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독에는 수은이 약이었지만, 수은 때문에 죽기도 했다

파이낸셜뉴스       2026.01.10 06:00   수정 : 2026.01.10 06:00기사원문

[파이낸셜뉴스] 본초여담(本草餘談)은 한동하 한의사가 한의서에 기록된 다양한 치험례나 흥미롭고 유익한 기록들을 근거로 이야기 형식으로 재미있게 풀어쓴 글입니다. <편집자주>



옛날 어느 시골집에 갓난아이가 태어났다. 그런데 아이가 한 돌이 될 즈음에 갑자기 이상한 증상이 생겼다.

처음에는 엉덩이와 사타구니 주변에 붉은 반점이 생기더니, 며칠 지나지 않아 온몸으로 번져 마치 매화꽃이 흩어진 듯한 붉은 발진이 나타났다. 아이는 밤이면 열이 오르고, 잠을 제대로 이루지 못했으며, 젖을 빨다가도 자주 보채고 울었다.

더 큰 문제는 피부였다. 발진과 함께 군데군데 피부가 헐어서 궤양처럼 보였다. 발진이 난 부위는 헐면서 진물이 배어 나왔고, 심한 곳은 껍질이 벗겨진 듯 살결이 드러났다. 아이의 눈가와 입 주변에도 붉은 반점이 번지며, 눈곱이 끼고 눈을 자주 비볐다. 부모는 혹시 태열이나 옴, 단순한 피부병이려니 하여 몇 가지 한약 가루를 돼지기름에 버무려서 만든 연고를 발라 보았으나, 증상은 날로 심해졌다.

아이의 부모는 마을의 의원에게 진찰을 받고 나서 청천벽력같은 병명을 들었다. 의원은 “양매창(楊梅瘡)이요.”라고 했다. 그러나 아이의 부모가 깜짝 놀라면서 “아니 우리 부부는 양매창에 걸린 적이 없는데, 무슨 말이요?”하고 따졌다.

의원은 차분하게 “양매창은 반드시 몸에 뚜렷한 증상이 나타나는 것이 아니요. 어른의 양매창은 가볍게 지나가 겉으로 드러나지 않았을 수 있으나, 아이는 품부(稟賦)가 약해 태(胎) 속에서 이미 그 독을 받아 쉽게 증상이 드러날 수 있소.”라고 했다. 부모는 말을 잇지 못하고 서로 얼굴만 바라보았다.

양매창(楊梅瘡)이란 매독을 일컫는 병명이다. 매독균은 감염 초기 피부에 국소적인 병변을 형성한 뒤 림프계와 혈행을 따라 전신으로 퍼지며, 적절한 치료가 이루어지지 않으면 신경계, 심혈관계, 내장기관에 이르기까지 광범위한 장기 손상을 초래한다.

매독을 양매창이라고 부르는 데는 이유가 있었는데, 양매(楊梅)는 소귀나무 열매를 말하는데, 완숙하면 짙은 붉은색이나 자색을 띠면서 표면이 오톨도톨한 돌기로 덮여 있는 것이 마치 매독의 피부 증상과 비슷했기 때문이다.

양매창은 성접촉이 가장 중요한 전파 경로이며 성별과 사회적 배경에 관계없이 누구나 감염될 수 있는 질병이었다. 또한 임신한 산모가 매독에 감염된 경우, 매독균이 태반을 통해 태아에게 직접 전파될 수 있다. 이렇게 태어난 아이는 선천성 매독에 걸리게 된다.

마을의 의원은 “빨리 단사(丹砂)로 훈증하는 약을 써야 나을 수 있을 것이요.”라고 했다. 단사는 수은이 함유된 광물질 약재였다. 단사 훈증법은 단사를 가루내서 가열해서 나오는 연기를 쏘여 치료를 하는 것이다. 연기에는 수은이 함유되어 있었다.

