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잔금 지연' 軍에 눈물 흘리는 기업..8달간 100억원 미납

파이낸셜뉴스       2025.12.19 06:30   수정 : 2025.12.19 09:43기사원문
국방시설본부, 중소기업들에 준공금 미납
A사, 3개월간 2억7800만원 못받아.."정신적 고통"
시설단 "예산 불용 처리돼 어쩔 수 없다"고 설명
취재 시작되자 2억7800만원 곧바로 완납
부승찬 "국가 행정 미비, 기업에 떠넘겨선 안돼"

[파이낸셜뉴스]"정부가 기업의 돈을 이렇게 떼먹어도 되는 겁니까?"

국방부 경기북부시설단에서 사업관리를 진행하는 시공사 A사가 약 5억원 규모의 계약을 맺었지만 수개월간 잔금 2억7800억원을 지급 받지 못했던 것으로 파악됐다. 시설단은 "예산이 배정되지 않았다"며 기업에 잔금 지급을 미뤘지만, 취재가 시작되자 곧바로 입금한 것으로 확인됐다. A사 관계자는 잔금을 지급 받지 못한 기간 동안 정신적 고통과 재정적 부담에 시달렸다고 토로했다.

19일 파이낸셜뉴스 취재를 종합하면, 군 관계자는 올해 7월 31일 준공을 마치고 대금을 지급했다고 A사에 밝혔지만 9월 16일까지 2억7800만원의 준공금을 지급받지 못했다. 준공금 총 4억7640만원 중 절반 이상을 1달 반 가량 지급받지 못한 것이다. '국가를 당사자로 하는 계약에 관한 법률(국가계약법) 시행령' 제58조에 따르면 '계약 상대자의 청구를 받은 날부터 5일 이내 (계약 대가를) 지급해야 한다'고 돼 있다. 군이 이를 지키지 않은 것이다.

예산 없다더니..취재 시작 5일만에 대금 지급한 軍
A사는 국방부 경기북부시설단 제2건설사업과에서 사업관리를 진행하는 공사 계약을 맺고 2023년 11월 16일 착공을 시작했다. 본래 공기는 2024년 5월 13일까지로 약 7개월만에 공사가 마무리될 예정이었지만 14개월가량 공기가 연장된 끝에 2025월 7월 31일 준공을 마쳤다.

시설단은 A기업에 준공금을 지급하지 못한 것에 대해 "예산이 없다"고 설명한 것으로 알려졌다. 준공금이 2024년 예산으로 배정됐지만, 2025년까지 연장돼 예산이 불용 처리됐기 때문이다. A사 관계자에 따르면, 시설단은 2026년도 예산이 새로 편성될 때까지 준공금을 지급하지 못할 수도 있다고 알렸다. A사 관계자는 준공금을 지급받지 못한 여파로 피해와 피로가 누적되고 있었던 만큼 민원 제기와 언론 제보를 결심했다고 전했다.

그러나 취재가 시작되자 시설단은 A기업에 곧바로 준공금을 지급한 것으로 확인됐다. A사 관계자가 9월 5일 민원을 제기하고, 파이낸셜뉴스가 9월 12일 국회 국방위원회 소속 부승찬 더불어민주당 의원실을 통해 잔금 미지급 사유 등을 질의한 직후인 9월 17일 잔금이 지급됐다. A사 관계자는 "법에 따라 5일 내에 당연히 지급받아야 하는 금액을 왜 이렇게 까지 나서서 받아야하는 지 모르겠다"고 토로했다.

한편 시설단은 "본 사업은 계약기간이 다른 인접 공사와 현장 간섭으로 공사기간이 20개월 지연돼 2025년 7월 준공됐다"며 "준공 이후 잔금은 9월 17일부로 지급됐다"고 설명했다.

"시공 강요 등 부조리" 권익위 제소
시공사의 현장대리인이었던 A사 관계자는 시설단과의 작업 과정에서도 온갖 갑질에 시달렸다고 토로했다. 주먹구구식 운영으로 현장 업체들을 손해를 보는 구조에 놓일 수 밖에 없다는 주장이다. 업계에서는 특히 현실과 동떨어진 계약금액과 설계 도서를 시공사에 강요한다는 불만이 나온다. A기업의 공기가 6차례 연장된 것도 이와 관련이 있다.

A사가 해당 설계 도서와 배정된 예산을 맞춰 시공하는 것이 불가능하다고 해도 군은 시공을 강요했다고 호소했다. A사 관계자는 "설계도서에 적용된 항목에 노무비가 반영돼 있지 않는 등 증액은 불가피했는데 군은 이를 받아들이지 않고 강행했다"고 지적했다. 이어 "심지어 설계 도서의 증액 부분을 보고받자 현장대리인과 단 한마디의 소통도 없이 공사 중지를 시켰다"며 "갑질이자 부조리"라고 주장했다. 군은 그 과정에서 충분한 숙의 없이 주먹구구식으로 심의를 부결시켰으며 부결된 심의가 마치 통과될 것처럼 거짓말로 속이며 공사를 진행시켰다는 것이 그의 증언이다. A기업 관계자는 설계 오류를 논의하는 과정에서 폭언·폭설이 있었다는 점 등을 들어 국민권익위원회에 제소한 상태다.

8개월간 98억원 지급 지연한 軍
경기북부시설단을 포함해 국방시설본부에 준공금을 받지 못한 기업은 A기업뿐이 아니다. 업계 사이에서 군이 중소기업들에 '갑질'을 행사한다는 지적이 나오는 배경이다.

부승찬 의원이 국방시설본부에 받은 자료에 따르면, 계약금 지급이 지연된 사례는 2025년 1월부터 8월까지 53건에 달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지연됐던 금액은 총 98억원 규모에 달한다. 1건에 약 1억8500만원의 대금 지급이 지연된 셈이다.

A사와 같이 '예산 재배정 관련 행정절차 지연'으로 대금 지급이 늦어진 사례도 같은 기간 19건에 달했다.
정부의 단순 행정적 사유로 기업의 생존이 엇갈리는 것은 잘못됐다는 지적이 나온다.

최근 건설 경기 위축으로 기업들의 위기가 현실화되고 있는데 정부가 보탬은커녕 걸림돌이 되고 있다는 비판도 제기된다. 부승찬 의원은 "안 그래도 어려운 건설 경기 속에서 국가기관이 행정 미비와 예산 관리 실패의 부담을 기업에 떠넘겨서는 안 될 것"이라며 "행정 미비, 예산 관리 실패의 근본적 원인을 찾아 개선해야 한다"고 말했다.

haeram@fnnews.com 이해람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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