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살대교’ 오명 벗고 ‘힐링 명소’로 거듭난 마포대교

파이낸셜뉴스       2013.11.27 16:44   수정 : 2013.11.27 16:44기사원문



"밥은 먹었어? 잘 지내지?" "소크라테스가 말했죠.'너 자신을 알라'. 그래서 하는 말인데 당신, 생각보다 괜찮은 사람이야."….

"마포대교 핸드레일(난간)에 적힌 문구를 보는 순간 왈칵할거라는 친구의 말은 오버(과장)라고 여겼어요. 한 구절 한 구절은 밑바닥까지 떨어진 자존감을 세워줬고 정말 눈물이 날 줄은 몰랐어요. 생명의 다리가 예상 밖의 큰 위안이 됐습니다."

지난 21일 밤 10시께 기자가 찾은 '생명의 다리' 서울 마포대교에서 만난 한 직장인의 말이다. 밤 시간 다리 위라는 시공간이 빚어낸 분위기에 더해 생명의 다리는 처음 만난 사람끼리도 허물없이 대화를 이어가게 만드는 묘한 힘이 있었다.



생명의 다리는 기자에게도 위안을 줬다. 어느 하나 쉬운 일이 없고 누구 하나 힘들지 않은 사람이 없는 세상이다. 이런 팍팍한 일상에 지쳐있는 가운데 옮기는 걸음마다 불을 밝혀주며 무심히 말을 거는 마포대교의 "힘들지?" 한마디는 꽉 막혔던 답답한 가슴을 금세 풀어줬다.

이 때문일까. 늦은 시간에도 두 발로 기꺼이 길이 1.8㎞의 마포대교를 건너는 사람들을 심심치 않게 볼 수 있었다.

서울 원효로에 거주하는 주부 신모씨(51)는 "운동 삼아 왔다가 문득 난간에 불이 켜지면서 문구가 눈에 들어왔다"며 "따뜻한 느낌의 불빛에다 문구까지 더해 울적한 마음에 위로가 된다"고 말했다. 신씨는 "이곳 주민으로서 마포대교 투신 사고 소식을 들을 때마다 안타까웠다"면서 "나쁜 마음을 먹고 찾아온 사람들이 이런 문구를 보고 다시 한 번 생각할 수 있는 기회가 됐으면 좋겠다"고 했다.

■'자살대교'에서 '힐링 명소'로

이 같은 신씨의 바람이 바로 생명의 다리 설치의 취지다. 생명의 다리는 삼성생명의 자금 지원과 제일기획의 아이디어로 서울시가 지난해 9월 개통한 대표적인 민간기업 참여 모델로 자리매김하고 있다.

삼성생명 관계자는 "생명의 다리는 세계 최초의 '쌍방향 스토리텔링 다리'로 투신 방지벽과 같은 물리적 수단 대신 사람의 마음을 움직이는 언어를 통해 보다 근본적인 방법으로 삶의 소중함을 일깨워 주자는 생각에서 기획됐다"고 말했다.

실제 마포대교는 생명의 다리로 조성되기 전 5년 동안 총 108건의 투신사건이 발생해 한강 다리 중 자살률 최고의 '자살대교'라는 오명을 얻었다.

하지만 마포대교가 '생명의 다리'로 꾸며진 지 1년여가 지난 현재 자살 예방은 물론 서울 시민에게 위로와 즐거움을 주는 '힐링 명소'로 각광받고 있다.

특히 제일기획이 출품한 '생명의 다리' 캠페인은 세계 3대 광고제 중 하나인 '클리오 국제광고제(Clio Awards)'에서 대상을 수상한 것을 비롯해 올해 각종 광고제에서 모두 37개의 상을 받으면서 세계인의 이목을 끌었다.