수은은 강력한 살균작용과 부식 작용이 있어서 겉으로 보기에는 궤양이 마르고 종기가 줄어드는 듯한 효과를 보인다. 그래서 매독을 치료하는데 있어서 옛날 조선이나 중국뿐 아니라 중세 유럽에서도 매독 치료에 수은 연고를 바르거나, 수은 연기를 쐬게 하거나 심지어 수은을 복용시키는 방법까지 사용되었다.

그러나 이 치료법은 수은 자체가 독성을 띠고 있기 때문에 병보다 수은중독이 더 문제가 되었다. 소아에게는 그 독성이 훨씬 치명적이었다. 그래서 항간에 ‘양매창은 수은으로 치료되거나, 치료되지 않으면 수은으로 죽는다’는 말이 나돌 정도였다.

아이의 부모는 단사 훈증법이 어른도 견디기 힘든 독한 치료법이라는 것을 익히 알고 있었기 때문에 꺼려졌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의원이 “양매창에는 단사 훈증법이 유일한 치료법이요.”라고 하는 통에 어쩔 수 없이 치료를 맡겼다.

의원은 단사를 금속 단지에 넣고 아래에 불을 지펴서 연기를 냈다. 그리고 그 연기를 아이의 피부에 대고 쏘였다. 그런데 한참의 시간이 지나자 아이의 의식이 혼미해졌다. 그러나 의원은 훈증을 멈추고 아이의 엄마에게 젖을 물리도록 했지만 젖을 빨지 못했다. 하루 이틀 지나자 이제는 온몸의 살갗이 모두 벗겨졌다.

부모는 부랴부랴 다른 명의에게 진찰을 맡겼다. 명의는 자초지종을 듣고서는 “어쩌자고 이렇게 어린 아이에게 단사 훈증법을 썼단 말이요. 지금 당장 단사 단지를 버리고 훈증법을 멈추시요.”라고 소리쳤다.

그리고서는 약방에 있는 녹두와 황백(黃柏)을 곱게 가루 내 주면서 “이 가루를 아이의 이부자리에 두툼하게 해서 두루 깔고 그 위에 아이를 눕혀 재우도록 하시오. 그리고 틈나는 대로 금은화와 토복령, 감초 가루를 우물물을 한번 끓여서 식힌 백탕(白湯, 끓인 맹물)에 타서 먹이시오.”라고 했다.

녹두와 황백은 열독(熱毒)을 해독하는 대표적인 약재들이었다. 녹두는 성질이 차고 열독(熱毒)을 풀며, 해독하는 작용을 한다. 황백 또한 강력하게 열독을 풀어주는 약재이다.

복용약으로 처방한 금은화도 열독을 풀어 염증과 감염을 다스리는 약이었다. 토복령(청미래덩굴 뿌리)은 체내에 축적된 수은독을 풀어주고 습열과 염증을 제거해, 피부 궤양과 전신 증상을 가라앉히는 약초다. 그리고 감초도 해독제로도 많이 사용되었다. 금은화는 쓴맛이 강하지만 토복령과 감초는 맛이 달아서 아이가 잘 먹었다.

명의는 다시 아이의 피부 상처의 진물이 마르면 당귀고(當歸膏)를 바르도록 했다. 당귀고는 참기름에 생지황과 당귀를 달여 찌꺼기를 제거한 뒤 황랍과 백랍을 녹여 고약으로 만든 것으로 염증성 피부질환과 이로 인한 통증에 효과가 매우 좋았다.

다행스럽게 아이의 증상은 명의의 치료로 점차 회복이 되었다.

양매창(매독)은 성관계나 체액을 통해서 전염되는 질환으로 과거에는 치료법 부재와 위생 불량으로 인해 흔한 질병이었다. 한때 전 세계적으로 유행을 하기도 했지만, 항생제 개발과 공중 및 콘돔 사용 등 개인 위생법 덕분에 한때 거의 사라지는 듯 했다.

