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천헌금? 공천뇌물이다
파이낸셜뉴스
2026.02.09 18:20
수정 : 2026.02.09 18:20기사원문
공천과정에서 오가는 검은돈
여야 막론하고 일반화돼 있어
민주주의 위협하는 중대범죄
헌금이라는 지칭도 문제 소지
상향식 국민공천제 등 도입해
돈 오갈 필요 없도록 개혁해야
일부 언론은 두 사람에게 뇌물죄가 아닌 배임죄를 적용한 사실에 비판의 초점을 맞추었다. 경찰은 '정당 공천'은 뇌물죄 구성 요건인 국회의원의 '공무'로 보기 어렵다는 이유로, 두 사람에 대해 배임수재·증재죄를 적용했다고 한다. 추가 수사를 통해 뇌물죄 적용 여부를 검토하겠다는 게 경찰의 입장이다.
적용 법조나 형량 등은 차이가 있어도 이처럼 정당 공천 대가로 금품을 주고받는 행위는 뇌물죄, 배임죄, 정치자금법·공직선거법 위반죄 등으로 엄중히 처벌되는 범죄행위이다. 이를 공천헌금이라고 부르는 관행은 문제가 있다.
법원은 공천대가로 금품을 주고받는 행위를 엄하게 처벌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민주주의의 근간인 공직선거의 공정성을 심각하게 훼손하고, 정치 부패의 원인이 되는 구조적 악습이기 때문이다. 이 같은 중대범죄 행위를 공천헌금이라 말하면 자칫 범죄의 중대성을 희석할 우려도 있다. 언론의 영향력과 계도 기능을 고려할 때 포괄적 의미로 '공천뇌물'이라 부르는 게 옳다.
'헌금이 아닌 뇌물' 용어는 범죄의 심각성을 환기시킬 뿐 공천 비리의 근본적 해결책은 되지 않는다. 엄한 처벌만으로 범죄를 원천봉쇄하는 건 불가능하다. 예비후보 등록을 시작으로 2026 지방선거가 사실상 시작된 지금도 어느 구석에서는 검은돈이 오가고 있을 것이다. 김경 전 시의원이 했다는 "남들 다 하는데"라는 변명과 함께 말이다.
정당 공천 과정에서 돈이 오갈 수밖에 없는 구조적 요인은 다양하다. 거대 정당의 공천권 독점과 중앙정치 예속화, 지역 국회의원의 막강한 공천 영향력, 밀실 공천 시스템 등이 그것이다. 지방선거를 예로 들었지만 국회의원 선거 역시 대동소이하다. 거대 정당의 공천권 독점, 중앙당 지도부의 공천 영향력, 불투명한 공천 시스템 등. 우리 정치권도 과거 여러 번 공천 시스템 개선책을 내놓았다.
2015년 당시 김무성 새누리당 대표와 문재인 새정치민주연합 대표가 합의한 공천개혁안이 대표적이다. 두 사람은 권력자의 사천(私薦)을 배제하고 국민에게 공천권을 돌려주는 상향식 공천 도입에 사실상 합의한 바 있다.
개혁안은 상향식 공천(국민공천제) 도입, 안심번호 도입, 신인·여성·청년 가산점 도입 등을 담고 있었다. 하지만 전략공천을 배제한 완전국민경선제에 대한 여야 주류의 반발, 안심번호 제도에 대한 세금 낭비론, 역선택 가능성 등 반발로 결국 무산되고 말았다. 표면적인 비판 이유를 따지고 보면 기득권 정치인들이 자신들의 정치적 영향력을 잃지 않기 위한 저항이었다.
오픈 프라이머리 등 예비선거가 정착된 미국도 역사를 돌아보면 개혁은 쉽지 않은 과정을 거쳤다. 20세기 초까지만 해도 공천은 정당 보스들이 밀실에서의 막후거래를 통해 결정하는 게 관행이었다. '스모크 필드 룸(smoke-filled room)'(담배 연기 자욱한 밀실)이라는 말이 일반화될 정도였다. 본선거는 형식에 불과했고, 공천과정에서 돈과 특혜가 거래되는 부패가 만연했다.
"정당의 공천권이 민주주의의 적"이라고 지적한 학자들도 있었다. 하지만 1920년대 전후 진보주의 운동(Progressive Movement)의 결과 오픈 프라이머리, 코커스 등 주별로 형태는 달라도 국민이나 당원들이 직접 후보를 결정하는 예비선거가 뿌리를 내리고 있다.
상향식 공천제가 만능특효약은 아니다. 하지만 현재와 같은 부패구조를 언제까지 모른 체할 수는 없는 노릇이다. 공천 개혁 방안도, 관련 법안도 이미 숱하게 나와 있다. 선택만 하면 된다. 기득권을 놓지 않으려는 정치권의 저항이 문제의 근원이다. 지금처럼 공천비리에 분노하는 국민의 뜻을 모은다면 불가능한 장벽은 아니다. 공천헌금 아닌 공천뇌물로 인식하고, 엄벌을 넘어 구조개혁의 필요성을 모색할 때다. '정당의 공천권이 민주주의의 적'이라는 비판은 우리에게도 적용되는 말이다.
dinoh7869@fn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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