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급 더 줄게" 中, 베트남 숙련공 빼가… 韓기업 멍든다
파이낸셜뉴스
2025.12.28 18:21
수정 : 2025.12.28 18:21기사원문
中기업 세제혜택 많아 상대적 여유
삼성 협력사 출신이면 바로 계약
韓기업은 ‘현지 인력 이탈’ 심각
박닌 등 북부지역 ‘삼성 벨트’ 옛말
베트남 북부지역에서 공장을 운영 중인 한 한국 기업 관계자가 최근 중국 기업들의 공격적인 현지인력 채용 공세에 대해 이같이 말하며 걱정 가득한 눈빛을 지었다. 베트남 고용시장에서는 성과급이 지급되는 뗏 전후가 대표적인 이직 시기로 꼽힌다.
국내 기업들은 이 시기를 가장 걱정한다. 최근 중국 기업들이 신규 투자를 늘리며 현장 라인 직원부터 숙련 엔지니어까지 전방위적인 인재 스카우트에 나서고 있기 때문이다.
지난 26일 기자가 찾은 베트남 북부 대표 공업지대인 박닌성 꿰보 공단. 중국 전자부품사 고어텍의 박닌 제조기지 정문 앞에는 채용·면접 전용 공간이 별도로 마련돼 있었다. 공단 관계자는 "뗏을 전후해 하루에도 수십 명이 이곳에서 즉석 면접을 보고 채용 여부가 결정된다"며 "한국 기업 출신 인력을 가장 선호하는 편"이라고 말했다.
고어텍 정문에는 '월 소득 1000만~1400만동(약 55만~77만원), 기숙사 제공, 교통 지원, 각종 수당 보장' 등의 처우 조건을 적은 채용 플래카드가 내걸려 있었다. 맞은편 중국 전자부품사 ZSNOW 역시 기본급 544만동(약 30만원)에 직책수당과 각종 수당, 사회보험·건강보험·실업보험 가입 조건 등을 회사 입구에 내세우고 있었다.
기자가 플래카드를 촬영하자 해당 기업 관계자가 나와 제지하며 "현재는 개별적으로 연봉을 제시하고 있다"며 "한국 기업들이 이를 보고 처우를 맞추는 사례가 있어 대외비로 관리하고 있다"고 경계했다.
현지 업계 관계자는 "중국 기업들은 교육과 시행착오를 줄이기 위해 이미 검증된 인력을 선호한다"며 "이력서에 삼성 협력사 경력이 있으면 인터뷰 없이 바로 조건 제시를 하는 경우도 있다"고 전했다. 최근에는 연봉 인상뿐 아니라 연봉에 맞먹는 성과급, 중국 본사 연수·근무 기회까지 제시하며 인재 확보에 나서는 사례도 늘고 있다.
■북부 '삼성 벨트' 흔드는 중국 자본
중국 기업들의 이같은 공세 배경에는 미·중 갈등에 따른 생산기지 이전이 있다. 중국 내 임금 상승과 환경 규제 강화로 중저가 제조업의 경쟁력이 약화되자, 중국은 생산 리스크 분산 차원에서 공급망을 해외로 이전하고 있다. 중국과 인접해 기존 공급망을 유지하기 쉬운 베트남은 비교적 낮은 인건비와 젊은 노동력을 바탕으로 대체 생산기지로 부상했다. 여기에 베트남이 다수의 자유무역협정(FTA)에 참여하며 미·유럽 시장 접근성이 높아진 점도 관세 리스크를 줄이려는 중국 기업들에 매력 요인으로 작용하고 있다.
불과 몇 년 전까지만 해도 삼성전자를 비롯한 한국 기업이 대거 입주해 있던 박닌성의 산업 지형은 빠르게 바뀌고 있다. 베트남 내 외국인직접투자(FDI) 1위 지역인 박닌성은 신규 프로젝트 수 기준으로 중국이 올해 10월까지 누적 1위를 유지했다. 실제로 산업단지 곳곳에는 중국계 전자·부품·배터리 공장이 새로 들어섰고, 시내에는 이미 중국어로 된 상가 간판과 임대 문의 플래카드로 바뀐 지 꽤 됐다.
박닌뿐 아니라 삼성전자의 핵심 생산기지가 위치한 타이응우옌성과 박장성 등 이른바 '삼성 벨트'에서도 비슷한 변화가 시작되고 있다.
삼성전자가 이 지역에서 전 세계 스마트폰의 절반 가량을 생산하고 있어 삼성 협력사들이 대거 밀집해 있다. 한 업계 관계자는 "삼성전자의 협력사 일부는 이미 인력 확보에 빨간불이 켜진 것으로 알고 있다"면서 "유출이 더 이어질 경우 정상적인 공장 운영이 어려워질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고 말했다.
■처우 경쟁 넘어 미래 제시해야
업계에서는 중국 기업과의 처우 경쟁이 장기화될 경우 베트남 진출의 핵심 명분이었던 비용 경쟁력을 잃어버릴 수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현지 진출 중견기업 관계자는 "인건비가 빠르게 올라가면 생산 거점으로서 베트남의 전략적 의미를 재점검 해야 하는 시점이 올 수 있다"고 말했다.
이같은 상황에 대해 주베트남 한국대사관과 주베트남 한국상공인연합회(코참)는 심각하게 우려하고 있다. 그러나 베트남 정부에 이런 상황에 대해 지속적으로 전달하고 있지만, 뚜렷한 해법은 없는 게 현실이다. 베트남 정부로서도 외국인 투자 확대가 최우선 과제인 만큼 특정 국가 기업의 인력 스카우트를 제한하기는 현실적으로 어렵다는 설명이다. 이에 현지 산업계에서는 단순한 처우 경쟁을 넘어 현지 직원에 대한 투자와 성장 경로 제시 등 인사 전략 전반에 대한 재검토가 필요하다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현지 산업계에서는 인력 유출이 구조적 현상으로 굳어질 가능성이 크다는 분석이 나온다. 정부나 경제단체 차원의 대응이 제한적인 만큼 기업 차원의 전략 전환이 불가피하다는 지적이다.
한 업계 관계자는 "최근 삼성전자에서 첫 베트남 국적 임원이 나온 것처럼 현지 직원도 노력하면 임원이 될 수 있다는 메시지를 줘야 한다"며 "단기 처우 경쟁을 넘어 교육과 커리어 패스를 제시하는 인사 전략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삼성전자 베트남법인은 지난 1일 응우옌황지앙 삼성전자베트남타이응우옌(SEVT) 부장을 상무로 승진시키며, 진출 17년 만에 첫 베트남 출신 임원을 배출한 바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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