직장 내 '젠더폭력' 인식 나아졌지만…현실은 '제자리'
파이낸셜뉴스
2025.11.11 14:00
수정 : 2025.11.11 14:00기사원문
직장갑질119 직장 내 젠더폭력 설문 결과
젠더폭력 위험 대한 인식 4년간 크게 개선
그러나 성추행·성폭행 등 경험률 제자리
"젠더폭력 문제 본질 구조, 제도 뒤따라야"
11일 시민단체 직장갑질119가 지난 2022년부터 올해까지 매년 직장인 1000명을 대상으로 '직장 내 젠더폭력 경험 및 인식'에 관한 설문조사를 진행한 결과, 직장 내 젠더폭력 위험에 대한 인식이 과거보다 높아진 것으로 나타났다.
실제 직장 내 성범죄 관련 현황 질문에서 '(직장이) 안전하지 않다'는 문항에 '그렇지 않다'고 답변한 응답자는 2022년 55.9%에서 올해 65.4%로 늘어났다. 같은 기간 '성범죄를 신고하기 어렵다'는 문항에 '그렇지 않다'고 답한 비율도 48.2%에서 56.7%로, '합당한 처벌이 이뤄지지 않을 것 같다'는 항목에 '그렇지 않다'고 응답한 비율은 37.5%에서 51.7% 증가했다.
이런 피해 이후 대응 방식으로는 '참거나 모르는 척했다'는 응답이 4년 연속 1위인 것으로 조사됐다. 신고를 포기한 응답자들을 대상으로 신고하지 않은 이유를 물어본 결과 '대응을 해도 나아질 것 같지 않아서'가 4년 내내 가장 높은 응답을 차지했고, '인사 등에 불이익을 당할 것 같아서'가 그 뒤를 이었다.
특히 여성은 남성보다 회사가 직장 내 성범죄로부터 자신을 보호해 줄 것이라고 믿지 않는 경향이 뚜렷한 것으로 나타났다. 이런 불신의 배경에는 여성들이 체감하는 조직문화와 성평등 수준이 남성에 비해 훨씬 낮다는 분석이다. 실제로 직장갑질119 젠더특별위원회가 개발한 성차별 조직진단 종합점수는 남성이 70.3점(C등급)인 반면 여성은 64.2점(D등급)으로 성별 간 차이가 뚜렷했다.
정희성 노무법인 삶 노무사는 "남성들이 더 평등한 직장에 다니고 있다기보다는 성별에 따라 조직을 경험하고 해석하는 방식이 크게 다르다는 사실로 이해하는 것이 타당하다"며 "점수 차이가 크게 나타난 지표 중 채용, 노동조건, 승진 등은 법에서 성별을 이유로 한 차별을 명시적으로 금지하고 있는 영역으로 법적 금지와 실제 체감 사이에 상당한 괴리가 존재함을 시사한다"고 꼬집었다.
이처럼 차별 시스템이 여전히 공고한 상황에서 최근에는 온라인 성폭력까지 더해지면서 직장 내 젠더폭력에 대한 위협이 커지고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이에 따라 전문가들은 변화하는 폭력 양상에 대응할 수 있는 제도적 기반을 마련해야 한다고 조언한다.
여수진 민주노총 서울본부 노동법률지원센터 노무사는 "노동자의 안전을 책임져야 할 주체는 사용자로 이들에게 적극적으로 근로자를 보호할 의무를 부여해야 한다"며 "현행 남녀고용평등법을 개정해 차별적 괴롭힘 발생 시 조치해야 할 사용자 의무를 부여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허민숙 국회 입법조사처 입법조사관은 "직장 내 젠더폭력 문제의 본질은 '인식'이 아니라 '권력'과 '구조'에 있고, 폭력은 진화하고 있지만 제도는 여전히 이를 따라가지 못하고 있다"며 "남녀고용평등법에 '성차별적 괴롭힘' 금지 조항을 신설해 새로운 유형의 괴롭힘을 법적으로 정의하고, 또 피해자가 신뢰할 수 있는 외부 구제 시스템을 구축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welcome@fnnews.com 장유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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