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지털시대, 피부 진단은 어떻게 바뀌고 있을까?
파이낸셜뉴스
2025.11.15 08:00
수정 : 2025.11.15 08:00기사원문
[파이낸셜뉴스] "저도 연예인처럼 투명한 피부를 가질 수 있을까요?"
진료실에서 환자들이 스마트폰으로 보여주는 연예인 사진을 보며 가장 먼저 드는 생각은 '그 피부가 어떻게 만들어졌는지 정확히 진단할 수 있다면 답을 줄 수 있을 텐데'라는 것이다.
시장에는 수천 가지 화장품과 시술이 넘쳐난다.
비타민C 세럼부터 레티놀 크림, 레이저 토닝부터 보톡스까지 솔루션은 차고 넘친다. 하지만 정작 내 피부에 지금 필요한 것이 무엇인지, 어떤 순서로 접근해야 하는지 정확히 아는 사람은 드물다. 이것이 바로 피부 진단이 중요한 이유다. 피부 진단은 단순히 현재 상태를 파악하는 것이 아니라, 원하는 목표까지의 로드맵을 그리는 과정이다.
예를 들어 누군가 "피부가 칙칙해요"라고 말할 때, 그 원인은 수십 가지일 수 있다. 각질 축적일 수도, 멜라닌 색소침착일 수도, 모세혈관 확장일 수도, 단순한 수분 부족일 수도 있다. 원인이 다르면 치료법도 완전히 달라진다. 정확한 진단 없이 유행하는 제품을 사용하거나 지인이 좋다는 시술을 받는 것은 목적지도 모르고 출발하는 것과 같다.
피부 진단이 어려운 진짜 이유
그렇다면 피부 진단은 왜 어려운 것일까. 피부는 표피, 진피, 피하지방층까지 3차원 구조로 이루어져 있다. 거울로 보이는 것은 각질층을 포함한 표피의 가장 바깥 부분에 불과하다. 진피층의 콜라겐 변성, 심층부 멜라닌 축적, 모세혈관 분포 같은 정보는 표면만 봐서는 알 수 없다. 더욱이 피부는 살아있는 장기여서 날씨, 스트레스, 수면, 생리주기에 따라 끊임없이 변한다.
전문가인 피부과 의사조차 육안 관찰만으로는 한계가 있다. 그래서 우드램프로 색소 깊이를 확인하고, 피부경으로 모공과 혈관을 확대해서 보며, 필요시 조직검사까지 한다. 그러나 이런 검사들도 주관적 해석이 개입되고, 의사의 경험에 따라 결과가 달라질 수 있다.
이러한 한계를 극복하기 위해 2000년대 초반 미국 피부과 의사 레슬리 바우만(Leslie Baumann) 박사가 개발한 'Skin Type Solution'은 피부 진단의 이정표가 되었다. 바우만 박사는 단순히 건성, 지성, 복합성으로 나누던 기존 방식을 넘어, 유분, 민감도, 색소, 탄력 네 가지 축으로 피부를 분석해 16가지 피부 타입을 정의했다. 이 설문지는 2005년부터 2014년까지 마이애미 대학교에서 수천 명의 환자를 대상으로 검증되었고, 세보미터, 분광광도계 같은 객관적 측정 장비로 정확성이 입증되었다.
바우만 시스템의 혁신은 단순한 피부 타입 분류를 넘어, 각 타입별로 어떤 성분이 필요하고 어떤 제품을 피해야 하는지까지 구체적인 가이드를 제시했다는 점이다. 20년이 지난 지금도 전 세계 피부과에서 이 시스템을 사용하는 이유는, 복잡한 피부 상태를 체계적으로 분석하고 맞춤형 솔루션을 제시하는 명확한 프레임워크를 제공하기 때문이다.
그런데 아이러니하게도, 수십억 달러의 자본과 최첨단 AI 기술이 쏟아지는 2025년 현재에도, 20년 전 바우만 박사가 간단한 설문지로 구현했던 것, 즉 진단에서 구체적 실행 방안까지 연결되는 통합 시스템을 완전히 구현한 AI 도구는 많지 않다. 왜 그럴까?
