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 앞에서 10분 만에 실종된 아이…'암 투병' 엄마는 아들 찾아 50년
파이낸셜뉴스
2025.12.22 14:29
수정 : 2025.12.22 15:49기사원문
[파이낸셜뉴스] "둘째에게 젖을 먹이고 10분쯤 지나서 집 앞으로 나가 보니 아이가 사라져 있었습니다. 이렇게 50년 넘게 못 보게 될 줄은 상상도 못 했어요."
전길자씨는 아들 이정훈씨(현재 나이 55·사진)에 대한 마지막 기억을 떠올리며 이같이 말했다. 전씨는 당시보다 훨씬 쇠약해졌지만 실종된 아들을 찾겠다는 마음만큼은 변하지 않았다.
전씨는 "정훈이의 꿈이 군인이어서 장화를 신고 경례를 하며 장난치던 모습이 자주 떠오른다"며 "엄마로서 아들을 제대로 챙기지 못한 것 같아 마음이 아프고 너무 보고 싶다"고 말했다.
이씨는 1973년 3월 18일 서울 서대문구 대현동 자택 앞에서 실종됐다. 휴일을 맞아 집 앞에서 친구들과 놀겠다고 조르던 아들을 허락한 것이 화근이었다. 생후 100일도 채 되지 않은 둘째에게 젖을 먹이던 약 10분 사이 이씨는 자취를 감췄다.
전 는 곧바로 아들을 찾아 나섰지만 행방은 묘연했다. 함께 놀던 아이들이나 이웃 누구도 정훈 씨의 행방을 알지 못했다. 전 씨는 사비를 들여 전단지를 배포하고, 지인 300여 명과 함께 청와대에 탄원서를 제출하는 등 아들을 찾는 데 모든 것을 쏟았다. 최소한의 생계만 유지한 채 전국을 돌며 수소문했지만 단서는 나오지 않았다.
53년이 지난 현재까지도 정훈 씨의 생사나 행방은 확인되지 않고 있다. 단순 실종인지, 유괴·납치 등 범죄 연루 여부조차 밝혀지지 않았다. 실종 당시 정훈 씨는 빨간색 스웨터에 보라색 털 조끼, 남색 털 바지를 입고 흰 고무신을 신은 상태였다. 둥글고 큰 쌍꺼풀이 있으며, 왼쪽 눈 쌍꺼풀 사이에 작은 흉터 3개와 발뒤꿈치의 큰 흉터가 특징이다.
전씨는 "정훈이는 경북 상주 시어머니 댁에서 지내다 둘째의 100일 잔치를 맞아 서울에 올라온 상태였다"며 "그렇게 갑자기 사라져 다시는 못 보게 될 줄 누가 알았겠느냐"고 말했다. 이어 "집 앞 가게 주인에게도 잘 봐달라고 부탁했는데 순식간에 사라졌다"고 덧붙였다.
아들을 찾기 위해 논과 밭, 집까지 처분하면서 가정 형편은 급격히 악화됐다. 전씨는 1992년 암 진단을 받는 등 건강도 나빠졌고, 현재까지 네 차례에 걸쳐 암 수술을 받았다. 그럼에도 전 씨는 아들을 찾을 수 있다는 희망의 끈을 놓지 않고 있다.
전씨는 "수술을 위해 마취에 들어갈 때마다 정훈이 얼굴이 떠올랐다"며 "이렇게 살아 있는 걸 보면 어디선가 정훈이가 도와준 게 아닌가 싶다"고 말했다. 이어 "정훈이를 찾아 따뜻한 밥 한 끼를 같이 먹는 게 소원"이라며 "정훈이는 된장찌개와 김을 참 좋아했다"고 회상했다.
전씨는 실종자 가족으로서의 바람도 전했다. 그는 "실종된 가족을 찾기 위해 가족이 할 수 있는 일은 극히 제한적"이라며 "해외 입양 아동 관련 정보라도 확인할 수 있게 된다면, 잃어버린 가족을 찾는 데 큰 도움이 될 것"이라고 강조했다.
마지막으로 그는 "정훈이가 살아 있다면 이제 중년에 접어들 나이"라며 "죽기 전에 정훈이를 만나 엄마가 널 버린 게 아니라고 꼭 말해주고 싶다"고 말했다.
banaffle@fnnews.com 윤홍집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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