갑자기 하루 24시간 공유하게 된 부부
서로 잘 안다고 착각할수록 갈등 커져
관계대책의 첫걸음은 상대의 일상 파악
외로움·불안·서운함 등 크게 느낀다면
은퇴 이전부터 쌓인 문제가 증폭된 것
기대지 않아도 혼자 잘사는 법 익혀야
서로 잘 안다고 착각할수록 갈등 커져
관계대책의 첫걸음은 상대의 일상 파악
외로움·불안·서운함 등 크게 느낀다면
은퇴 이전부터 쌓인 문제가 증폭된 것
기대지 않아도 혼자 잘사는 법 익혀야
―은퇴 이후 부부 관계가 더 어려워지는 이유는.
▲이서원 소장=핵심은 '모르면서 안다고 생각하는 착각'이다.
▲김윤정 변호사=법률 현장에서 보면 은퇴 이후 관계가 어려워지는 가장 근본적 이유는 '혼자서 잘살 수 있는 방법을 모르기 때문'이라고 본다. 은퇴 전에는 주어진 스케줄대로 바쁘게 살며, 자신을 돌아볼 시간이 부족하다. 그런데 은퇴 후에는 원하든 원하지 않든 '자유로운 시간'이 거의 무한대로 주어진다. 스스로 삶을 돌볼 줄 모르고 타인에게 의지해오거나, 바깥의 명예·돈·권력 중심으로 살아온 사람에게 은퇴는 제2의 도전이 된다. 그런데 많은 사람들은 은퇴를 장밋빛으로만 이상화한다. 준비가 안 된 상태에서 공허감·방황감이 찾아오면 배우자에게 갑작스럽게 의지하거나, 배우자의 자유를 구속하는 방식으로 해소하려 한다. 그 순간 관계는 흔들린다.
―미리 준비하지 않으면 부딪치는 지점이 있다면.
▲김 변호사='타방 배우자가 없어도 괜찮은 삶'에 대한 준비가 필요하다. 홀로서기가 잘된 사람일수록 타인과 건강한 관계를 맺는다. 타인의 인정·관심·애정이 있어야만 존재 의미를 느끼는 사람일수록 집착과 의존으로 흐르기 쉽다. 현실적으로 보면 부인들은 은퇴 이후 의무에서 벗어나 자신의 친구·취미를 찾아 나서는 경우가 많다. 반면 남성은 가정 내에서 부인의 정서적 서포트와 가사환경에 익숙해져, 혼자 밥을 차려먹지 못하거나 세탁기를 돌리지 못하는 경우도 흔하다. 아내는 밖으로 나가고 싶은데 남편은 '나 아무것도 할 줄 몰라'라며 의존하려 하면서 근본적 마찰이 생긴다.
▲이 소장=노후대책을 '경제대책'으로만 생각하는 점이다. 관계대책도 경제대책만큼 중요하고 어렵다. 준비해야 할 관계대책의 첫 번째는 상대의 '굳어진 일상'을 파악하는 것이다. 남편은 아내가 집에서 아이를 키우고 주변 사람들을 만나며 일상이 어떻게 굳어졌는지, 그 일상에서 어떤 감정과 즐거움을 얻는지, 양보할 수 없는 모임과 즐거움은 무엇인지 분석해야 한다. 반대로 아내도 남편이 직장생활 속에서 어떤 인간관계를 맺어왔는지, 누구를 소중히 여겨왔는지, 낙이 무엇이었는지 파악할 필요가 있다.
―은퇴 이후 부부 사이에서 자주 등장하는 감정은.
▲이 소장=남편이 은퇴한 경우를 예로 들면 억울함·섭섭함·서러움이 많이 나온다. 평생 가족을 위해 열심히 살았다고 생각하는데 '대접이 이 정도인가'라는 감정이 올라온다. 아내는 반대로 성가심·귀찮음·짜증이 잦다. 어렵게 구축한 사회관계망과 일상 루틴에 남편이 끼어들어 '밥 해달라, 같이 가자, 뭘 하자'라고 하면, 그 기반이 흔들린다고 느끼기 때문이다. '당신은 당신대로 살아, 나는 내 삶을 이미 꾸려가고 있어'라는 마음이 스멀스멀 올라온다.
▲김 변호사=외로움·답답함·불안·서운함 같은 감정이 배우자에게만 유독 크게 느껴진다면, 그 원인은 대개 은퇴 이전에 누적돼 있었다고 본다. 은퇴 전에는 직장·육아 같은 '도피처'가 있어서 부정적 감정을 회피할 수 있었다. '아이가 어리니까 참자' 같은 이유도 작동한다. 하지만 은퇴 후에는 도피처가 사라지고 둘만 남는다. 그 결과 이미 있었던 감정이 증폭되는 것처럼 보인다. 이 감정을 다루지 못하면 갈등은 생활문제를 넘어 '권리·책임'이라는 법적 언어로 번지기 쉽다.
―위험신호로 읽히는 장면은.
▲김 변호사=겉으로 평온해 보여도 배우자를 보면 가슴이 두근거리거나 아픈 '신체화 증상'이 나타나는 경우가 있다. 이는 표면적 관계는 괜찮아 보여도, 두 사람만의 소통 방식이나 생활 영역에서 억압되고 있는 무언가가 있다는 사인일 수 있다. 이런 경우에는 적극적으로 소통해 해소하든지, 해소가 불가능하다고 판단된다면 독립적 삶의 준비를 병행해볼 필요가 있다.
