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탈시설 장애인·쪽방촌… 발로 뛰며 벼랑 끝 이웃들 구하죠"

파이낸셜뉴스       2025.08.27 18:10   수정 : 2025.08.27 18:11기사원문
윤효석 국민권익위원회 민생현안제도개선전담팀장
30년 넘게 발달장애 딸 돌본 노모
시설 나온 후 걱정인 장애인 만나
정책과 현실 간극 메우려고 노력
숫자로 성과 평가하는 행정 비판
개인 삶 얼마나 바뀌었는지 봐야

탈시설 후 돌봄 공백을 걱정하는 발달장애인, 쪽방촌에서 존엄을 지키기 힘든 주민들, 실손보험 통원 한도 탓에 약값 지원을 제대로 받지 못하는 장기 처방 환자들, 산전검사 지원금을 제때 알지 못해 손해 보는 임신부들. 윤효석 국민권익위원회 민생현안제도개선전담팀장(사진)이 매일 마주하는 민생 현장이다.

27일 만난 윤 팀장은 "정책은 다수를 대상으로 하지만, 그 안에서 모든 개인을 만족시킬 수 없다"며 "정책과 현실 사이의 간극을 메우는 것이 행정의 가장 중요한 숙제"라고 말했다.

그가 꼽은 행정이 지향해야 할 원칙은 '인간 중심 현장주의'다.

윤 팀장은 "책상 위가 아닌 현장에서 답을 찾아야 한다. 정책이나 제도는 큰 틀에서 제시하되 현장에서는 개인별 상황이나 욕구에 맞게 유연하게 적용될 수 있는 선택지와 재량권을 제공해야 한다"며 "정책 성과는 숫자가 아니라 당사자의 삶이 얼마나 나아졌는가로 평가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장애인 탈시설 정책은 현장에서 드러나는 문제의 한 단면이다. 시설에서 벗어나 지역사회에서 자립하는 삶을 목표로 하지만, 현실에서는 돌봄 인프라 부족으로 당사자들이 고립과 생계 위협을 우려하는 목소리가 나온다. 윤 팀장은 "아무리 아름다운 목표를 내세워도 당사자가 지역에서 살아낼 힘을 갖지 못한다면 그 정책은 실패한 것이나 다름없다"고 말했다.

쪽방촌 문제도 마찬가지다. 그는 "위험한 주거 환경을 개선하는 데 그치지 않고 그 안에서 살아온 사람들의 삶과 관계, 존엄을 어떻게 지킬 것인가를 함께 고민해야 한다"며 "이를 고려하지 않은 개발은 주민을 더 열악한 곳으로 내모는 폭력이 될 수 있다"고 했다.

권익위가 다루는 민원은 대부분 수십년간 누적된 고질적 현안이다. 복잡한 이해 관계와 '원래 그렇게 해왔다'는 제도적 관성이 발목을 잡는다. 윤 팀장은 "그럼에도 포기하지 못하는 이유는 한 사람 한 사람의 절박한 목소리"라며 "그 사연이 그들에겐 평생 숙원이자 생존의 문제임을 깨달을 때 움직이지 않을 수 없다"고 말했다. 최근 가장 빠르게 증가하는 민원 유형은 디지털 격차 문제다. 그는 "키오스크 앞에서 주문을 못 하고 발길을 돌리는 어르신, 온라인 행정서비스 신청이 막막한 사람들이 대표적"이라며 "초고령사회에 복지 사각지대를 찾아 숨어 있는 고충을 발굴하는 것이 권익위가 앞으로 집중해야 할 과제"라고 말했다.

그에게 오래 남는 것은 정책 성과보다 현장에서 만난 사람들의 눈빛이다.
윤 팀장은 "30년 넘게 발달장애 딸을 돌본 어머니가 '더는 버틸 힘이 없다'며 울먹이던 모습, 생활고 끝에 자녀를 맡겼다가 결국 보험금만 챙기고 사라진 부모 탓에 홀로 남겨진 어린 여동생의 사연을 잊을 수 없다"며 "정책 이전에 한 사람의 고통을 듣고 보듬는 것이 권익위의 첫번째 사명임을 절실히 느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그런 경험이 공직자로서 제가 이 일을 계속 해나갈 수 있는 가장 큰 동력"이라고 말했다.

윤 팀장은 권익위가 국민에게 어떻게 기억되길 바라느냐는 질문에 "사소한 불편이 생기면 '권익위에 물어보자'라고 떠올릴 수 있는 든든한 이웃, 다른 기관이 외면해도 '권익위만큼은 내 편일 것'이라는 믿음을 주는 최후의 보루가 되고 싶다"고 말했다.

spring@fnnews.com 이보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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