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BM 넘어 V-D램 준비하라
파이낸셜뉴스
2026.06.07 18:40
수정 : 2026.06.07 19:23기사원문
3년 후에도 초격차 유지하려면
현재 HBM 증설에 머물지말고
3차원 V-D램 양산할 수 있어야
국내 소재·부품·장비 기업은
혁신적 차별화 제품 확보하고
정부 장기적 R&D지원 바람직
그러나 지금의 호황이 곧 미래의 초격차를 보장하지는 않는다. AI 서버 투자는 2029년 이후까지 이어질 가능성이 높지만, 공급 부족이 길어질수록 후발국과 신규 기업의 진입 동기도 커진다. 범용 D램과 낸드 가격이 급등하는 시기일수록 기술 선도기업은 현재 수익을 미래 연구개발(R&D)과 공급망 강화에 재투자해야 한다.
메모리 산업의 경쟁축은 이미 단순 증산에서 차세대 구조 전환으로 이동하고 있다. HBM4는 2048비트 인터페이스와 스택당 2TB/s 수준의 대역폭을 요구하고, HBM4E는 더 높은 속도와 열·전력 조건을 요구할 것이다. D램은 11㎚급을 넘어 10㎚ 이하로 진입해야 하고, 낸드플래시는 300단 이상 수직적층 경쟁이 본격화되고 있다. 더 큰 과제는 기존 2차원 D램 셀의 한계를 넘어서는 3차원 V-D램 또는 3D-D램이다. 2029년 이후에도 기술우위를 유지하려면 셀 구조 설계, 주변회로와 셀의 수직접합, 초박형 웨이퍼 가공, 하이브리드 본딩 등 전혀 다른 난도의 공정을 양산 수준으로 끌어올려야 한다. 이는 단순한 선폭 축소가 아니라 재료, 장비, 패키징, 계측 기술이 동시에 바뀌는 산업 전환이다.
따라서 한국의 과제는 명확하다. 첫째,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는 현재의 HBM 증설에 머물지 말고 10㎚ 이하 D램, V-D램, 3D-D램, 16단 이상 HBM을 동시에 준비해야 한다. 둘째, 국내 소재·부품·장비 기업은 기존 공정의 대체공급자에 머물러서는 안 된다. 하이브리드 본딩, 초박형 다이 핸들링, 웨이퍼 박막화, 고정밀 계측·검사 등 차세대 공정에서 차별화된 제품을 확보해야 한다. 셋째, 정부는 단기 과제가 아니라 5년 이상 장기 로드맵을 기반으로 R&D, 실증, 양산 검증을 연결해야 한다. 반도체 장비와 소재는 연구실 성능만으로는 의미가 없다. 수요기업의 테스트베드와 초기 구매, 정부의 위험 분담이 결합돼야 실제 양산에 들어갈 수 있다. 특히 국산화율이라는 숫자보다 중요한 것은 특정 공정에서 세계 최고 수준의 신뢰성과 수율을 확보하는 것이다.
이를 위해 대학·연구소·소재·부품·장비 기업이 공동으로 활용할 수 있는 12인치 웨이퍼 실증 인프라인 트리니티 팹이 조속히 구축·운영되어야 하며, 전문인력 양성체계도 확충해야 한다. 실패 위험이 큰 선행 공정일수록 민간 소재·부품·장비 기업의 단독투자가 어렵기 때문에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의 역대 최대 영업이익 일부를 활용해 연 1조원 규모의 소재·부품·장비 기초연구 자금을 출연하고, 이를 통해 국내 소재·부품·장비 기업의 글로벌 경쟁력을 향상시킬 수 있도록 지원해야 한다.
시대의 메모리 호황은 한국 AI 반도체 산업에 다시 찾아온 기회다. 그러나 중국과의 격차가 줄어드는 속도를 고려하면 안심할 수 없다. 현재의 실적에 취해 미래 구조 전환이 늦어진다면 초격차는 순식간에 평준화될 수 있다. 중국은 더 이상 저가 범용 제품만으로 경쟁하지 않는다. 장비와 소재까지 함께 키우며 한국의 약한 고리를 파고들고 있다. 이제 필요한 것은 차세대 메모리 구조와 국내 소재·부품·장비 생태계를 함께 키우는 국가적 전략이다. 지금의 투자 결정이 2030년 글로벌 메모리 지형을 좌우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한국 반도체의 다음 10년은 HBM의 성공을 넘어 V-D램과 3D-D램, 그리고 이를 뒷받침할 국내 공급망을 얼마나 빨리 양산 경쟁력으로 연결하느냐에 달려 있다.
박재근 한양대 융합전자공학부 석학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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