키사스 원칙
파이낸셜뉴스
2020.01.09 17:09
수정 : 2020.01.09 17:09기사원문
'키사스 키사스 키사스'라는 노래가 있다. 몽환적인 선율의 이 노래는 1950년대 말 미국 재즈가수 냇 킹 콜이 스페인어로 불러 크게 히트했다. 빙 크로스비, 도리스 데이 등이 영어로 부른 적도 있지만 냇 킹 콜이 느릿느릿 부르는 스페인어 버전이 더욱 널리 알려져 있다.
왕가위 감독의 영화 '화양연화'에도 우유부단한 남자주인공의 애틋한 감정을 드러낼 때 이 노래가 등장한다. 스페인어로 키사스(Quizas)는 '어쩌면' '아마도'라는 뜻이다.
요즘 키사스라는 말이 새삼 사람들의 입에 오르내리고 있다. 사랑의 밀어를 나누는 연인들 사이에서가 아니라 혁명수비대 총사령관을 잃은 이란이 미국에 대한 보복공격을 감행하면서다. 여기서 말하는 키사스(Qisas)는 발음만 같을 뿐 의미가 전혀 다르다. 이슬람 사회에는 당한 만큼 똑같이 돌려주는 형벌원칙이 있다. 이게 바로 키사스다. 이 율법은 '눈에는 눈, 이에는 이'라는 고대 바빌로니아왕국의 함무라비법전에서 출발한다. 이란 외에도 이라크, 파키스탄 등 주변 이슬람 국가들도 여전히 이 등가보복법을 처벌방식의 하나로 채택하고 있다.
이란은 이번에도 키사스 원칙에 따른 피의 보복을 천명했지만 레드라인을 넘지는 않았다. 지난 8일 이란의 이라크 내 미군기지 폭격으로 다치거나 사망한 미군은 없는 것으로 밝혀졌다. 이에 화답이라도 하듯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도 "이란의 미사일 공격에 대한 군사대응을 하지 않겠다"며 한발 물러섰다. 사실 키사스 원칙은 강력한 복수를 허용하는 듯하지만 '당한 것 이상으로 보복하지 말라'는 뜻도 담겨 있다. 양국이 최악의 상황을 피한 것은 천만다행이다.
jsm64@fnnews.com 정순민 논설위원
※ 저작권자 ⓒ 파이낸셜뉴스, 무단전재-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