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장강박 20년' 쓰레기 더미서 화재로 숨진 70대, '참전용사'였다
파이낸셜뉴스
2025.12.30 06:32
수정 : 2025.12.30 10:23기사원문
[파이낸셜뉴스] 울산 남구의 한 아파트에서 발생한 화재로 숨진 70대 주민이 베트남전 참전 국가유공자인 것으로 밝혀졌다.
성인 남성 키 높이까지 쌓인 쓰레기.. 7시간45분만에 완진
현장에 출동한 소방대원이 세대 현관문을 개방했을 때 집 안에는 쓰레기가 성인 남성 키 높이까지 쌓여 있었고, 내부 공간은 사실상 기능을 상실한 상태였던 것으로 전해졌다.
소방 당국은 이 쓰레기 더미를 정리하며 진화 작업을 벌인 끝에 약 7시간45분 만에 불을 완전히 껐다.
이곳에 살고 있던 A씨는 높이 쌓인 쓰레기 더미 위에서 심정지 상태로 발견돼 병원으로 옮겨졌으나 끝내 숨졌다.
이 아파트에서 20년 가까이 홀로 지내온 A씨는 월남전 참전 유공자로, 매달 정부로부터 월 45만원 수준의 참전명예수당을 받아왔다.
이웃 주민들에 의하면 A씨는 수년 전부터 집 안에 쓰레기와 폐가전, 옷가지 등을 쌓아두고 생활하는 등 저장강박증세를 보였다. 외출하고 돌아올 때마다 비닐봉지에 갖가지 쓰레기를 담아 들고 오는 모습이 반복적으로 목격된 것이다.
주민들 악취에 고통... 마땅히 조치할 법적 근거 없어
아파트 관리사무소 측이 과거 경비를 들여 한 차례 쓰레기를 모두 치우고 도배와 장판까지 새로 해줬지만 다시 쓰레기가 쌓이기 시작했다. A씨에게 정리를 요구하자 '법대로 하라'는 반응을 보인 것으로 전해졌다. 구청과 동 행정복지센터에서도 여러 차례 찾아와 정리를 권유했지만, A씨는 강하게 거부했다.
A씨가 쓰레기 집에서 생활하는 동안 본인은 물론 이웃들도 악취와 해충 등 고통에 시달려야 했지만, 현행 제도상 지자체가 제도적으로 강제 개입할 근거가 부족했다.
일부 지자체에는 저장강박 의심 가구를 지원·관리하는 조례가 마련돼 있으나, 이번 불이 난 남구에는 관련 제도적 근거가 없다.
또한 불이 난 아파트에는 각층에 옥내소화전 1개씩 설치돼 있고, 화재를 감지해 자동으로 물을 뿌려주는 스프링클러 시설은 갖추지 못한 상태였다.
소방 당국은 해당 아파트가 스프링클러 설치 의무 대상이 아니라고 설명했다. 이 아파트는 총 10층 규모로 현행 소방시설법하에서 준공됐다면 스프링클러 설치 대상이다. 하지만 1996년 사용 승인 당시에는 16층 미만 공동주택에 설치 의무가 없었다.
이후 법 개정을 통해 스프링클러 설치 의무가 단계적으로 확대됐으나, 개정 이전에 만들어진 아파트까지 이런 의무를 소급 적용하지 않아 노후 공동주택 상당수가 여전히 스프링클러 없이 방치돼 있다.
소방청이 지난 6월 공개한 '전국 노후 아파트 현황'에 따르면 준공 후 20년이 지난 전국 노후 아파트 9894곳 중 4460곳(45.1%)에 스프링클러 설비가 설치돼 있지 않다.
한편 경찰과 소방 당국은 정확한 화재 원인과 재산 피해 규모를 조사하고 있다.
gaa1003@fnnews.com 안가을 기자
※ 저작권자 ⓒ 파이낸셜뉴스, 무단전재-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