법적 면죄부가 두 사람의 관계까지 회복시키지는 못했다. 재판과 징계로 인해 태극마크 유지가 불투명해지자, 린샤오쥔은 2020년 중국 귀화를 감행했다. "오직 운동을 계속하고 싶었다"는 변에도 불구하고, 여론은 그에게서 등을 돌렸다. 그가 '임효준'이라는 이름 대신 '린샤오쥔'이라는 중국 이름을 얻게 된 배경이다.



엇갈린 운명은 지난 2022 베이징 올림픽에서 극명하게 대비됐다. 귀화 선수는 국적 변경 후 3년이 지나야 출전할 수 있다는 규정에 막혀 린샤오쥔이 관중석을 지키는 사이, 황대헌은 남자 1500m 금메달을 목에 걸며 포효했다.

그로부터 4년, 유예 기간은 끝났다. 이제는 피할 수도, 숨을 곳도 없는 정면승부다.

결전을 앞둔 빙판 위의 공기는 무겁다. 황대헌은 "지금까지 해왔던 것들, 바랐던 시합이기에 후회 없는 경기를 펼치겠다"며 담담히 출사표를 던졌다.
반면 훈련장에서 검은 유니폼을 입고 모습을 드러낸 린샤오쥔은 취재진의 질문에 "경기 끝나고 인터뷰하겠다"며 말을 아꼈다.

한때는 평창의 영광을 함께 일궈냈던 선후배였으나, 이제는 서로 다른 유니폼을 입고 결승선을 향해 달려야 하는 두 사람.

과거 법정에서 진실을 다퉜던 두 남자는 이제 기록과 순위로 답을 내야 한다. 6년 전 진천선수촌에서 시작된 비극적 서사가 밀라노의 은반 위에서 어떤 결말을 맺을지, 총성이 울리기만을 기다리고 있다.

jsi@fnnews.com 전상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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