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빠, 76년 만에 왔네…” 84세 여동생의 눈물 속에 돌아온 호국영웅
파이낸셜뉴스
2026.02.10 15:32
수정 : 2026.02.11 19:02기사원문
2007년 4월 경북 영천서 발굴, 국군 제6사단 최백인 일병으로 확인
19세에 1950년 9월 ‘영천 전투’ 전사…76년 만에 여동생의 품으로
10일 국방부유해발굴감식단에 따르면 지난 2007년 4월 경상북도 영천시 자양면 신방리 운주산 일대에서 육군 제50보병사단과 함께 발굴한 유해의 신원을 국군 제6사단 7연대 소속의 고 최백인 일병으로 확인했다.
이날 호국의 영웅 귀환 행사는 유가족 요청에 따라 전라북도 전주시에 거주하는 고인의 친 여동생 최길자 씨(84세) 자택에서 열렸다.
고인의 여동생 최 씨는 “국유단으로부터 (신원확인을 했다는) 연락을 받기 며칠 전에 오빠가 꿈에 보여서 밥 한 그릇이라도 올려야 되겠다고 생각해 그릇 가게에서 숟가락과 젓가락을 샀는데, 그날 국유단에서 오빠를 찾았다는 연락이 와서 더욱 꿈만 같았다”며 “오빠의 유해를 국립묘지 따뜻한 곳에 모시고 싶고, 내 죽기 전에 오빠를 찾아서 묻어 드릴 수 있다고 생각하니 기쁘다”고 소회를 전했다.
이번 고인의 귀환은 오빠를 찾기 위해 시료채취에 참여했던 여동생과 유전자 분석 기술의 발달, 국유단과 장병들의 유해 발굴 노력이 어우려진 결과였다.
19년 전인 지난 2007년 국유단과 50사단 장병들은 6·25전쟁 당시 개인호(個人壕)로 사용되었던 곳으로 추정되는 지점에서 고인의 유해와 유품을 수습했다.
이후 지난 2008년, 국유단은 고인의 유해로부터 유전자 시료 채취를 시도하였으나, 당시 유전자 기술로는 유의미한 유전자 분석이 어려운 상황이었다. 더구나 고인의 유전자와 비교할 가족이나 친인척의 유전자 시료가 당시에는 확보되지 않아 신원확인을 할 수 없었다.
그러다 지난 2021년 10월, 고인의 유일한 생존 혈육인 여동생 최길자 씨(1942년생, 당시 79세)가 전주시보건소에서 유전자 시료 채취에 참여하며 신원확인의 계기가 마련됐다. 아울러 유전자 추출 및 분석 기술의 발달로 유전 정보를 확보할 수 있게 되면서 가족관계를 확인할 수 있었다.
고인은 지난 1930년 10월에 전라북도 전주시에서 6남매(5남 1녀) 중 첫째로 태어났다. 6·25전쟁 발발 직후인 지난 1950년 8월에 입대했으며, 국군 제6사단 7연대 소속으로 같은 해 9월 6일∼13일 전개된 영천 전투에서 북한군과 교전 중 전사했다. 유가족은 고인이 청소년기에 가구를 제작하는 공장에서 일했으며, 결혼은 하지 않은 채로 입대했다고 증언했다.
영천 전투는 국군 제8사단이 제1·6사단의 각 1개 연대와 함께 영천을 장악한 북한군 제15사단을 몰아낸 전투다. 국군은 영천을 탈환함으로써 낙동강 전선 동반부를 방어해낼 수 있었다. 반면 북한은 대구방면 공격이 좌절되면서 공세에 실패했다. 이때부터 전세가 역전돼 국군과 유엔군이 반격 작전으로 전환하게 된 분수령이 된 전투다.
고인은 올해 국유단이 첫 번째로 신원을 확인한 호국영웅이다. 이로써 2000년 4월 유해발굴 사업을 시작한 이래로 가족의 품으로 모신 국군 전사자는 총 269명으로 늘었다.
국유단은 대한민국을 위해 목숨을 바쳤으나 아직 가족의 품으로 돌아가지 못한 호국영웅, 6·25 전사자의 신원확인을 위한 국민 여러분의 동참이 절실하다고 전했다.
전국 어디에서나 가능한 유전자 시료채취는 6·25전사자의 유가족으로서 전사자 기준으로 친·외가 8촌까지 신청 가능하다. 제공한 유전자 정보를 통해 전사자의 신원이 확인될 경우 1000만 원의 포상금을 지급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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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angjylee@fnnews.com 이종윤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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