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이라서 죄송합니다

파이낸셜뉴스       2025.11.17 18:49   수정 : 2025.11.17 18:49기사원문

'문송합니다.' '문과라서 죄송합니다'라는 뜻의 이 표현은 취업난 속에서 문과생들의 자조를 담고 있다. 하지만 최근 흐름을 보면 이제는 '문송합니다'를 넘어 '인송합니다', 즉 '인간이라서 죄송합니다'라는 표현이 나와도 이상하지 않을 만큼 분위기가 달라졌다.

인공지능(AI)이 인간의 일자리를 대체할 것이라는 우려가 단순한 전망을 넘어 현실로 다가오고 있기 때문이다.

AI 기술을 앞세운 미국 빅테크 기업들은 생산성과 효율성 강화를 명분으로 대규모 구조조정을 단행하고 있다. 우리나라도 예외는 아니다. 크래프톤은 창사 이래 최초로 올해 1·4~3·4분기 누적 영업이익이 1조원을 넘겼음에도 전 직원 대상 '자발적 퇴사 선택 프로그램'을 처음 진행한다. SK텔레콤도 AI 사내회사까지 만들었지만 이곳 구성원을 대상으로 '특별 퇴직 프로그램'을 공지했다.

AI의 인력 대체 사례는 행사장에서도 직접 볼 수 있었다. 최근 참석한 인텔 기자간담회에는 외국인 임원이 왔음에도 별도 통역사가 없었다. 그 대신 AI 언어 기업 플리토의 실시간 번역이 화면에 제공됐는데, 버벅임도 별로 없고 맥락을 이해하는 데 문제가 없었다. 이 정도면 기업들이 더 이상 통역 인력을 찾지 않고 AI 도구로 대체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해외 전문가들도 비슷한 전망을 내놓는다. 중국 AI 기업 딥시크의 첸 델리 연구원은 최근 공개석상에서 AI가 향후 10~20년 안에 대부분의 일자리를 없앨 수 있다고 말했다. 그는 "테크 기업들이 최소한 인류의 수호자 역할을 해야 하며, 인간의 안전을 보호하고 사회 질서를 재편하는 데 기여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렇다면 지금 필요한 대응은 무엇일까. AI 확산을 막는 것은 불가능하다. 중요한 것은 AI 시대에 적응할 수 있는 사회적 인프라를 구축하는 일이다. 정부는 직무 재설계, 중장년 재교육, AI 역량 강화 프로그램, 실업 충격을 완화할 안전망 등 구조적 대비에 나서야 한다. 기업 역시 비용절감만 목표로 삼을 것이 아니라 구성원이 AI 도구와 함께 성장할 수 있는 시스템을 마련해야 한다.

AI가 일자리를 줄일 것이라는 우려는 근거 있는 현실이다. 그러나 기술의 방향은 이미 정해졌다.
문제는 기술의 속도가 아니라 인간의 적응 속도다. AI가 인간을 대체하는 미래가 아니라 인간과 AI가 공존하며 역할을 재정의하는 미래를 준비한다면 일자리 충격은 어느 정도 완화될 수 있다. 지금 필요한 것은 두려움이 아니라 체계적인 대비다.

solidkjy@fn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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