AI 시대, 피부 진단의 현주소와 한계
최근 AI 기반 피부 분석 기술은 급속도로 발전하고 있다. 하우트AI는 300만 장 이상의 얼굴 이미지로 학습한 알고리즘으로 150개 이상의 피부 바이오마커를 평가하며 98%의 진단 정확도를 자랑한다. 로레알의 '스킨 지니어스'는 1만 장 이상의 임상 등급 이미지와 비교하여 95%의 정확도로 8가지 피부 속성을 분석한다. 스탠퍼드 의과대학 연구에 따르면, AI의 도움을 받은 의료진은 피부암 진단 민감도가 75%에서 81.1%로, 특이도가 81.5%에서 86.1%로 향상되었다.
이러한 도구들의 장점은 분명하다. 병원 방문 없이 집에서 언제든 피부 상태를 확인할 수 있고, 시간에 따른 변화를 추적할 수 있다. 객관적이고 정량화된 데이터를 제공한다는 점도 큰 장점이다.
그러나 문제는 이러한 기술의 대부분이 질병 진단이나 피부 상태의 정량화에만 집중한다는 점이다. "당신의 주름 점수는 70점입니다", "색소침착 위험도가 높습니다"라는 정보를 준다. 하지만 정작 필요한 것은 "그래서 무엇을 어떤 순서로 해야 하는가"라는 실행 가능한 로드맵이다. 바우만 시스템이 20년 넘게 사랑받는 이유는, 진단 결과를 구체적인 제품 선택과 사용 순서로 연결했기 때문이다.
또한 현재 AI 도구들은 몇 가지 근본적인 한계를 안고 있다. 첫째, 촬영 조건에 매우 민감하다. 조명, 각도, 거리가 조금만 바뀌어도 결과가 달라진다. 둘째, 학습 데이터의 편향 문제가 있다. 폭스체이스 암센터 연구팀은 기존 AI 모델이 주로 밝은 피부톤 데이터로 학습되어 어두운 피부톤에서 멜라노마 진단 정확도가 현저히 떨어진다는 문제를 지적했다. 셋째, 피부는 이미지만으로 판단할 수 없다. 가려움증 강도, 스트레스와의 연관성, 화장품 사용 후 따가움 같은 주관적 증상은 사진에 나타나지 않는다. 넷째, 대부분의 AI 피부 분석 앱은 의료기기 승인을 받지 않아 질병 진단을 할 수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피부를 측정하고 데이터화하려는 노력은 계속되고 있다. 영국 국민보건서비스는 DERM이라는 AI 도구를 3년간 시범 운영하며, 스마트폰으로 촬영한 피부 병변을 AI가 분류하고 긴급 진료가 필요한 경우를 선별하는 시스템을 테스트하고 있다. 리비브는 6천만 명 이상의 사용자와 1,500만 장의 셀카 데이터를 기반으로, 200개 이상의 얼굴 및 피부 건강 지표를 평가하는 기술을 개발했다.
더 흥미로운 것은 생성형 AI의 등장이다. 하우트AI의 SkinGPT 기술은 특정 화장품을 사용했을 때 시간 경과에 따른 피부 변화를 시뮬레이션할 수 있다. 이는 단순히 현재 상태를 진단하는 것을 넘어, "이 제품을 3개월 쓰면 이렇게 될 것입니다"라는 예측까지 가능하게 한다. 바로 앞서 말한 'how'에 대한 답에 한 걸음 더 다가가는 기술이다.
피부과 의사로서 나는 이러한 기술의 발전을 환영한다. AI는 방대한 데이터를 빠르게 처리하고 일관된 기준을 제공하는 데 탁월하다. 하지만 현재 대부분의 AI 도구는 '진단'에만 머물러 있고, '처방'까지 연결되지 못한다. 미래의 피부 진단 시스템은 AI의 정량화 능력과 전문가의 임상 경험, 그리고 바우만 같은 체계적 프레임워크가 결합되어야 한다.
소비자들도 현명해져야 한다. AI 앱이 제시하는 점수와 그래프는 참고 자료일 뿐이다. 새로 생긴 점, 변화하는 점, 지속되는 증상이 있다면 반드시 병원을 방문해야 한다. 또한 AI나 유명인이 추천하는 제품이 모두에게 맞는 것은 아니다.
결국 디지털 시대의 피부 진단은 기술과 인간의 지혜, 그리고 검증된 체계가 조화를 이룰 때 완성될 것이다. 기술은 도구일 뿐, 진정한 해답은 정확한 진단과 개별화된 솔루션을 연결하는 통찰에서 나온다.
/전은영 닥터은빛원장
pompom@fnnews.com 정명진 의학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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