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찰을 노숙자로 만들었다” APEC 동원 경찰들이 울분 터뜨린 이유
파이낸셜뉴스
2025.11.11 06:40
수정 : 2025.11.11 14:00기사원문
[파이낸셜뉴스] 경주에서 열린 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APEC) 정상회의에 동원됐던 경찰관들이 원성을 터뜨리고 있다. 일부 현장에서 혼선이 빚어지며 제대로 된 숙소나 식사를 제공받지 못했다는 것이다.
"모포 한장으로 맨바닥에서 잤다" 경찰직협에 올라온 글들
전국경찰직장협의회는 10일 당시 현장 경찰관들의 열악한 환경이 담긴 사진을 공개했다.
직협이 공개한 사진 속에는 근무복을 입은 경찰관이 대기 장소에서 박스를 이불 삼아 쪽잠을 자는 모습, 영화관의 대형 스크린 앞에서 단체로 자거나 복도에서 모포 하나만을 깔고 잠을 청하는 모습 등이 공개됐다.
직협 관계자는 연합뉴스에 "모포가 지급된 곳도 있었지만, 아무것도 지급이 안 된 곳도 있었다"며 "폐지를 줍는 분들한테 상자를 빌려온 경우도 있었다"고 전했다. 낡은 모텔이나 산속 여관에 묵었다고 증언한 경찰들도 있었다.
APEC 당시 파견 경찰관들의 열악한 환경에 대한 증언은 직장인 익명 게시판 '블라인드'에서도 여럿 찾아볼 수 있다. 도시락을 받지 못해 사비로 밥을 사 먹었다는 증언이나, 추운 날씨에 찬밥을 먹어야 했다는 증언들이 대표적이다. 숙소가 부족해 모텔을 동원하다보니 화장실 문 없이 통유리로 된 방에 동료와 함께 묵는 민망한 경우도 생겼다고 한다.
국회에서 '경찰을 노숙자로 만든 APEC 행사 사진전'
이와 관련해 경찰청 관계자는 10일 열린 정례 기자간담회에서 "연초부터 숙소와 급식 부분을 신경 써왔지만, 행사 관련 기관 인력과 외국 대표단까지 겹치면서 경주 내 호텔·숙소·모텔·기업수련원을 전부 확보해도 부족한 상황이었다"고 설명했다.
이번 APEC 기간 경주에 동원된 경찰 인력은 하루 최대 1만9000명 규모다. 인근 대구·영천·울산·포항까지 1만실을 확보했으나 모든 인원에 맞춰 쾌적한 숙소를 구하는 데는 한계가 있었다는 설명이다.
이 관계자는 "도시락은 배달 지연이나 행정 착오로 초기에 누락되는 경우도 있었지만, 현장 불만을 접수하면서 신속히 개선하고자 노력했다"면서도 "일부 직원에게 쾌적하지 못한 환경과 식사 제공을 못한 것은 기획단으로서 미안하다. 같은 일이 반복되지 않도록 문제점을 분석하고 기록해 개선해 나가겠다"고 덧붙였다.
한편 직협은 오는 11일 서울 서대문구 경찰청 앞, 12일과 14일에는 국회 앞에서 '경찰을 노숙자로 만든 APEC 행사 사진전'을 열 계획이다. 직협은 언론 공지를 통해 "경찰청, 경북경찰청, APEC 기획단이 1년간 준비한 세계적 행사에 동원된 경찰관들의 열악한 환경과 복지를 알리겠다"며 경찰 지휘부 대상 직무 감사를 통한 전수조사, 사과, 재발장지 대책 마련 등을 요구했다.
bng@fnnews.com 김희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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