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도, 그때도 틀리다

파이낸셜뉴스       2025.10.11 06:00   수정 : 2025.10.11 06:00기사원문

[파이낸셜뉴스] 금융위원회와 금융감독원을 뒤흔들었던 ‘조직개편 방안’이 결국 철회됐다. 하지만 아직 찜찜함이 남았다. 어떤 정치적 사건을 계기로 또 다시 추진될 수 있다는 우려 탓일까. 그렇기도 하지만 이번에 개편안이 중단된 이유를 보고 뒷맛이 껄끄러운 게 더 크다.

한 발 물러선 까닭으로 ‘그 방안 자체에 문제가 있어서’라는 말은 찾아볼 수 없어서다.

한정애 더불어민주당 정책위의장은 지난달 25일 정부조직법에 금융당국 조직개편을 담지 않겠다고 발표하면서 “금융 관련 정부조직을 6개월 이상 불안정한 상태로 방치하는 것은 경제위기 극복에 도움이 안 된다”고 그 사유를 밝혔다. 문장 앞에 ‘조직개편안에 문제는 없지만’이라는 말이 빠진 것처럼 읽힌다.

방향이 옳다면 그 과정에서 빚어지는 혼란은 응당 감당해야 한다. 다소 과격하더라도 상당수가 필요성에 공감했더라면 금감원 직원들의 유례없는 집단행동도, 금융당국에 날을 세우던 언론이 통일된 기조로 금감원을 지키려하는 듯한 낯선 모습도 연출되지 않았을 테다. 그랬다는 건 그 방안 자체가 명분도, 실리도 없었기 때문이다.

반대 논리를 찾아보려고도 했다. ‘권력의 분산’이라는 상징 이외엔 없었다. 오히려 이번 기회에 해괴한 형태로 쪼개지는 권력은 더 큰 피해를 유발할 수 있다는 점만 알게 됐다. 다들 그랬는지 취재차 누구를 만나도 “전임 원장이 밉보여서”라는 진담과 장난이 섞인 우스갯소리만 오고 갔다.

비상대책위원회에 있던 한 금감원 직원 표정이 기억에 남는다. 이쪽저쪽을 만나고 다니는 기자들은 어떻게 생각하느냐고 물었다. 그 질문을 하는 그의 얼굴에는 분노나 슬픔, 짜증보단 의아함이 번져있었다. 정말 이유가 있다면 알고 싶다는 눈빛이었다. 솔직하게 답했다. “나도 모르겠다, 찾아보려고 했는데 실패했다.”

이번에 가장 반대에 직면했던 방안은 ‘쌍봉형’과 ‘공공기관 지정’ 크게 2가지였다. 전자는 현 금융소비자보호처를 금감원에서 떼 내 금융소비자보호원으로 격상시켜 건전성 감독과 영업행위(금융상품 광고·판매 등) 규제를 다른 기관에서 관장하자는 게 골자다.

두 권한의 주체가 분리되는 순간 빚어지는 불상사는 이미 증명됐다. 앞서 그 체제를 도입한 영국, 호주, 네덜란드 등은 모두 실패를 맛봤다. 한국이라고 다르지 않다. 중복 검사, 사각지대 발생 등이 어렵지 않게 예측된다. 2016년 금감원이 권역별로 소비자보호부서를 설치하는 정도로 운영을 해봤을 때에도 직원들 간 업무분장 갈등으로 이는 금방 막을 내렸다.

2년 간 영국 건전성감독청(PRA)에 파견을 다녀온 금감원 직원과도 이야기를 나눠봤다. 그에 따르면 인·허가 건이 들어올 때마다 영업행위 규제를 담당하는 금융감독청(FCA)과 늘 회의를 함께 해야 했다. 문제는 다른 기관이기 때문에 적극적 토론이 일어나지 않는다는 점이다. ‘할 만큼만 하면 돼’라는 인식이 팽배해 있다는 것이다. 반대로 피감 금융사 입장에선 양쪽 눈치를 다 봐야 하는 환경에 놓여진다. PRA 직원이 FCA에도 해당 사실을 알려줬냐고 묻는 해프닝도 일어난다고 했다.

또 다른 의제인 공공기관 지정은 관치와 같은 말이다. 수많은 ‘결재’ 속에 감독 기동성이 떨어지고, 금융위에 더해 재정경제부 눈치까지 봐야 하는 구조가 된다. 금융감독의 우선 가치인 자율성과 독립성은 희미해질 수밖에 없다. 독립성을 강조하는 바젤은행감독위원회(BCBS), 국제통화기금(IMF) 같은 국제기구 주문에도 역행하는 처사다.

현 금융당국 체계가 완전하다고 할 순 없다.
그러나 오답은 있다. 첫 추진 때 동력을 잃은 만큼 조직개편 논의에 다시 불이 붙기는 쉽지 않다. 하지만 시점에 따라 정당성이 달라지는 명제가 아니라, 그 자체로 오류가 판명된 만큼 언제 재추진되든 지금 그렇듯 그때도 틀릴 것이다.

taeil0808@fnnews.com 김태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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