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러시아 LNG 격돌, 아시아 시장이 승부처
파이낸셜뉴스
2025.09.20 09:00
수정 : 2025.09.20 18:37기사원문
글로벌 천연가스 패권전쟁, '시베리아의 힘 2' vs. '알래스카 프로젝트'
[파이낸셜뉴스] 전 세계 천연가스 시장이 거대한 지정학적 전쟁터로 변모하고 있다. 한쪽에서는 유럽 시장을 잃은 러시아가 ‘시베리아의 힘 2’라는 이름의 거대 가스관을 들고 아시아로 향하고, 다른 한쪽에서는 세계 최대 LNG 수출국으로 떠오른 미국이 수십 년간 미뤄왔던 ‘알래스카 LNG 프로젝트’를 재추진하며 맞서고 있다. 다만 이 두 거대 프로젝트의 성패는 동맹 관계 외에 경제 논리가 함께 작용할 것이라는 평가도 나오고 있다.
유럽시장 잃은 러시아의 반격 '시베리아의 힘2'
지난 2일 중국 베이징에서 열린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과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은 정상회담에서 ‘시베리아의 힘 2’ 파이프라인 건설에 관한 양해각서(MOU)를 맺었다
이 가스관은 러시아 서부 시베리아의 풍부한 가스 매장지를 몽골을 경유해 중국으로 직접 연결한다. 완공되면 연간 500억㎥ 천연가스가 중국에 공급될 전망이다. 30년간 유효한 이 계약을 통해 러시아는 중국을 '유일한' 대규모 고객으로 확보하게 된다. 하지만 중국은 러시아의 절박한 상황을 역이용하며 가격 협상에서 우위를 점하고 있다. 러시아가 유럽 수준의 가격을 요구하는 반면, 중국은 '시베리아의 힘 1'보다 훨씬 낮은 가격을 제시하며 팽팽한 줄다리기를 벌이고 있다.
미국의 전선 확대, '알래스카 LNG 프로젝트'
미국은 이미 셰일가스 혁명을 통해 세계 LNG 시장의 판도를 뒤흔든 에너지 강국이다. 이제 미국은 '알래스카 LNG'라는 또 다른 카드를 꺼내 들었다. 알래스카 북부의 거대한 가스전을 파이프라인으로 연결해 남부 해안에서 액화한 뒤 아시아로 수출하는 이 프로젝트는, 1970년대부터 논의되었지만 막대한 사업비와 경제성 부족으로 수차례 중단과 재개를 반복해왔다.
그러나 지금의 상황은 다르다.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 이후 LNG 가격이 급등하고 에너지 안보가 최우선 과제로 떠오르면서, 이 프로젝트는 경제성 논리를 넘어선 지정학적 의미를 얻게 되었다. 미국은 이 사업을 통해 한국, 일본 아시아 동맹국에 안정적인 에너지원을 제공하고, 러시아의 아시아 시장 진출을 견제하는 이중 효과를 노리고 있다.
알래스카 LNG 프로젝트의 가장 큰 걸림돌은 역시 막대한 사업비이다. 초기 예상 비용이 400억 달러를 훌쩍 넘는 데다, 혹독한 기후와 지형적 난이도 때문에 실제 건설 비용은 더욱 불어날 가능성이 크다. 이러한 높은 비용은 LNG의 가격 경쟁력을 떨어뜨려, 구매자들에게 외면받을 위험성이 존재한다.
또 국제적으로 강화되는 환경 규제에 따라, 이 프로젝트는 상업 생산 단계에 이르기 전에도 환경 문제로 인한 사업 지연이나 중단될 수 있는 가능성이 존재한다. 투자 결정 이후 프로젝트가 순조롭게 진행될 지도 불확실하다. 프로젝트의 상업 생산 시점은 2030년 이후로 예상되는데, 이는 트럼프 대통령의 임기 이후이기 때문에 지속적으로 생산이 가능할 지도 불투명하다.
LNG패권 전쟁 속 경제 논리 작용
미국과 러시아의 이 프로젝트는 단순한 에너지 사업을 넘어 천연가스 시장의 패권을 놓고 벌이는 대리전의 성격을 띠고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여기에 기존 LNG 시장의 강자인 카타르와 호주 역시 대규모 증산 프로젝트를 추진하며 경쟁에 뛰어들었다. 모두가 시장의 주도권을 잡기 위해 막대한 자본을 쏟아부으며 '치킨 게임'을 벌이고 있는 양상이다.
'시베리아의 힘2' 프로젝트의 운명은 결국 중-러간의 최종 가격 합의에 달려 있다는 평가가 지배적이다. 중국은 과거 호주산 천연가스 수입이 많았는데 이제는 러시아산과 호주산을 놓고 저울질하고 있는 상황이다.
'알래스카 프로젝트'는 한국과 일본의 공조가 중요하다는 평가가 나온다. 알래스카 프로젝트 참여와 관련해 한국과 일본이 같은 입장에 있기 때문이다.
이재승 고려대학교 국제대학원 교수는 "중·러 가스협력과 한미일 가스 협력이 경쟁하는 양상은 보이겠으나 상업적·경제적 논리도 상당 부분 작용할 것"이라며 "태평양을 둘러싼 국가간 경제적 이익과 정치적 이익이 수렴되어 나가는 양상이 진행되고 있는 것"이라고 진단했다.
leeyb@fnnews.com 이유범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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