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에선 '이생망'" 캄보디아 갔다가 사기꾼이 되어 돌아온 아들딸들

파이낸셜뉴스       2025.10.18 07:00   수정 : 2025.10.18 08:44기사원문

캄보디아 이민 당국에 구금된 한국인 60여명이 전세기를 타고 18일 아침 송환됐다. 이들은 고국의 땅을 밟기도 전에 경찰에 압송 돼 수사를 받을 예정이다. 이들은 피해자이면서 피의자다.
한국에서 변변한 일자리를 찾지 못했던 이들은 '돈 벌어오겠다'며 집을 나섰고 자의든 타의든 같은 한국인을 등쳐먹는 보이스피싱 가담자들이 되어 돌아왔다.




[파이낸셜뉴스] 지난 7월 경북 예천 출신 22살 대학생 남성 박모씨는 가족에게 "현지 박람회에 다녀오겠다"고 말한 뒤 캄보디아로 출국했다. 이후 박씨 가족은 한국계 중국인 말투의 사람에게서 5000만원이 넘는 돈을 보내라는 협박을 받은 뒤 경찰과 외교부에 신고했다. 하지만 박씨는 지난 8월 8일 캄보디아 캄포트주 보코산 인근에 있던 검은색 차 안에서 사망한 채 현지 경찰에게 발견됐다. 박씨의 사망 원인은 '고문으로 인한 심장마비'였다.

박씨 사건으로 캄보디아 사태가 공론화되며, 전국 각지에 "우리 아이도 캄보디아 갔다가 연락이 두절됐다"는 취지의 신고가 빗발쳤다. 신정훈 더불어민주당 의원실이 경찰청에서 제출받은 자료에 따르면 지난해 1월부터 이달 13일까지 캄보디아 관련 납치·감금·실종 등 신고가 접수된 건수는 전국에서 143건이다. 이 중 경찰이 신고 대상자의 소재를 파악해 사건을 종결한 건은 91건이며 나머지 52건은 수사가 진행 중이다.

지역별로 보면 수도권이 69건으로 가장 많았고 경상권 35건, 충청권 17건, 전라권 14건, 강원권 6건, 제주 3건으로 확인됐다. 신고 내역을 보면 연락 두절된 한국인 중 다수가 6월에서 8월사이에 출국한 20~30대 남성들인 것으로 알려졌다.

"보이스피싱 잘하는 한국인 몸값 비쌌다" 현지 교민들의 따끔한 비판


캄보디아에서 한국인 납치 신고 건수는 3년 전에 비해 30배 이상 급증했다.한국 외교부에 따르면 한국인의 캄보디아 내 납치·감금 신고 건수는 2022년과 2023년에 각각 11건, 21건 수준이었다. 그런데 2024년에 220건으로 10배 이상 급증하더니, 올해는 8월까지만 포함해도 330건 수준으로 파악됐다. 아직 신고되지 않았거나 사실관계 확인이 더 필요한 사안들도 있어 피해 건수는 더 늘어날 수 있는 상황이다.

한국인 대상 범죄가 급증한 이유는 한국을 대상으로 높은 수익을 얻을 수 있기 때문이라고 현지 교민들은 말한다. 캄보디아 시아누크빌 교민회장 오창수 선교사는 YTN 라디오 '김준우의 뉴스 정면승부'와의 인터뷰에서 "시아누크빌에는 중국, 인도네시아, 말레이시아, 베트남, 태국 등 여러 나라 사람들이 와서 범죄 활동을 하지만, 한국인들 몸값이 제일 비싸다. 보이스피싱 수익을 잘 내기 때문"이라고 밝혔다. 오 선교사는 "한국인들은 (대개 한 명당) 1만 달러(약 1430만원)에 중국 보이스피싱 조직으로 팔아넘겨진다"고 덧붙였다.

실제로 최근 캄보디아에 납치된 한국인들은 상당한 수준의 몸값을 요구받은 것으로 알려졌다. 제주서부경찰서에 따르면 지난 8월 캄보디아에서 납치됐다 풀려난 20대 남성이 몸값으로 3500만원 상당의 가상화폐를 요구받았다. 해당 남성은 요구받은 금액을 모두 지불하고 풀려났다고 진술한 것으로 알려졌다. 또 지난 7월 풀려난 또 다른 20대 남녀 두 명도 1600만원 상당의 가상화폐를 지불한 뒤 풀려났다고 창원중부경찰서는 전했다.

범죄조직 배후는 캄보디아 정부?


