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거래 몇시간만에 해외서 송금요청해도 범죄의심 못했다
파이낸셜뉴스
2025.10.26 18:10
수정 : 2025.10.26 18:09기사원문
금융권 보이스피싱 대책 '구멍'
은행 이상감지시스템 강화했지만
범죄 수법 날로 진화하며 역부족
당국 가이드라인은 2년째 그대로
사기이용 정지계좌만 올해 5만건
가이드라인에 불과한 FDS 관련 규제를 대폭 강화해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금융의 디지털화 과정에서 비대면 거래로 막대한 수익을 올리는 은행권은 소비자피해 예방에 열을 올리고 있다. 비대면 거래 급증은 사기 이용계좌 급증을 불러와 올해 역대 최초로 10만건을 달성할 전망이다.
26일 금융감독원이 김현정 더불어민주당 의원실에 제출한 자료에 따르면 사기이용계좌 지급정지 건수가 급증하고 있다. 지난 2023년 6만424건에서 지난해 7만1867건으로 늘었다. 올해 상반기에는 5만2844건에 달했다. 단순 계산으로는 올해 10만건을 돌파할 것으로 예상된다.
앞서 금감원과 금융보안원은 2023년 10월 FDS 운영 가이드라인을 제작·배포했다. 금융당국 관계자는 "가이드라인에 따라 각 사 상황에 맞춰 자율적인 FDS를 운영하고 있다"면서 "FDS의 세부 내용이 공개되거나 최소한의 기준이 알려질 경우 새로운 범죄의 표적이 될 수 있어 민감한 부분"이라고 설명했다.
보이스피싱 범죄 수법이 날이 갈수록 교묘해지고 있지만 금융당국과 은행권의 대응은 이를 따라가지 못하고 있다. 만기가 1주일밖에 남지 않은 적금을 해지하거나 한국에서 거래하던 피해자가 몇 시간 만에 해외에서 송금을 요청해 와도 FDS는 이를 잡아내지 못하는 형편이다. 한 보이스피싱 피해자는 "만기가 1주일도 남지 않은 적금을 밤 10시에 온라인으로 해지했는데 FDS가 잡아내지 못한 이유를 모르겠다"고 토로했다.
또 다른 피해자는 "은행별로 가이드라인에 따른 국내·해외 송금 거래시간 기준이 다르다"면서 "한국에서 거래를 마친 피해자가 중국에서 6시간 만에 다른 금융거래를 하는 게 가능하다고 보는 FDS는 문제가 있다"고 꼬집었다.
금융당국의 FDS 최소 가이드라인만 준수하면 된다는 식의 은행의 안일한 인식이 보이스피싱 피해를 키운다는 분석이다. 실제 금융당국이 공동 발표한 FDS 가이드라인은 2년째 개정 없이 그대로 유지되고 있다.
금감원은 "피해구제 신청 등이 있는 경우 거래내역 등을 확인해 사기이용계좌로 의심할 만한 사정이 있다고 인정되면 즉시 해당 계좌를 지급정지한다"면서도 "금감원은 지급정지 조치 내역만 보유하고 있다"고 전했다. 보이스피싱이나 마약, 사기, 불법 사금융 추심 등 불법거래에 사용된 계좌 수나 계좌동결 건수 등은 파악조차 못하고 있다는 것이다.
은행들은 인공지능(AI) 기술을 활용한 FDS 고도화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KB국민은행은 2023년 말 KPMG·김앤장과 FDS 고도화 프로젝트에 착수해 6개월 뒤인 2024년 AI를 활용한 내부통제용 FDS를 도입했다. 신한은행도 지난해 6월 기존 FDS에 은행이 자체개발 AI모델을 결합한 하이브리드형 시스템을 구축했다. 우리은행은 지난달 금융사기 예방을 위한 전담부서를 신설했다. AI 전문인력을 포함한 FDS플랫폼팀을 운영해 시스템 전문성 강화를 꾀하는 것이다.
FDS 모니터링 인력도 늘리고 있다. 올해 9월 말 기준 국민은행은 자사 소속 25명에 외부업체 39명을 더해 총 64명의 인력을 이상거래 모니터링에 투입하고 있다. NH농협은행은 하도급 형태로 계열사 인력 18명을 운용하고 있고 신한은행과 우리은행은 각각 16명, 12명의 인원이 모니터링에 참여하고 있다.
은행권 관계자는 "최근 보이스피싱 피해건수는 감소세를 보이지만 가상자산 거래소를 통한 외환유출이나 다른 이상거래가 급증하면서 은행들이 FDS 모니터링 인력을 늘리는 추세"라고 전했다.
mj@fnnews.com 박문수 박소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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