하지만 매독은 완전히 박멸되지 않고 있으며, 최근에는 위생 환경이 취약하거나 감시 체계가 약해진 개발도상국가 및 일부 선진국에서 다시 유행하고 있다는 보고가 이어지고 있어 주의를 요한다. 사라졌다고 여겼던 질병이 다시 회귀하는 것을 보면, 질병은 돌고 도는 것 같다.

오늘의 본초여담 이야기 출처


<설씨의안>〇 楊梅瘡, 近時名. 楊梅瘡乃天行濕毒, 有傳染;而患者有稟賦, 而患者受症在肝經, 故多在下焦發起. 治失其法, 多至蝕傷眼目, 腐爛腎莖, 拳攣肢節. 중략. 若槩用輕粉等劑, 多致不起. (양매창은 근래에 붙여진 이름이다. 양매창은 유행성 습독으로 전염성이 있으며, 걸리는 사람은 타고난 체질적 바탕이 있고, 병이 드는 경맥은 간경에 속하므로 대개 하초에서 먼저 발생한다. 치료 방법을 잘못 쓰면, 눈을 갉아 먹어 손상시키고, 음경이 썩어 문드러지며, 사지 관절이 굽어 오그라드는 지경에 이르기까지 한다. 중략. 만약 대충 가리지 않고 경분 같은 약을 쓰면, 대부분 사망에 이른다).

〇 一週嵗小兒染此, 誤薰銀硃之藥, 昏憒不乳, 遍身無皮. 余用菉豆, 黃栢末, 遍鋪於蓆, 令用睡臥;更用金銀花, 生甘草末, 白湯調服, 漸愈. 若瘡乾燥, 更用當歸膏;若誤用輕粉, 亦以前法解之. (한 돌 된 어린아이가 이 병에 걸렸는데, 잘못하여 수은이 들어있는 단사를 훈증하는 약을 써서 의식이 혼미해지고 젖을 빨지 못했으며, 온몸에 살갗이 벗겨진 상태가 되었다. 내가 녹두와 황백 가루를 써서 자리에 두루 깔고 그 위에 아이를 눕혀 재우게 하였으며, 또 금은화와 생감초 가루를 백탕에 타서 먹이니, 점차 나아졌다. 만약 상처가 마르고 건조해지면, 당귀고를 다시 썼고, 만일 경분을 잘못 쓴 경우라도 역시 앞의 방법으로 풀어낼 수 있다.)

<경악전서>神效當歸膏. 治一切發背瘡瘍, 湯火疼痛等症, 去腐肉, 生新肉, 其效如神. 중략. 麻油, 六兩, 生地黃ㆍ當歸ㆍ黃蠟, 各二兩, 白蠟, 當減半. 上先將地黃·當歸各一兩, 入油煎黑, 去柤, 又將二味, 各入一兩, 煎至微焦, 復去滓, 乃入蠟溶化, 候冷, 攪勻卽成膏矣, 用塗患處, 以紙蓋之. (신효당귀고. 모든 발배창과 창양, 탕화로 인한 통증 등을 치료하는 데 쓰이는 방법으로, 썩은 살을 제거하고 새 살이 자라게 하는 효과가 매우 뛰어나다. 중략. 재료는 참기름 여섯 냥, 생지황과 당귀, 황랍을 각각 두 냥씩 쓰되, 흰 밀랍은 절반으로 줄인다.
먼저 생지황과 당귀를 각각 한 냥씩 참기름에 넣고 검게 달인 다음 찌꺼기를 버린다. 다시 생지황과 당귀를 각각 한 냥씩 더 넣고 약간 탈 때까지 달인 뒤 찌꺼기를 버리고, 여기에 황랍과 흰 밀랍을 넣어 녹인다. 약이 식기 전에 고루 저어 고약을 만든 뒤 환부에 바르고 종이로 덮는다.)

/한동하 한동하한의원 원장

pompom@fnnews.com 정명진 의학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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