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능적인 일탈의 ‘물랑루즈’에서 배우는 것

파이낸셜뉴스       2026.02.09 09:03   수정 : 2026.02.09 09:00기사원문
뮤지컬 '물랑루즈'





[파이낸셜뉴스] 뮤지컬 '물랑루즈'의 결말은 병에 걸린 여주인공의 비극적인 죽음이란 전형적인 결말로 다가오기도 하지만, 그 이상의 의미로 와 닿는 지점이 있다. 왜 무대에서의 죽음을 선택한 무용수(창녀)와 동료들에게 연민과 동시에, 존경의 마음마저 드는 걸까. 무대에서 장례를 치러주는 사람들은 그녀와 마찬가지로, 에로틱한 춤을 추는 남녀 댄서, 제작자이자 포주, 트랜스젠더, 외국인, 사기꾼이자 예술가 등 제멋대로며 통제되지 않고 절반쯤 미쳐 있거나 위태로운 존재들이다.

영화(2001)를 원작으로 하는 뮤지컬 '물랑루즈'(2018)는 2022년 블루스퀘어에서 국내 관객들에게 첫 선을 보인 후 2025년 11월부터 재연중인 작품으로, 무대는 명성대로 노골적이며 대담하다.

1898년의 실재했던 퇴폐적이며 향락적인 카바레, ‘물랑루즈’를 소환한 공연은 여성들의 허벅지와 남성들의 복근과 엉덩이의, 벗은 몸의 육체적, 성적 에너지가 세련되게 드러나 있다. 얇고 긴 담뱃대를 물고 코르셋 속옷만 입은 채 거니는 무용수들, 캉캉, 스트립댄스, 긴장감 있게 연출된 탱고 2인무 등이 배치돼 있다. 몸을 드러내는 의상과 몸의 존재감을 시각화하는 춤이 가득한 공연의 장면들에서 관능적인 만듦새 혹은 에로티시즘이 촘촘하게 드러난다. '물랑루즈'는 라이선스 작품으로, 성적인 요소를 금기시하는 문화 때문인지 국내 작품에서 에로티시즘을 전면으로 다룬 작품을 만나기가 쉽지 않다.

이야기는 ‘물랑루즈’의 스타 사틴과 그녀를 사랑하는 청년 크리스티앙, 사틴을 소유하려는 공작의 삼각관계에 의해 진행된다. 사랑을 매개로 한 전형적인 구도인데, 작품은 갈망하고 욕망하는 충동 위에 살짝 낭만적인 이름, 사랑을 덧씌운 듯하다. 크리스티앙의 사틴을 향하는 욕망이 환희의 사랑에서 버림받은 광기로 변화하며 장면을 채운다. 김지우와 홍광호의 사틴과 크리스티앙은 기술적으로 안정감 있는 연기와 노래로 무대를 지탱한다.

작품은 이미 있는 팝송을 사용한 주크박스 뮤지컬인데, 하나의 넘버에 여러 가지 노래들이 절묘하게 섞여 있다. 작곡이 기술적으로 뛰어나게 다가오며, 또 다소 시간적 거리가 있는 극 배경에 현재와 가까운 질감을 추가하려는 시도인 듯하다. 달라지는 리듬과 멜로디가 변화하는 감정을 대신해 말하듯, 상대를 그리워하고 원망하다가 다시 갈망하고 절망하는 것처럼 노래는 아슬아슬 줄타기로 이어진다. 다만 알려진 노래들이 조합된 방식으로 인물 심리에 온전히 몰입하기에 어렵다는 견해도 간간이 들려온다.

'물랑루즈'는 자신의 욕망에 솔직하며, 그러한 스스로를 있는 그대로 사랑하는 존재들을 보여준다. 그래서 이들은 ‘난잡하고 더할 나위 없이 더러우며, 최고인 자신들의 쇼’를 지키기 위해 사활을 걸고, 그와 관련된 서사가 사틴과 크리스티앙, 공작의 삼각관계와 더불어 펼쳐진다. 이때 갈등을 압축시켜 단순한 동작으로 풀어내는 안무는 긴장감과 감각적으로 기막히다.
만일에 ‘쇼는 계속되어야 한다’는 말이 이들의 무대에 해당된다면, 그것은 퍽 매혹적으로 다가온다. 언제나 사회가 정한 규범과 규칙에 매여 가면을 써야지만 인정받고 살아갈 수 있는 울타리 안의 사람들에게, 울타리 밖 ‘물랑루즈’의 존재들은 ‘자신답게’, ‘자유와 선택’, ‘의지와 해방’ 등을 가르쳐 주기 때문이다. 그것이 이 공연의 관능과 욕망, 에로티시즘을 건너가 만날 수 있는 것들이다.



jashin@fnnews.com 신진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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