또 ‘반쪽 시정연설’, 되풀이되는 정치 악습

파이낸셜뉴스       2025.11.04 18:19   수정 : 2025.11.04 18:19기사원문
李 국회 시정연설, 초당적 협력 당부
野 보이콧, 극단 정치는 경제 악영향

이재명 대통령이 4일 국회 시정연설에서 내년 예산안을 '인공지능(AI) 시대를 여는 첫 예산'으로 규정하고 초당적 협력을 요청했다. 이어 "박정희 대통령이 산업화의 고속도로를 깔고, 김대중 대통령이 정보화의 고속도로를 낸 것처럼 이제는 AI 시대의 고속도로를 구축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연구개발(R&D) 예산 35조3000억원 투자, 고급 인재 1만1000명 양성, 150조원 국민성장펀드 조성 등을 통해 'AI 3강'이라는 목표를 달성하겠다는 청사진을 제시한 것이다.

국가재정이 어렵더라도 첨단산업 투자에 예산을 아껴서는 안 된다.

이날 연설에서 이 대통령은 "AI 기술은 방위산업의 판도도 바꾸고 있다"며 기술혁신의 영향을 크게 받을 분야로 방위산업을 지목했다. 재래식 무기체계를 AI 시대에 걸맞은 첨단 무기체계로 전환해 산업 경쟁력을 강화하고 자주국방을 실현하겠다는 의지를 밝힌 것이다.

다만 "전 세계 5위의 군사력인 대한민국이 국방을 외부에 의존한다는 것은 우리 국민의 자존심 문제 아니겠나"라고 말한 것은 생각해 볼 대목이다. 국방예산 증액이 군사력 확보에 도움이 되는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북한의 핵과 미사일 능력이 고도화하는 현실에서 불가피한 '외부 의존'을 국민 자존심과 직접 연결하는 것은 적절했는지 되돌아볼 필요가 있다. 국방은 자존심이 아니라 생존의 문제다.

시정연설 말미에서 이 대통령은 "대한민국의 미래를 위해 정부는 국회의 제안을 경청하고, 좋은 대안은 언제든지 수용하겠다"고 밝혔다. 여야 간 입장 차이는 존재하더라도 국가와 국민을 위하는 진심은 같다는 메시지를 전한 것이다. 이는 여야가 합심해 현안에 대응하고 예산을 적재적소에 배치하기 위한 논의를 서둘러야 한다는 현실적 요구로 읽힌다.

그러나 현재의 여야 대치상황을 보면 협치는 여전히 요원하다. 이날 국민의힘은 특검이 추경호 전 원내대표 구속영장을 청구한 데 항의하며 이 대통령의 시정연설을 보이콧했다. 윤석열 정부 당시인 2022년 이후 3년 만에 또다시 '반쪽 연설'이 재연된 것이다. 2022년에는 더불어민주당이 보이콧과 시위를 벌였다. 공수만 뒤바뀐 채 과거 행태를 그대로 되풀이하는 '판박이 정국'은 국민을 지치게 할 뿐이다.

사상 최대인 728조원 규모의 내년 예산안은 미중 갈등으로 인한 대외 불확실성과 대내적으로 저성장·고금리의 위기가 겹친 상황에서 마련됐다. 이런 복합위기 속에서 정치가 양극단으로 치닫는다면 아무리 좋은 정책이라도 효과를 내기 어렵다. 한국재정학회 또한 정치 양극화가 정책 불확실성을 키워 경제성장에도 부정적 영향을 미친다고 분석한 바 있다.

정부 지출은 기업 투자뿐 아니라 가계 소비와도 긴밀히 연결돼 있다. 예산안 통과가 지연되면 기업의 생산·투자 계획에 불확실성이 커지고, 사회안전망에 공백이 생기며 민간 소비도 위축될 수 있다.
협치는 단순한 정치적 미덕이 아니라 위기를 극복하고 경제를 안정적으로 운영하기 위한 필수 조건이다.

여야는 끝이 보이지 않는 정쟁을 중단하고 문제를 공동으로 해결하는 것이 책무라는 인식 아래 협치의 테이블에서 머리를 맞대야 한다. 이 대통령이 정파를 초월한 소통의 리더십을 발휘해 협치의 물꼬를 트기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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