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수인 듯 인수 아닌" 엔비디아의 그록 인수…MS-오픈AI '우회적 결합' 판박이
파이낸셜뉴스
2025.12.27 05:11
수정 : 2025.12.27 05:11기사원문
[파이낸셜뉴스]
엔비디아가 인공지능(AI) 칩 스타트업인 그록을 사실상 인수했다.
전문가들은 엔비디아가 반독점 규제를 피하기 위해 공식적인 기업 인수가 아니라 그록의 핵심자산과 기술 인력을 확보하는 편법을 동원한 것으로 보고 있다.
인수했나 안 했나
26일(현지시간) CNBC 등 외신에 따르면 엔비디아는 구글 TPU(텐서 처리장치) 설계자 출신인 조너선 로스가 창업한 AI 칩 스타트업 그록을 이미 200억달러(약 28조8000억원)에 사실상 인수했다.
관련 보도는 이미 24일에 나왔다.
그러나 엔비디아는 그록 인수 사실을 발표하지 않고 있다.
대신 그록이 자사 블로그에 올린 합의 내용만을 확인했을 뿐이다.
그록은 90자짜리 짧은 성명에서 엔비디아와 비독점적인 기술 라이선스 계약과 핵심 인력 채용에 합의했다고 밝혔다.
엔비디아는 그록에 현금 200억달러를 투자했다. 멜라노스 인수에 투입한 70억달러를 압도하는 역대 최대 인수 규모다.
엔비디아는 대신 그록 창업자이자 최고경영자(CEO)인 로스와 사장 서니 마드라를 비롯해 주요 엔지니어들을 그록에서 빼내 자사에 합류시켰다.
그록은 사이먼 에드워즈 최고재무책임자(CFO)가 새 CEO로 승진하면서 독립 법인으로 남는다.
필요한 건 기술과 인력
엔비디아의 이런 편법은 규제 당국의 반대로 M&A가 무산되는 위험을 피하는 동시에 실익을 챙기기 위한 것으로 보인다.
이미 마이크로소프트(MS), 구글, 아마존 등이 이런 편법을 활용하고 있다. MS가 오픈AI에 대규모로 투자하고, 회사 방향도 좌우하지만 공식적으로 별개 회사로 남아 있는 것과 비슷하다.
엔비디아도 지난 9월 이런 '우회적 결합'을 써먹은 적이 있다. 인패브리카에 9억달러 넘게 투자했지만 회사를 인수하는 대신 CEO 로찬 산카르와 일부 엔지니어들을 엔비디아로 데려왔다. 또 회사 기술을 쓸 수 있는 기술 면허 계약도 했다.
공식적으로는 인수하지 않았지만 사실상 인수나 다름없이 기술과 인력을 활용하는 것이다.
엔비디아는 이번에 그록에 200억달러를 투자하면서 그록의 기술이 구글이나 아마존 같은 경쟁사에 들어가는 것을 사실상 차단했다.
추론 시장 우위 격차 확대
그록은 현재 ‘학습’에 중점을 두고 있는 AI 모델들이 ‘추론’으로 옮겨 갈 때 핵심적인 하드웨어를 공급할 것으로 관심을 모으고 있다.
그록의 LPU(언어 처리장치) 칩은 ‘추론’ 영역에서 AI가 고속으로 과제를 처리할 수 있도록 돕는다.
엔비디아가 ‘학습’ 시장은 장악하고 있지만 ‘추론’ 전용 칩에서 강한 도전을 받고 있는 가운데 이번 기술 확보는 경쟁사와 격차를 벌리;는 데 도움이 될 전망이다.
번스타인, 뱅크오브아메리카(BofA) 등 주요 기관 투자가들은 엔비디아의 ‘인수인 듯 인수 아닌’ 전략이 비싸지만 매우 훌륭하다고 후한 점수를 주고 있다.
엔비디아 주가는 이날 오후 장에서 1.8% 상승해 191.90달러로 올랐다.
dympna@fnnews.com 송경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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