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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백억, 수천억 굴리는데…대학 기금 '투자 감시망' 허술

김태일 기자

파이낸셜뉴스

입력 2022.10.10 05:00

수정 2022.10.10 05:00

대학들의 위험한 투자③
기금운용심의회 위원들 이사장·총장이 임명
금융상품 선별 조직장은 교수들 순환보직으로
투자 전문성·기준 없어…책임소재도 불분명
지난 3월 24일 국대학학생회네트워크 소속 대학생들이 서울 종로구 통의동 대통령직인수위원회 인근에서 윤석열 당선인의 고등교육 공약과 관련, 기자회견 하고 있다. 사진은 기사 내용과 관련 없음. /뉴시스
지난 3월 24일 국대학학생회네트워크 소속 대학생들이 서울 종로구 통의동 대통령직인수위원회 인근에서 윤석열 당선인의 고등교육 공약과 관련, 기자회견 하고 있다. 사진은 기사 내용과 관련 없음. /뉴시스

교육부 전경 /뉴스1
교육부 전경 /뉴스1
[파이낸셜뉴스] 수백억, 수천억원을 주식·채권·펀드 등 증권투자에 쓰는 사립대학들의 의사결정 체계가 미비한 것으로 파악됐다. 사실상 이사장이나 대학총장 결정을 이들에게 임명받은 위원들이 동의하는 구조로 짜여있다는 게 가장 큰 허점이다. 해당 위원들 대부분이 금융·증권전문가가 아니라는 점도 문제로 지적된다.

이에 따라 객관성을 담보할 수 있는 방향으로 기금운용심의회 규정을 개정하거나 외부 전문기관에 운용위탁하는 방식을 검토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기금운용심의회, 형식적 절차

9일 교육계에 따르면 수익용 유가증권을 취득하는 재원이 기금 등 보통재산일 경우 대학법인은 학내 기금운용심의회 심사를 거쳐야 한다. 이후 이사회 의결을 통해 최종 매매가 결정된다.

문제는 기금운용심의회와 이사회 구성원들이 ‘독립성’을 보장받기 힘든 구조라는 점이다. 사립학교법상 대학 교비회계는 대학총장이, 법인회계는 학교법인 이사장이 기금운용심의회 위원을 위촉·임명토록 규정돼있는 탓이다.

국회 교육위원회 소속 강득구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현행 제도에선 증권매매를 심의·의결하는 기금운용심의회 위원을 이사장과 총장이 전부 임명하기 때문에 투자 방향 역시 그 영향력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며 “그 명단을 교육부에 보고할 의무도 없어 누가 선별하고 의결하는지 관리가 안 되는 실정”이라고 강조했다.

위원들의 ‘비전문성’도 미흡한 점으로 꼽힌다. 기금운용심의회는 위원장 1명(총장)을 포함해 15명 이내 위원으로 구성되는데, 이 가운데 회계·재무 관련 외부 전문가는 1명만 포함되면 된다.

실제 경상남도에 위치한 한 4년제 사립대 기금운용심의회 위원 명단에는 간호학과·스포츠재활복지학부 교수, 작업치료학과 학부생, 행정대학원 대학원생 등이 이름을 올리고 있다. 전문가는 경영학과 교수 1명뿐이다.

한 금융투자업계 관계자는 “당초 금융상품을 선별해서 기금운용심의회로 올리는 조직의 장을 금융과 무관한 전공 교수들이 맡는 경우도 허다하다”며 “순환 보직이기 때문에 공대나 철학과, 식품영양학과 교수가 맡을 수도 있다는 뜻”이라고 귀띔하기도 했다.

대규모 손실 우려 여전

현 규정상 증권투자 손실에 대한 책임 소재는 불분명하다. 교육부 측은 강득구 의원실이 ‘주식 평가액 손실이 났을 경우 후속조치와 상장폐지 시 대처’를 물은 질문에 “손실은 학교법인 자체적으로 책임지며, 상장폐지 될 경우 이사회 의결을 거쳐 폐기할 수 있다”고만 밝혔을 뿐 별다른 대책은 설명하지 않았다.

재전건전성을 두고도 “필수적으로 보거나, 이를 평가해 등급을 별도 설정하고 있지 않고 있다”고만 답했다. 증권투자 결정 시 두 단계를 거치토록 하는 제도가 유명무실할 뿐 아니라 그조차도 사실상 형식에 그친다는 지적이 나오는 이유다.

특히 사립대는 교육부 정기 감사 대상이 아닌 탓에 통제권에서 상대적으로 벗어나있어 문제를 조기에 발견하기도 쉽지 않다. 실제 대학교육연구소가 발표한 ‘사립대학의 재정·회계 비리 실태와 회계투명성 제고방안’에 지난 2017년 기준 1979년 이후 한 차례도 종합감사를 받지 않은 4년제 사립대가 67곳, 전문대학은 56곳이다.

지난 2012년 고려대학교 학교법인 고려중앙학원 김정배 이사장이 이사회 의결없이 재단 적립금을 주가연계증권(ELS) 등 파생상품에 투자했다가 수백억원 손실을 낸 뒤 논란이 돼 사퇴한 일과 같은 사건이 재발할 여지가 잔존하는 셈이다.

건국대 역시 지난해 이사회 의결을 거치지 않고 옵티머스펀드에 120억원을 투자한 사실이 드러났고 우석대는 5억원을 라임펀드에, 연세대(47억원)와 고려대(7억원)는 또 다른 부실 펀드에 이사회 심의·의결없이 투자했다가 손실을 봐 문제가 된 바 있다.

“외부 전문기관에 맡겨야”

반드시 학내에서 투자 결정을 해야 하는 건 아니다. 외부위탁운용(OCIO)을 이용할 수도 있다. 기획재정부가 관리감독을 맡는 공공부문 연기금투자풀과 함께 개별 증권사·자산운용사에 맡기는 민간 OCIO도 가능하다.
실제 서울대, 성균관대, 이화여대 등은 후자를 택하고 있다.

투자 전문가들로 구성된 조직이 자금 운용을 맡음으로써 목표 수익률 달성에 초점을 맞출 수 있고 독립성도 상대적으로 보장된다.


한 자산운용업계 관계자는 “대학들이 자체적으로 결정해서 적립금을 굴릴 때 운용 기준 및 지침이 모호할뿐더러 위탁운용 대비 효율도 현저히 떨어진다”며 “이사회가 기금운용에 대한 통제권을 잃지 않으려는 의도가 유일한 동기로 보이는 이유”라고 말했다.

taeil0808@fnnews.com 김태일 서지윤 김나경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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