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노표출 수단 된 방화…노후지역은 소방시설 적어 '무방비'
파이낸셜뉴스
2025.08.21 18:08
수정 : 2025.08.24 10:32기사원문
10년간 방화·의심사건 줄었지만
피해자 사망 비율은 2배로 급증
가해자 대부분이 '경제적 약자'
소화장치 없는 곳에서 주로 발생
"잠재위험 집단 선제 관리해야"
방화로 인한 사망자 비율이 10년 새 두 배로 늘면서 사회적 불안이 커지고 있다. 노후 건물의 소방시설 부재와 분노 표출 수단으로 방화를 택하는 사회적 약자, 실질적 억제책 미비 등이 주요 원인으로 지목된다. 엄정한 법집행과 함께 이들에 대한 관리 등 제도적 허점을 메워야 한다고 전문가들은 지적한다.
21일 소방청 등에 따르면 지난 10년간(2015~2024년) 화재 사망자 3132명 중 방화·방화 의심 사건으로 인한 사망자는 627명으로, 전체의 20.0%에 달했다.
방화로 인한 인명피해가 잇따르는 이유 중 하나로 주요 화재 발생 장소인 주거시설에 스프링클러(자동소화장치) 등 직접진화장비 시설이 제대로 갖춰지지 않았다는 점이 꼽힌다.
실제로 지난 12일 오후 11시52분께 서울 동대문구 제기동 다세대주택에서 30대 남성이 불을 질러 1명이 사망하고 14명이 다쳤다. 불은 폐지를 쌓아둔 리어카에서 시작됐는데, 해당 다세대주택 주차장에 스프링클러 등 장비가 설치되지 않은 탓에 피해가 컸던 것으로 분석됐다.
주목할 만한 부분은 방화·방화 의심 사건은 줄었지만 사망자 비율은 늘고 있다는 점이다. 2015년 기준 △방화·방화 의심 건수는 1262건 △사망자는 55명으로 집계됐다. 지난해 △방화·방화 의심 건수는 695건 △사망자는 60명으로 나타났다. 2015년에는 100건당 사망자가 4.3명에 그쳤지만, 2024년에는 8.6명으로 2배 증가했다.
방화로 인한 사망자 비율이 늘어난 이유는 공격성을 제어하지 못하는 이들이 스트레스 표출 수단으로 방화를 선택한 경우가 증가했기 때문이다. 한국형사정책연구원은 방화범 대부분이 경제적 약자이고, 사소한 자극에 쉽게 흥분하는 경향이 있다고 설명했다.
이윤호 동국대 경찰행정학과 명예교수는 "방화는 라이터만 있으면 다른 범죄에 비해 저지르기 쉽지만 그로 인한 피해는 매우 커서 범죄 효과를 극대화할 수 있다"며 "사회에 대한 불만, 극단적인 박탈감에 사로잡힌 이들이 분노를 표출하는 수단으로 삼고 있다"고 말했다.
현행법상 사람이 거주하거나 사용할 목적으로 지어진 건물에 불을 질러 사람을 사망하게 한 경우 적용되는 현주건조물방화치사죄의 법정형은 사형, 무기 또는 7년 이상의 징역이다. 법원은 △거주 가능성 △피해 여부와 규모 △고의성 △피해 복구 노력 △전과 유무 등을 따져 형량을 정한다.
실제 판례에서도 징역형이나 무기징역 등 중형이 선고되는 경우가 많다. 대법원 2부(주심 오경미 대법관)는 특정범죄가중처벌법상 보복살인 등 혐의로 기소된 심모씨(64)에게 징역 35년을 선고한 원심을 지난 2월 24일 확정했다. 2019년 4월 아파트에 불을 지른 뒤 대피하는 주민들에게 흉기를 휘둘러 5명을 숨지게 하고 17명을 다치게 한 혐의로 재판에 넘겨진 안인득은 1심에서 사형을 선고받았으나 항소심에서 무기징역으로 감형됐고, 대법원에서 형이 확정됐다.
전문가들은 실효성 있는 대책 마련이 시급하다고 조언했다. 곽대경 동국대 경찰행정학과 교수는 "방화 범죄의 가장 큰 위험은 내재하고 있는 공격성을 표출한다는 점"이라며 "방화를 저지를 잠재력이 있는 집단에 대한 관리 체계를 마련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jyseo@fnnews.com 서지윤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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