현장에서 만난 김혜진씨(20)는 "친구를 만나러 지방에서 올라온 김에 명소가 된 생명의 다리를 찾았다"면서 "'세상에서 제일 예쁜 쥐는? 나쥐~'라는 문구가 제일 마음에 들었다"며 친구와 까르르 웃었다. 김씨는 "친구들의 페이스북이나 트위터에 생명의 다리에 대한 포스팅이 하도 많아서 꼭 와 보고 싶었다"며 "저처럼 생명의 다리를 찾는 사람들이 많아지면 보는 눈이 많으니까 자살예방 효과도 클 것"이라고 기대감을 보였다.



■생명의전화 등 자살예방 한몫

김씨의 말처럼 실제로 목격자에 의한 신고 건수 증가로 사전 대비가 가능해지면서 마포대교 투신 예방 및 구조 건수가 지난해 15건에서 올해 들어 7월까지 65건으로 4배 이상 급증했다.

여기에 생명보험사회공헌재단과 사회복지법인 한국생명의전화 협업으로 설치된 'SOS 생명의 전화'와 지난해 12월 말 준공, 시범운영 중인 폐쇄회로TV(CCTV)를 통한 긴급구조출동시스템과의 공조도 한몫하고 있다.

마포대교 위 4대의 생명의 전화에는 각각 2개의 버튼이 있는데 초록색을 누르면 상담으로, 빨간색은 서울시 소방재난본부 119 영등포 수난구조대로 연결된다.

생명보험재단에 따르면 2011년 7월 한남대교를 시작으로 마포대교, 한강대교, 원효대교, 서강대교에 생명의 전화가 설치된 뒤 자살을 결심한 952명의 마음을 되돌렸다. 또 생명의 전화 이용 건수는 2012년 163건에서 올해 들어 9월까지 778건으로 5배 가까이 늘었다.

서울시 소방재난본부는 투신 사고가 가장 많은 마포대교와 서강대교 출동신고의 77%(56건)가 생명의 전화에 의한 출동이며 여기에 CCTV를 통한 긴급구조출동시스템이 연계되면서 올해 투신자 구조율이 94.8%까지 향상됐다고 설명했다. 지난해 투신자 구조율이 56.1%에 불과했던 점을 감안하면 엄청난 성과다.

■"제2·3의 생명의 다리 조성돼야"

앞서 이날 오전 생명의 전화로 기자와 대화를 나눈 한 상담사는 "자살을 마음먹고 마지막 말을 남기려는 사람도 있지만 도움을 요청하거나 하소연할 상대가 필요해서 전화를 거는 사람들도 많다"고 전했다. 남자친구(24)와 함께 마포대교를 찾은 백모씨(22)도 비슷한 얘기를 했다.백씨는 "'비밀 있어요? 아무한테도 말 못하고 혼자서 꾹꾹 담아온 얘기 지금 한번 해봐요. 당신의 얘기 잘 들어줄 거예요'라는 문구 뒤에 설치된 생명의 전화가 눈에 띄었다"며 "속에 담아 둔 말을 터놓고 싶을 때 한번 걸어보고 싶을 정도로 설득력이 있었다"고 밝혔다.

생명의 다리에 적힌 문구의 경우 일반공모와 심리치료 전문가들에게 자문해 선정된 만큼 일반인들과의 충분한 교감이 이뤄지고 있다는 평가다.


서울시는 이 같은 성과에 힘입어 지난 5일에는 한강대교를 제2 생명의 다리로 조성했다. 서울시는 한강대교 역시 투신 자살률 제로로 만들 수는 없더라도 충동적인 감정을 누그러뜨리는 메시지를 통해 자살을 단 한 건이라도 예방해보자는 취지에서 생명의 다리를 확대 조성할 방침이라고 밝혔다.

17년 동안 한강 투신자 구조활동을 벌여온 김범인 119 영등포수난구조대 수난1팀장은 "신고를 받고 출동해 자살 시도자에게 건네는 말 한마디가 다음 순간을 결정하기도 한다"면서 "제2·제3의 생명의 다리를 계속 확대 설치하면 자살률을 직·간접적으로 낮출 수 있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dalee@fnnews.com 이다해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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