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년 후에도 초격차 유지하려면
현재 HBM 증설에 머물지말고
3차원 V-D램 양산할 수 있어야
국내 소재·부품·장비 기업은
혁신적 차별화 제품 확보하고
정부 장기적 R&D지원 바람직
메모리 산업의 경쟁축은 이미 단순 증산에서 차세대 구조 전환으로 이동하고 있다. HBM4는 2048비트 인터페이스와 스택당 2TB/s 수준의 대역폭을 요구하고, HBM4E는 더 높은 속도와 열·전력 조건을 요구할 것이다. D램은 11㎚급을 넘어 10㎚ 이하로 진입해야 하고, 낸드플래시는 300단 이상 수직적층 경쟁이 본격화되고 있다. 더 큰 과제는 기존 2차원 D램 셀의 한계를 넘어서는 3차원 V-D램 또는 3D-D램이다. 2029년 이후에도 기술우위를 유지하려면 셀 구조 설계, 주변회로와 셀의 수직접합, 초박형 웨이퍼 가공, 하이브리드 본딩 등 전혀 다른 난도의 공정을 양산 수준으로 끌어올려야 한다. 이는 단순한 선폭 축소가 아니라 재료, 장비, 패키징, 계측 기술이 동시에 바뀌는 산업 전환이다.
중국의 추격도 더 이상 가볍게 볼 수 없다. CXMT는 범용 D램 시장에서 점유율을 빠르게 높이며 4위권 사업자로 부상했고, HBM 개발에도 속도를 내고 있다. YMTC는 270단 안팎의 3D 낸드를 양산하고 300단 이상 제품을 준비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기술격차는 존재하지만 중국 정부의 지원과 내수 시장, 국산 장비 사용 확대가 결합되며 추격 속도는 빨라지고 있다. 미국의 수출규제가 중국의 첨단 공정을 늦추는 효과는 있지만, 동시에 중국의 소재·부품·장비 국산화를 가속하는 역설도 만들고 있다. 한국이 메모리 소자 기술만 앞서고 장비·소재 생태계에서 뒤처진다면 초격차의 기반은 약해질 수밖에 없다.
따라서 한국의 과제는 명확하다. 첫째,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는 현재의 HBM 증설에 머물지 말고 10㎚ 이하 D램, V-D램, 3D-D램, 16단 이상 HBM을 동시에 준비해야 한다. 둘째, 국내 소재·부품·장비 기업은 기존 공정의 대체공급자에 머물러서는 안 된다. 하이브리드 본딩, 초박형 다이 핸들링, 웨이퍼 박막화, 고정밀 계측·검사 등 차세대 공정에서 차별화된 제품을 확보해야 한다. 셋째, 정부는 단기 과제가 아니라 5년 이상 장기 로드맵을 기반으로 R&D, 실증, 양산 검증을 연결해야 한다. 반도체 장비와 소재는 연구실 성능만으로는 의미가 없다. 수요기업의 테스트베드와 초기 구매, 정부의 위험 분담이 결합돼야 실제 양산에 들어갈 수 있다. 특히 국산화율이라는 숫자보다 중요한 것은 특정 공정에서 세계 최고 수준의 신뢰성과 수율을 확보하는 것이다.
이를 위해 대학·연구소·소재·부품·장비 기업이 공동으로 활용할 수 있는 12인치 웨이퍼 실증 인프라인 트리니티 팹이 조속히 구축·운영되어야 하며, 전문인력 양성체계도 확충해야 한다. 실패 위험이 큰 선행 공정일수록 민간 소재·부품·장비 기업의 단독투자가 어렵기 때문에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의 역대 최대 영업이익 일부를 활용해 연 1조원 규모의 소재·부품·장비 기초연구 자금을 출연하고, 이를 통해 국내 소재·부품·장비 기업의 글로벌 경쟁력을 향상시킬 수 있도록 지원해야 한다.
시대의 메모리 호황은 한국 AI 반도체 산업에 다시 찾아온 기회다. 그러나 중국과의 격차가 줄어드는 속도를 고려하면 안심할 수 없다. 현재의 실적에 취해 미래 구조 전환이 늦어진다면 초격차는 순식간에 평준화될 수 있다. 중국은 더 이상 저가 범용 제품만으로 경쟁하지 않는다. 장비와 소재까지 함께 키우며 한국의 약한 고리를 파고들고 있다. 이제 필요한 것은 차세대 메모리 구조와 국내 소재·부품·장비 생태계를 함께 키우는 국가적 전략이다. 지금의 투자 결정이 2030년 글로벌 메모리 지형을 좌우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한국 반도체의 다음 10년은 HBM의 성공을 넘어 V-D램과 3D-D램, 그리고 이를 뒷받침할 국내 공급망을 얼마나 빨리 양산 경쟁력으로 연결하느냐에 달려 있다.
박재근 한양대 융합전자공학부 석학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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