▲이 소장=말이 끊어진다. 꼭 필요한 말 이외에는 섞지 않는다. 사람과 사람이 사는 것이 아니라 개와 고양이가 같은 집에 있는 듯 서로 다른 세계를 가진 채 데면데면해진다. 그러다 밖에선 다정한 척 연기한다. 접촉도 끊어진다. 각방을 쓰고, 부딪치지 않으려 한다. 말이 멀어지고 몸이 멀어지는 이유는 마음이 이미 멀어졌기 때문이다. 싸움이 없어도 남극과 북극처럼 사는 것이다.
―과도한 의존과 무관심, 무엇이 더 위험한가.
▲이 소장=무관심은 관계의 사형선고에 가깝다. 무관심은 무얼 해도 마음이 가지 않는 상태다. '앞으로도 저 사람은 나에게 잘해주지 않을 거야'라는 믿음이 자리 잡으면 무관심이 생긴다. 아이와 집안의 시선 때문에 함께 살지만, 각자도생하는 '심리적 이혼' 상태가 된다. 과도한 의존도 위험하다. 주는 만큼 받는 게 관계의 원칙인데, 적게 주고 많이 받으려는 태도는 결국 큰 싸움이 나거나, 상대가 도망가게 만든다.
▲김 변호사=과도한 의존은 은퇴 후 더 치명적일 수 있다. 부부 모두 신체적 나이가 들어가며 자기 몸을 돌보는 데도 에너지가 든다. 배우자까지 케어해야 한다는 부담이 커지면 함께하는 삶 자체가 점점 싫어질 수 있다. 반면 무관심이 꼭 모두 위험한 것은 아니다. 서로에게 기대지 않아도 각자 친구·취미로 스스로를 충족시키는 '건강한 무관심'도 있다. 다만 증오나 체념에 기반한 무관심이라면 작은 트리거로도 파탄 가능성이 커진다.
―하루 24시간을 공유할 때, 각자 반드시 지켜야 할 개인 영역은.
▲이 소장=눈에 보이는 공간보다 보이지 않는 마음의 영역이다. '내가 틀렸다'는 생각을 지키는 것이다. 어떤 분이 고위직으로 성장한 비결로 '내가 틀렸다'를 늘 마음에 두었다고 말한 적이 있다. 부부가 24시간 붙으면 대부분 반대로 '내가 옳다'로 간다. 그 순간 언성이 높아지고 삐치고 싸운다. 내가 틀렸다고 생각하는 순간 48시간 같이 있어도 평화롭다. 내가 옳다고 생각하는 순간 2분40초도 함께 있기 어렵다.
▲김 변호사=식사·빨래·청소 같은 생활 루틴을 '상대가 해줘야 당연한 것'이라고 생각하지 않는 것이 중요하다. 각자의 일은 각자가 한다는 기본 위에, 여력이 있는 사람이 돕는 '배려'의 개념으로 접근해야 갈등이 줄어든다. 또 상대의 취미를 존중하고, 나 또한 의존하지 않고 시간을 보낼 수 있는 취미·취향을 찾아가는 과정이 필요하다.
―각방 생활, 각자 활동에 대한 생각은.
▲김 변호사=각방·각자 활동 자체가 좋고 나쁘다고 단정하는 접근은 위험하다. 수면 패턴이나 취향 차이로 인한 각방은 관계에 위해 요소가 아닐 수 있다. 다만 체념, 회피, '옆에 있는 것 자체가 싫다'는 감정 때문에 각방을 택하거나, 이혼이 번거로워서 한집에 살지만 철저히 각자 활동을 하는 경우라면 그것은 '위험해지는 단계'라기보다 이미 파탄에 가까운 혼인생활로 봐야 한다고 본다.
▲이 소장=간단하다. '그래, 나 없이 잘 지낼 수 있나 봐라'라는 마음으로 각방을 쓰면, 그건 별거를 거쳐 이혼으로 가는 고속열차다. 반대로 '혼자 있으면서 생각해보니 내가 다 잘한 건 아니구나'로 들어가 자기반성과 성찰을 하면 합방으로 가는 완행열차가 될 수 있다. 방향이 중요하다.
―돈 이야기가 감정 싸움으로 번지지 않게 하려면.
▲김 변호사=경제적 투명성이 가장 중요하다. 배우자의 경제 상황은 알려고 하면서 자신의 경제 상황은 불투명하게 하면 신뢰가 깨진다. 공개된 정보하에 생활비를 어떤 비율로 누가 어떻게 부담할지 룰을 명확히 해야 한다. 처음부터 룰을 정하지 않고 암묵적으로 흘러가면 '왜 나만 손해 보나'라는 억울함이 쌓이고, 결국 신뢰 균열로 이어진다.
―은퇴 전후 부부에게 딱 한 가지 조언을 한다면.
▲이 소장=나로 인해 '나와 비슷한 처지의 사람'을 좋아하게 만들어야 한다. 나처럼 은퇴한 남자를 연민의 마음으로 바라보게 만들고, 반대로 오래 고생한 아내를 보며 길에서 만나는 비슷한 처지의 사람에게도 좋은 마음이 들게 만들어야 한다. 내가 모범이 되겠다는 마음이 생기면 행동이 달라진다. 나로 인해 사람이 좋아지게 해야 한다.
▲김 변호사=내 안에서 '불편하다'는 사인이 조금이라도 올라오면 무시하지 말아야 한다. 착한 사람일수록 상대의 선 넘는 태도를 합리화하거나, 내가 예민한 건 아닐까 하며 문제를 덮는다. 그러면 겉으로는 평화로운 것처럼 보이지만, 결국 작은 틈이 원인이 되어 둑이 무너지듯 관계가 파탄에 이른다.
정리=kkskim@fn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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