국제앰네스티 등 국제단체들에 따르면 캄보디아 내에 최소 53개의 대규모 사기 사업장이 있다고 전해진다. 이곳에서는 한국, 중국, 대만, 베트남, 태국 등 인근 국가에서 청년들을 취업 사기 등으로 유인해 납치·감금한 뒤 철문, 높은 담벼락, 무장 경비원에 둘러싸인 건물에 가둬놓고 학대하면서 주식 리딩방, 보이스피싱, 온라인 도박, 마약 밀수 등 범죄에 활용하고 있다고 전해졌다.

미국평화연구소(USIP)에 따르면, 캄보디아 사기 산업은 캄보디아 국내총생산(GDP)의 약 절반에 해당하는 연간 125억 달러(약 17조원)에 달한다. 캄보디아에서 이러한 범죄단지가 성장할 수 있었던 것은 캄보디아 정부의 비호 및 묵인이 있었다는 조사가 밝혀지고 있다. 미국 국무부가 지난달 29일(현지시간) 발간한 '2025 인신매매 보고서'에 따르면 캄보디아의 일부 고위공무원들은 사기 범죄단지를 소유하고 있다고 전해졌다.

하지만 캄보디아 정부는 이번 사건의 배후로 지목된 프린스그룹 등 범죄조직이 캄보디아 정부 등의 비호를 통해 성장했다는 미 법무부의 조사 결과에 대해선 침묵하고 있다.



"불법인 줄 알면서 갔잖아"… 피해자 비난 여론도


외교부는 현재 캄보디아 캄포트주 보코산 지역, 바벳시, 포이펫시 지역에 여행금지(4단계)를 발령한 상태다. 시하누크빌 등에 출국권고(3단계)를 발령했고 그 외 캄보디아 전 지역에 여행자제(2단계)를 발령한 상태다. 하지만 이러한 조치에도 불구하고 캄보디아로 출국을 시도하는 사례가 계속 발생하고 있다.

지난 17일 인천국제공항에서 "텔레그램으로 알게 된 동생에게 항공권을 받았다"며 캄보디아행 항공기에 탑승하려던 20대 남성이 경찰의 제지를 받았다. 이후 텔레그램 대화방에서는 "출국 실패"라는 메시지가 올라왔다. 또 다른 30대 남성도 16일 출국 목적을 설명하지 못해 제지됐다. 이들은 모두 '고수익 해외 일자리'를 제안받은 공통점이 있었다.

이에 온라인상에서는 "불법적인 일이라는 걸 알고 간 것이니 자업자득", "보이스피싱을 당한 피해자들이 더 불쌍하다"는 등의 댓글이 이어지고 있다.

실제로 15일 파이낸셜뉴스 보도에 따르면 텔레그램을 통해 해외 고수익 아르바이트 모집자 3명과 직접 접촉한 결과 이들은 '보이스피싱'이라는 사실을 숨기지 않은 것으로 드러났다.

캄보디아 교민 사회에서도 범죄 밀집지역에서 일한 한국인들 대부분이 불법적 일을 하게 될 가능성을 알고 입국한 것으로 보고 있다.옥해실 캄보디아 한인회 부회장은 뉴스1과의 인터뷰에서 "초창기에는 속았다고 하지만 뉴스에서 난리를 쳤는데도 들어오지 않느냐"며 "왜 선량한 시민이 (범죄를) 당한 것처럼 이야기하는지 모르겠다"고 성토했다.

실제로 캄보디아 이민청에 구금된 한국인들은 대부분 캄보디아 내 피싱범죄 등에 연루돼 입건된 상태로, 이들 중 일부는 자진 귀국을 거부하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캄보디아 경찰은 17일 온라인 사기에 가담해 구금된 한국인 59명을 추방하겠다고 밝힌 상태다.



한편 숨진 대학생 박씨의 시신에 대한 공동 부검이 20일 이뤄질 예정이다. 박씨의 시신은 석달째 국내로 송환되지 못한 상태다.

경찰은 부검을 통해 사망 원인은 물론 장기 적출 여부를 비롯한 추가 범행 가능성까지 폭넓게 확인할 계획이다.
현지에서 부검이 끝나면 시신은 화장해 국내로 옮겨지고, 결과는 절차를 거쳐 국내 수사기관에 공유될 예정이다.

'디깅 digging'이라는 말, 들어보셨지요? [땅을 파다 dig]에서 나온 말로, 요즘은 깊이 파고들어 본질에 다가가려는 행위를 일컫는다고 합니다. [주말의 디깅]은 한가지 이슈를 깊게 파서 주말 아침, 독자 여러분을 찾아갑니다. 이 기사를 계속 받아보시려면 기자페이지를 구독해주세요.
sms@fnnews.com 성민서 기자

Hot 포토

많이 본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