뇌가 보내는 SOS, 도파민 중독의 함정에서 벗어나기
파이낸셜뉴스
2025.11.08 07:00
수정 : 2025.11.08 07:00기사원문
[파이낸셜뉴스] 호르몬은 생명의 진화와 함께 종에서 종으로 전달되고 발전했다. 생명이 존재하는 한 반드시 존재할 화학물질이 있다면 바로 '호르몬'이다. 이런 의미에서 호르몬은 불멸이다.
안철우 교수가 칼럼을 통해 몸속을 지배하는 화학물질인 호르몬에 대해 정확히 알려주고 삶을 좀더 건강하고 행복하게 보낼 방법을 제시하고자 한다. <편집자주>
도파민은 보상을 제공하고 우리는 그 보상을 통해 쾌감을 느끼면서 행동을 강화한다. 행동이 강화되면 강화될수록 우리는 더 큰 보상을 기대한다.
예를 들어 반에서 1등을 하는 쾌감을 충분히 맛본 아이는 이제 1등이 시시하게 느껴진다. 그래서 전교 1등을 꿈꾸게 된다. 전교 1등을 해본 아이는 전국 1등을 목표로 하게 된다. 같은 보상으로는 만족할 수 없기에 더욱 큰 목표를 꿈꾸게 된다.
게임도 마찬가지다. 처음 게임을 할 때에는 간단하게 점수를 올리는 것으로 충분한 희열을 느낀다. 하지만 점점 그것만으로는 부족하다. 더 많은 아이템을 획득하고 더 많은 적을 무찌르고 더 강한 캐릭터가 되어야 비슷한 강도의 희열을 느낄 수 있다.
그런데 게임이 건강한 도전과 다른 점이 있다. 건강한 도전은 실패해도 마음을 추스르고 다시 도전하거나 목표를 재설정할 수 있다. 하지만 게임은 곧바로 극심한 고통에 사로잡힌다. 보상의 쾌감이 컸던 만큼 보상이 주어지지 않는 상태가 너무나 고통스럽다.
고통에서 벗어나는 방법은 단 한 가지밖에 없다. 즉, 보상을 얻을 수 있는 행위에 더욱 탐닉하는 것, 의존과 남용을 강화하는 것뿐이다. 바로 이것이 중독의 상태다.
이렇게 중독의 상태에 빠지는 이유는 뇌가 일반적인 도파민 분비에 내성이 생겼기 때문이다.
건강한 사람은 가족과 맛있는 음식을 먹거나, 연인과 즐거운 데이트를 하거나, 팀 과제를 잘 해내서 좋은 결과를 내는 것으로 충분한 기쁨을 느낀다. 여기서 좀 더 발전하면 자격증을 취득하거나, 대기업 취업에 성공하는 등 더 높은 목표를 이루는 것으로 행복을 느낄 수 있다.
그런데 게임, 알코올, 약물 등이 무서운 이유는 훨씬 많은 도파민을 너무나 쉽게 얻어낸다는 데 있다. 노력을 통해 얻는 양의 2~3배, 심지어 10배 이상의 도파민을 분비하여 뇌가 강렬한 쾌감에 사로잡히게 된다.
이러한 경험이 반복되면 뇌는 더 이상 일상에서의 평범한 일에서 행복을 느끼지 못하게 된다. 행복을 느끼지 못하는 차원이 아니라 그 상태가 너무나 괴롭고 고통스럽다. 고통에서 벗어나는 유일한 방법은 중독된 물질이나 행위를 강화하는 것뿐이다. 더 많이 게임을 하거나, 더 많은 양의 술을 마시거나, 계속 더 높은 용량의 약물에 취해야 한다.
뇌의 도파민 보상 시스템은 생명체 안에 살고자 하는 의지를 불어넣기 위해 만들어진 고도의 신경회로다. 그런데 어떤 물질이나 행위에 중독이 되었다는 것은 이 시스템이 망가졌다는 뜻이다.
단지 보상회로만 망가진 것이 아니라 보상회로가 담당하는 모든 기능, 즉 인지력, 판단력, 기억력, 감정조절, 행동조절, 심지어 운동신경과 감각까지 망가졌다고 보아야 한다. 그래서 중독은 단순한 증상이 아니다. 치료가 필요한 질환이다.
실제로 중독에 빠진 뇌는 정상 뇌와 상당한 차이가 있다. 양전자방출 단층촬영(PET) 뇌 사진을 보면 정상 뇌는 도파민 회로 중 하나인 선조체 부위에 도파민 수송체와 수용체가 상당량 존재한다. 그러나 무엇인가에 중독된 뇌는 이것들이 매우 적다. 중독 증상이 심할수록 도파민 수송체와 수용체는 거의 고갈되다시피 한다. 그만큼 많은 양의 도파민에 지속적으로 노출되어 도파민 회로가 고장 난 상태라고 말할 수 있다.
또한 중독된 뇌는 신진대사가 떨어진다. 포도당의 신진대사를 관찰하는 PET 사진에서 정상 뇌는 모든 부위가 활성화되어 있지만 중독된 뇌는 상당 부위에서 활동이 멈춘 것을 볼 수 있다.
/안철우 강남세브란스병원 내분비내과 교수
pompom@fnnews.com 정명진 의학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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