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나무 비계’가 키운 홍콩 화재… 27시간 만에 불길 잡혔다

파이낸셜뉴스       2025.11.27 18:08   수정 : 2025.11.27 21:22기사원문
건물 외벽 보수 공사 중 발화
대나무 비계·우레탄폼 타고
8개동 중 7개동 빠르게 번져
사망·실종자 수백명 달해



홍콩 최악의 화재 참사를 부른 것은 안전 불감증과 시대에 뒤떨어진 허술한 안전 규정들이었다.

홍콩 북부 타이포 지역의 31층 초고층 아파트 단지 '웡 푹 코트'에서 발생한 대형 화재는 노후 건물 구조와 대나무 비계, 가연성 보호재 등이 '불쏘시개'로 작용했다. 홍콩 당국은 27일 오후 3시 현재 사망 55명, 실종 279명, 부상자 76명이라고 확인했다.

위중 환자는 45명인 것으로 알려졌다. 실종자가 많아 사망자는 크게 늘어날 것으로 보인다.

홍콩 행정수반인 존 리 행정장관은 이날 오후 6시(현지시간) 언론 브리핑에서 "홍콩 신계지역 타이푸 '웡 푹 코트'에서 불이 난 7개 동 건물의 불길이 전부 통제됐다"고 말했다. 화재 발생 27시간 만이다.

■65세 이상 고령층 많아 희생자 급증

'웡 푹 코트'는 1983년 준공된 노후 단지로 총 1984가구 약 4600명 이상이 거주하는 대형 공공분양 아파트다. 가구 면적은 48∼54㎡로 작아 인구밀도가 매우 높다. 2021년 인구조사에 따르면 주민의 36.6%가 65세 이상으로 고령층 비중도 홍콩 평균을 훨씬 웃돈다. 불길이 단시간에 여러 동으로 확산되면서 고령자·저층 밀집 거주자들의 이동 속도가 느려 피해를 키웠다.

첫 발화 지점에서 튀어 나온 대나무 비계 조각과 잡동사니가 강풍을 타고 인근 동으로 날아가며 전체 8개 동 중 7개 동으로 화염이 번졌다. 건물 외벽 보수공사 과정에서 설치된 비계 구조가 화재 확산에 핵심적인 원인이 됐다. 홍콩에서는 올 들어 최소 3건의 대나무 비계 화재가 보고됐다.

비계 주변에 설치된 보호망·필름·방수포·스티로폼 소재도 난연 기준을 충족하지 못해 불길을 빠르게 전파시킨 원인으로 꼽혔다. 창틀 보수 과정에서 사용된 우레탄폼도 불길을 수직·수평 방향으로 급속히 확산시켰던 것으로 알려졌다.

공사 과정에서 작업자의 흡연 문제를 지적하는 민원이 이미 여러 차례 제기됐었다고 현지 언론들은 전했다. 불에 잘 타는 자재가 외벽에 대거 노출된 상태에서 기본적인 '불씨 관리'가 제대로 이뤄지지 않은 것은 중대한 안전관리 실패라는 지적이다. 경찰은 이번 사건과 관련해 공사 관계자 3명을 과실치사 혐의로 체포했다.

■대나무 비계에 기준 미달 소재 사용

홍콩에서는 건물 공사에 대나무 비계를 널리 사용해 왔다. 대나무 비계는 설치가 빠르고 비용이 저렴한 반면 고온에서 쉽게 타고 부러지는 취약점이 있어 안전성 논란이 제기돼 왔다.

2019∼2024년 홍콩에서는 대나무 비계 관련 사망 사고가 22건 발생했다. 홍콩 정부는 올해 3월 공공공사의 50%에 금속 프레임 사용을 의무화했으나 민간 현장에는 여전히 대나무 비계가 남아 있다.

전날 홍콩 소방당국은 신고 11분 뒤인 오후 3시2분께 경보 3단계를 발령했고, 30여분 만에 4단계로 상향했다. 이후 오후 6시 넘어서 최고 등급인 5단계를 발령했다. 그러나 고층에 밀집 구조와 대나무 비계 낙하물 등으로 접근이 어려워 초기 진화에 난항을 겪었다.


■7일 입법원 선거 연기 검토

존 리 행정장관은 이번 화재에 대해 "대규모 참사"라고 표현하며 "곧 철저한 조사와 제도적 개선에 나설 것"이라고 밝혔다.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도 화재 진압과 사상자 및 손실 최소화를 위한 전력 대응을 촉구했다.

한편 내달 7일 홍콩 입법원선거(국회의원 총선거)가 예정된 가운데 대형 참사가 터지면서 정부는 선거 일정 연기를 검토하는 등 민심 달래기에 나섰다.

km@fnnews.com 김경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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